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260-340)의 생애
2. 유세비우스의 역사관 (직선적 세계관)
3. 역사학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유세비우스의 관점의 의미
4.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서 배울 점
2. 유세비우스의 역사관 (직선적 세계관)
3. 역사학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유세비우스의 관점의 의미
4.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서 배울 점
본문내용
들 티투스를 비롯한 갈리에누스 등의 시대에 기독교는 잠시 평화를 누리기도 한다.
○ 이방사상의 도전 : 유세비우스는 본서에서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2) 교회는 외부의 박해와 핍박을 받음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이단과 분파에 시달리면서 그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해야 했다.
당시에 활동했던 이단과 분파로는 시몬 마구스, 에비온종파, 세렌투스, 니콜라우스, 로도와 마르시온, 몬타누스, 마니교, 노바투스, 아리우스 등이 언급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우리가 이단으로 알고 있는 오리겐에 대해 제6장에서 다루면서 그를 매우 칭찬 하고 있다는 것이다.
(3) 교회는 핍박과 박해 중에서도 순수한 신앙을 지켰으며,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서에 상세히 기록된 대로 순교자들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인 간이 고안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고문을 당하고 결국은 고통스럽게 죽으면 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우리로 알게 한다.
(4) 콘스탄틴의 밀라노(밀란) 칙령은 기독교인 공인한 것이다.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었을 때(311) 그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 기독교가 국교가 된 것은 392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서이다. 그렇지만 콘스타틴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인 것처럼 대우한 것을 볼 수 있다. 일례로 아리우스가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하여 예수님의 신성에 흠집을 냈을 때 325년 니케아에서 회의를 주관하여 이를 바로 잡은 점 등을 들 수 있다.
가 아닌 공인하 는 칙령을 발표했다(313). 이것은 본서에 기록된 당시의 치경 내용을 보면 알 수 있 다.
우리는 기독교인과 모든 백성들에게 자유 의지에 따라 원하는 신앙 양식을 좇을 것을 허락한다. 우리 및 우리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는 어떤 신이나 거룩한 존재들이라도 호의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전하고 올바른 의도를 갖고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관습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는 자유를 박탈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뜻을 명령하는 바이다.
우리는 현재까지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학설들의 진위는 그들의 주장을 보증해 주는 최초의 역사자료를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하는 데 이러한 점에서 유세비우스는 중요한 자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초기 자료들을 통하여 시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해석한 오염된 개념이 아닌 순수한 역사신학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이것은 인터넷을 통해 도움 받은 유세비우스의 생애와 역사관 및 역사학적 의 미를 기록한 자료의 참고자료이다.
- 유세비우스, 엄성옥 옮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2003, 은성
- 구어트 알란트, 김성주 옮김, 『인물로 본 초대교회사』, 1997, 도서출판: 엠마오
- 윌리스턴 워커, 강근환, 민경배 옮김,『세계기독교회사』,1998, 대한기독교서회
- 후스토 곤잘레스, 서영일 옮김,『초대교회사』,1995, 은성
- 조인형,「유세비우스의 초기 기독교사 서술에 관한 연구」,1989, 고려대 대학원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 교회 박찬희 목사 홈페이지
○ 이방사상의 도전 : 유세비우스는 본서에서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2) 교회는 외부의 박해와 핍박을 받음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이단과 분파에 시달리면서 그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해야 했다.
당시에 활동했던 이단과 분파로는 시몬 마구스, 에비온종파, 세렌투스, 니콜라우스, 로도와 마르시온, 몬타누스, 마니교, 노바투스, 아리우스 등이 언급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우리가 이단으로 알고 있는 오리겐에 대해 제6장에서 다루면서 그를 매우 칭찬 하고 있다는 것이다.
(3) 교회는 핍박과 박해 중에서도 순수한 신앙을 지켰으며,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서에 상세히 기록된 대로 순교자들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인 간이 고안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고문을 당하고 결국은 고통스럽게 죽으면 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우리로 알게 한다.
(4) 콘스탄틴의 밀라노(밀란) 칙령은 기독교인 공인한 것이다.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었을 때(311) 그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 기독교가 국교가 된 것은 392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서이다. 그렇지만 콘스타틴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인 것처럼 대우한 것을 볼 수 있다. 일례로 아리우스가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하여 예수님의 신성에 흠집을 냈을 때 325년 니케아에서 회의를 주관하여 이를 바로 잡은 점 등을 들 수 있다.
가 아닌 공인하 는 칙령을 발표했다(313). 이것은 본서에 기록된 당시의 치경 내용을 보면 알 수 있 다.
우리는 기독교인과 모든 백성들에게 자유 의지에 따라 원하는 신앙 양식을 좇을 것을 허락한다. 우리 및 우리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는 어떤 신이나 거룩한 존재들이라도 호의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전하고 올바른 의도를 갖고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관습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는 자유를 박탈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뜻을 명령하는 바이다.
우리는 현재까지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학설들의 진위는 그들의 주장을 보증해 주는 최초의 역사자료를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하는 데 이러한 점에서 유세비우스는 중요한 자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초기 자료들을 통하여 시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해석한 오염된 개념이 아닌 순수한 역사신학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이것은 인터넷을 통해 도움 받은 유세비우스의 생애와 역사관 및 역사학적 의 미를 기록한 자료의 참고자료이다.
- 유세비우스, 엄성옥 옮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2003, 은성
- 구어트 알란트, 김성주 옮김, 『인물로 본 초대교회사』, 1997, 도서출판: 엠마오
- 윌리스턴 워커, 강근환, 민경배 옮김,『세계기독교회사』,1998, 대한기독교서회
- 후스토 곤잘레스, 서영일 옮김,『초대교회사』,1995, 은성
- 조인형,「유세비우스의 초기 기독교사 서술에 관한 연구」,1989, 고려대 대학원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 교회 박찬희 목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