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뤼시엥 페브르: '심성적 도구'에 대한 역사과학의 가능성
3. 페르낭 브로델: 물질주의에 기반한 전체사의 기획
4. 자크 르 고프: '장기적 중세'에 대한 심성사
5. 로버트 단턴: 신역사주의의 도전과 문화사의 다른 가능성들
6. 맺음말
2. 뤼시엥 페브르: '심성적 도구'에 대한 역사과학의 가능성
3. 페르낭 브로델: 물질주의에 기반한 전체사의 기획
4. 자크 르 고프: '장기적 중세'에 대한 심성사
5. 로버트 단턴: 신역사주의의 도전과 문화사의 다른 가능성들
6. 맺음말
본문내용
이는 교묘한 선택과 배제의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상상해 온 그런 '합리성의 승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마지막 논문은 '독서의 역사'를 지배해온 기존 가설을 비판하는 논문이다. 그것은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루소의 『신엘로이즈』가 낳은 독서법의 '혁명'을 다룬다. 그것은 현대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참아내지 못할 따분하고 감상적인 여섯 권의 소설을 '눈물의 홍수' 속에 반복해 읽었던 18세기 루소 애독자들이 책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단턴의 대답은 한마디로 텍스트에 대한 이들의 감성이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장인의 혼이 담긴 수공예품'인 서적들을 마치 와인처럼 조심스럽게 감상하고 음미했던 당시 사람들에 있어서의 독서의 실체를 오늘날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추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생각인가? 동일한 텍스트가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는 시대와 지겨운 하품을 뿜게 하는 시대간의 간극이란 얼마나 멀고도 아득한 것인가?
이처럼 단턴은 기존의 지배적인 역사가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지나쳐 버린 낯선 의미를 인류학과 문학.언어학의 신기술을 동원하여 발굴하고자 하며, 그를 통해 문화사의 다른 가능성들을 밝혀내고자 한다. 여기서 문화는 더 이상 정치.사회.경제의 거대한 구조적 인과성 속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수동적 반영물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창조하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힘이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역사의 심층을 꿈틀거리며 관류하는 문화의 정형화되지 않는 흐름을 통해 역사가 새롭게 재구성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여섯 개의 서로 다른 글들을 관통하는 '새로운 문화사'의 일관된 문제의식인 것이다.
6. 맺음말
본고는 서로 다른 지적 시대를 주도해 온 네 사람이 쓴 네 권의 책을 통해 프랑스 사회사 네 세대의 흐름을 그 문제의식의 변화의 맥락에서 추적해 보았다. 페브르에서 브로델을 거쳐 르 고프에 이르는 아날의 흐름, 그리고 아날 외부에서 프랑스 사학에 충격을 가한 단턴에 이르기까지. 이들 네 세대에 걸친 시대언어의 변화, 각각의 세대들의 문제의식의 단절과 연속성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한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사이다.' 역사는 언제나 그 자신의 '시대적 사명'에 충실히 복무한다.
페브르의 역사가 19세기의 영웅주의에 대한 투쟁이었다면, 브로델의 역사는 자본주의 문명의 자기파괴적 질주에 대해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었고, 르 고프의 역사가 현대의 가속성에 '느린 중세'의 심성적 프리즘을 통해 제동을 걸려는 작업이었다면, 단턴의 역사는 문화의 재발굴을 통해 20세기가 망각해 온 '다른 역사'의 가능성들에 새롭게 빛을 던지는 작업이었다. 이 새로운 문화사의 대두와 함께 이제 서구에서 역사학의 시대적 임무는 과거 사회과학과의 결연 속에서 더욱 공고해져 온 '역사적 실재'의 유일성에 대한 우상숭배, 그 시대착오적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역사학에 거창한 진리적인 '설명'을 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는 역사, 보여지지 않은 역사의 다른 모습들, 그 차이와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기를 더 희망하는 것 같다.
서구 사학의 문제의식의 전환, 이 시대언어의 세계사적 전환으로부터 우리 또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그랬듯이, '새로운 역사'는 역사학에 이질적인 많은 새로운 목소리들을 끌어옴으로써 그 자신을 살찌우는 것이다. 물론 이 혁신과 개방성은 그 자신의 '정체성 상실'이라는 치명적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 '모험'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논문은 '독서의 역사'를 지배해온 기존 가설을 비판하는 논문이다. 그것은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루소의 『신엘로이즈』가 낳은 독서법의 '혁명'을 다룬다. 그것은 현대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참아내지 못할 따분하고 감상적인 여섯 권의 소설을 '눈물의 홍수' 속에 반복해 읽었던 18세기 루소 애독자들이 책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단턴의 대답은 한마디로 텍스트에 대한 이들의 감성이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장인의 혼이 담긴 수공예품'인 서적들을 마치 와인처럼 조심스럽게 감상하고 음미했던 당시 사람들에 있어서의 독서의 실체를 오늘날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추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생각인가? 동일한 텍스트가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는 시대와 지겨운 하품을 뿜게 하는 시대간의 간극이란 얼마나 멀고도 아득한 것인가?
이처럼 단턴은 기존의 지배적인 역사가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지나쳐 버린 낯선 의미를 인류학과 문학.언어학의 신기술을 동원하여 발굴하고자 하며, 그를 통해 문화사의 다른 가능성들을 밝혀내고자 한다. 여기서 문화는 더 이상 정치.사회.경제의 거대한 구조적 인과성 속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수동적 반영물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창조하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힘이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역사의 심층을 꿈틀거리며 관류하는 문화의 정형화되지 않는 흐름을 통해 역사가 새롭게 재구성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여섯 개의 서로 다른 글들을 관통하는 '새로운 문화사'의 일관된 문제의식인 것이다.
6. 맺음말
본고는 서로 다른 지적 시대를 주도해 온 네 사람이 쓴 네 권의 책을 통해 프랑스 사회사 네 세대의 흐름을 그 문제의식의 변화의 맥락에서 추적해 보았다. 페브르에서 브로델을 거쳐 르 고프에 이르는 아날의 흐름, 그리고 아날 외부에서 프랑스 사학에 충격을 가한 단턴에 이르기까지. 이들 네 세대에 걸친 시대언어의 변화, 각각의 세대들의 문제의식의 단절과 연속성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한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사이다.' 역사는 언제나 그 자신의 '시대적 사명'에 충실히 복무한다.
페브르의 역사가 19세기의 영웅주의에 대한 투쟁이었다면, 브로델의 역사는 자본주의 문명의 자기파괴적 질주에 대해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었고, 르 고프의 역사가 현대의 가속성에 '느린 중세'의 심성적 프리즘을 통해 제동을 걸려는 작업이었다면, 단턴의 역사는 문화의 재발굴을 통해 20세기가 망각해 온 '다른 역사'의 가능성들에 새롭게 빛을 던지는 작업이었다. 이 새로운 문화사의 대두와 함께 이제 서구에서 역사학의 시대적 임무는 과거 사회과학과의 결연 속에서 더욱 공고해져 온 '역사적 실재'의 유일성에 대한 우상숭배, 그 시대착오적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역사학에 거창한 진리적인 '설명'을 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는 역사, 보여지지 않은 역사의 다른 모습들, 그 차이와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기를 더 희망하는 것 같다.
서구 사학의 문제의식의 전환, 이 시대언어의 세계사적 전환으로부터 우리 또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그랬듯이, '새로운 역사'는 역사학에 이질적인 많은 새로운 목소리들을 끌어옴으로써 그 자신을 살찌우는 것이다. 물론 이 혁신과 개방성은 그 자신의 '정체성 상실'이라는 치명적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 '모험'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