조선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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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조선초기의 회화 (중국화풍)
1.안견의 화풍
2.강희안의 화풍
3.이상좌의 화풍
4.이장손, 최숙창, 서문보의 화풍
5.양팽손의 화풍
6.이암, 신사임당의 화풍
◈조선 중기의 회화
1.산수화
2.인물화의 경향
3.동물화와 화조화의 경향
4.사군자화와 묵포도화의 경향
※조선 전반기의 특징
◈조선후기의 회화
1.남종화의 유행
2.진경산수화의 풍미
3.풍속화의 발달
4.민화의 유행
◈조선말기의 회화
1.김정희파의 지배
2.허련 장승업의 두 계보의 확립
♤결론

본문내용

산골에 둥근 창문의 작은 집이 한 채 있
고, 그 안에는 책이 쌓인 책상을 마주한 선비가 앉아 있다. 조희룡은 김정희의 제자로
추사체의 글씨를 부스러뜨려 놓은 것 같은 서예적인 필치를 읽을 수 있고, 거칠고 분방
하게 찍어놓은 점들이 매우 특이하다. http://www.daechonnet.co.kr/turn048.htm
♣이하응 <묵란도(墨蘭圖)>
괴석과 난초가 어울린 석란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 난초는 두 폭이 짝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를 대련이라고 한다. 마치 벼랑에 핀 듯 바위 틈새에 피어난 난이다. 진한
먹의 난잎은 매우 유려하게 솟아있고, 엷은 먹의 꽃은 한 줄기에서 여러 송이가 피는 것처
럼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난 그림에 있어서 특히 기피하는 것이 단조로운 획일성인데, 이
그림에서는 많은 잎을 그리면서도 어느 것 하나 똑같거나 나란히 가는 것이 없다.
말하자면, 스스로 균형을 이루는 난의 성질처럼 다양한 가운데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다. http://www.daechonnet.co.kr/turn048.htm
2. 허련, 장승업 두 계보의 확립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조선왕조 말기가 차지하는 큰 비중과 의의는 그것이 현대화단을 위한
하나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소치 허련과 오원 장승업은 이 점에서 더욱 중요
시 된다. 그들은 각기 자기 나름의 계보는 형성하여 현대화단에 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휘준 『 한국회화사 연구 』 시공사 2002 p718
허련(許鍊)
소치 허련은 진도 출신으로 초의선사 제자였다가 초의의 소개로 김정희의 훈도를 받게 되었
고 중앙의 화단에서 종횡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는 김정희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남종
화의 대가로 성장하였고 조희룡에게서도 그림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고 믿어진다.
허련의 화풍은 그의 아들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의재 허백련과 그들의 수많은 제자들을 통
하여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다. 안휘준 『 한국회화사 연구 』 시공사 2002 p718~p724
그의 그림은 산수, 인물, 송, 매화, 모란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다. 헌종 앞에서 그려 바
친<산수화첩>을 비롯한 수많은 산수화를 남겼는데, 한결같이 남종화의 세계를 지향하였다,
다소 거칠고 소박한 느낌을 자아내는 갈필법과 푸르스름한 담청을 즐겨 쓴 설채법이 예찬이
나 황공망계의 변형된 구도와 아울러 그의 독자적인 화풍을 창출하였다. 그는 이러한 그의
작품들에 시문을 추사체로 써 넣는 일이 많아 시서화를 함께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
하게 하기도 하였다. 안휘준 『 한국회화사 연구 』 시공사 2002 p720
장승업(張承業)
소치 허련의 일파와 쌍벽을 이루며 우리의 현대 화단에까지 그 맥을 잇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오원 장승업과 그의 후계자들이다. 장승업의 화풍은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에게 계승되었고 이들을 통하여 그들의 제자인 심산 노수현,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등의
현대 화가들에게 이어졌다. 안휘준 『 한국회화사 연구 』 시공사 2002 p721~p724
그의 그림은 산수, 인물, 영모,화훼, 기명 등 다양한 소재를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자유자
재로 구사하였다. 산수화에서는 원말 사대가의 화풍, 미법산수화풍 등 남종화법을 수용하여
<방황자구법산수도>를 비롯한 우수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산수화에서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화폭에 그리기를 좋아하였는데 이는 아무래도 중국 명,청대 회화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
다고 믿어진다. 그는 담청색의 산이나 바위 또는 인물의 기이한 모습과 결합하여 더욱 그의
회화를 중국적, 이국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안휘준 『 한국회화사 연구 』 시공사 2002 p722
그리고 그의 그림은그 기술면에서는 뛰
어난 것이었으나 역시 독창적인 화풍이나 양식을 세우지 못하고 만것은 자기의 탓이기도 하
지만 바탕이 되는 사회의 탓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김원용 『 한국 고미술의 이해 』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p148
♣장승업<방황자구산수도(倣黃子久山水圖)>
이〈방황자산수도>는 긴 화폭에 원근이 급격히 변하여 포개지듯 겹쳐지는 구도를 보
보인다. 자구는 원대의 문인화가 황공망의 자로 이 그림은 그의 필법을 방한 것이다. 산의
주름을 표현하면서 피마준을 쓴 점이나 산의 모양 등에서 황공망의 필법을 볼 수 있다.
또한 둥근 산 위에 진한 먹으로 찍은 태점에서는 오대의 화가 동원의 필법도 보인다. 그러
나 이러한 여러 요소들을 취하면서도 이를 소화하여 능숙한 필치로 거침없이 그려냄으로써
그의 필력을 유감 없이 보여 주었다. http://www.daechonnet.co.kr/turn048.htm
결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시대 회화는 일찍부터 중국 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영향을 바탕으로 중국 회화와 구분되는 “한국적 화풍”을 형성하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5세기 이상의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전통의 밑거름 위에 새로
운 화풍 창조를 발전시켜왔다. 다만, 우리가 살펴본 조선시대 회화는 종래에 불상 등의 다른 분야에 비하여 다소 등한시되었으며, 일제 식민사관의 피해로 인한 국내외의 학자들의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고 냉철하고, 공평하게 평가해야 될 때가 왔으며, 또한 우리의 중요한 몫일 것이다.
<참고문헌>
『 한국 고미술의 이해 』 김원용 1999 서울대학교출판부 p132~p150
『 한국회화의 이해 』 안휘준 2000 시공사 p166~p359
『 한국회화사 연구 』 안휘준 2002 시공사 p309~p726
『 옛그림읽기의 즐거움 』 오주석 1999 솔출판사 p154~p158
『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이동주 1996 시공사 p181~p183
『 韓國繪史 』 安輝濬 1980 一志社 p90~p316
참고 사이트
http://www.daechonnet.co.kr/turn048.htm
http://iartedu.com/history/kor/14-chodraw.htm
http://www.hoammuseum.org/past/choson1/paint/p75.html (조선전기국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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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18
  • 저작시기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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