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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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면 모든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하고, 그 힘은 그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물체의 질량과 거리를 알면 그 물체의 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물체의 힘, 질량, 거리 사이에는 고정된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뉴턴은 자연 현상에는 어떤 고정된 연관성(법칙)이 있다고 보았고, 만약 이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우리는 자연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이런 관점을 비판한다. 대신 이들 이론은 상대적이고 확률적인 연관성에 근거한 자연관을 제시한다. 먼저 상대성 이론에서는 어떤 물체의 질량거리속도 등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지면, 그 물체의 질량은 거의 무한대로 증가하고 거리는 단축된다. 이처럼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고정된 연관성을 거부한다. 또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제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미립자 세계에서는 뉴턴의 기계론적 연관성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자연 현상에는 엄밀하게 말해서 뉴턴의 중력 법칙이 적용될 수 없다.(그러나 일상의 세계에서는 뉴턴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두 가지 관점의 차이는 왜 발생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인식론의 문제다. 뉴턴의 관점에는 자연 현상 안에 어떤 법칙이 존재하고, 우리는 경험적 방법을 통해 이런 법칙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뉴턴의 이론을 이런 법칙을 설명하는 절대적인 진리로 간주했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이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이 관점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대신 그들은 우리의 이론이 한계를 갖는 상대적인 진리임을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 이론으로 자연현상을 완벽하게 설며,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진실에 근접하게 설명, 예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둘째, 연구 방법상의 문제다. 뉴턴의 시대에는 과학 연구 기술이 뛰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자 역학처럼 미시적인 차원의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동시에 행성의 운동 등 거시적인 차원의 자연 현상 연구도 단지 지구 위에서의 불완전한 관찰과 시험에만 의존했다. 이 때문에 상대성
참된 지식의 정당한 근거를 구명, 확보하려는 인식론적 탐구는 이미 철학의 고전시대부터 이성적 사유의 선험적, 초월적 성격에 대해 눈뜨고 이에 대한 신뢰를 키워왔다. 이성이 선험적 성격을 갖는다 함은 그것이 원리적으로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에 앞서 기능한다는 뜻이요, 이성이 초월적 성격을 갖는다 함은 그것이 경험을 뛰어넘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와 관계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경험의 영역에서는 보편적으로 타당한 지식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각성 끝에, 경험을 넘어선다고 여겨지는 이성적 사유에서 그 근거를 찾으려 했던 것은 당연한 귀결 같기도 하다. (물론 이 때 경험이란 감각적 지각을 기초로 하는 일상적 경험을 일컫는다.) 감각적 지각(aisthesis)과 이성적 사유(noesis)를 구별하고, 전자에 기초하는 억견(doxa)은 상대성과 임의성을 면치 못한다고 보면서, 보편적 필연적으로 타당한 참된 지식(episteme)은 오직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본 플라톤이래, 선험적 이성을 절대시하는 이 선험주의적 전통은 인식론에서 줄곧 그 적통(嫡統)을 견지해 왔다고 하겠다.
이성만이 보편적 필연적으로 타당한 지식을 얻게 해주는 근원이라는 이 생각은 그러나 이성을 경험으로부터 유리시키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의 인식능력은 감각적 지각과 이성적 사유라는 상호 호환 불가능한 두 가지로 분리되었다. 선험적 이성의 권능에 대해 회의를 품는 경험주의적인 논구가 등장한 근대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라이프니츠가 지식의 참됨에 관해서 '사실의 진리'(verite de fait)와 '이성의 진리'(verite de raison)를 구분했던 것도 이와 유관하고, 칸트가 지식의 원천을 감성적 직관(Sinnlichkeit)과 오성적 사유(Verstand)로 나누어 보고 그 각각의 작동원리인 감성의 직관형식(Anschauungsform)과 오성의 사유범주(Kategorien)를 구명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 전통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경험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실증적 지식을 추구하는 근대 이후의 과학적 탐구 정신에는 수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경험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여 그 지식의 타당한 근거를 정초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는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성적 사유가 실로 경험과 전적으로 유리된 것이라면, 이성적 사유가 경험을 그 내용으로 한다는 것 자체 또한 존재론적 비약을 안게 된다. 근대 이래 경험주의 인식론이 선험주의적 전통에 가한 비판의 초점은 여기에 모아진다고 하겠다.
보편 타당한 지식의 초석으로 환영받아온 선험적 이성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견해를 갖는 것이 합당할까. 경험주의의 입장에 서서 경험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철학적 탐구자료의 전부라 생각해 이를 단적으로 부인할 것인가. 그리하여 휴움처럼 인식론적 회의에 빠지거나, 콰인처럼 인식론의 규범적 성격을 부인해야 할까. 아니면 '독단'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데까르트처럼 이를 그저 '자명한 것'으로 전제해야 할까.
이런 양자택일적 관점을 벗어나, 선험적 이성이라는 것 자체가 감각적 지각을 토대로 하여 인간이 영위해온 장구하고도 광범한 경험적 삶의 소산이요, 따라서 바로 그 경험적 삶에 철저하게 관련되어 있는 하나의 기관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그리하여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도 바로 신체성의 연장선 위에서 이와 동근원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이성을 '자연화'시켜 경험 내재적인 것으로 재검토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시론의 의도인 바, 우리가 이 새로운 출구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 보고 의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근년 들어 활발히 논구되기 시작한 진화론적 인식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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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23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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