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학사관과 가학적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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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반자학사관과 가학적 내셔널리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 리 말

2. 1990년대 초반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란

3. 자유주의사관의 등장과 ‘모임’

4. 일본의 우경화와 맞물리는 가학적 내셔널리즘

5. 우리의 대응과 관련한 몇 가지 착안점

6. 맺 음 말

본문내용

로 맹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현 정부가 1998년 10월 과거사를 되묻지 않겠다고 한 것은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2001년의 교과서 문제는 역사인식을 둘러싼 본격적인 싸움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아시아의 민중과의 관계에서 말한다면 '전후는 이제 비로소 시작되었을 뿐이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지적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다카하시 데츠야, 앞 책 p.50
. '사죄파'와 '자유주의사관파'의 치열한 공방에다 아사히(朝日)신문과 산케이(産經)신문으로 대표되는 언론전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는 제한적이지만 외무성과 문부과학성의 대립 국면도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외무성 출신인 검정심의회 위원이 경질된 것과 관련한 "만드는 모임"의 논평에는, "지금까지 교과서 검정은 1961년 이후 계속해서 외무성 출신자가 검정심의회의 위원에 선임되어, 사실상 검정에 「외무성 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외무성 분」에 의해 검정에 외무성의 의향이 반영되기 쉬워 근린제국의 압력에 취약한 검정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이번 인사에서 외무성 관계자가 한 사람도 선임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외무성 굴레」가 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www.tsukuruk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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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이는 우리의 싸움이어야 한다. 1980년대부터 이어진 한일 양국 시민들의 연대로 인해 이제 전선은 명확히 그어졌고, 적과 우군의 구분도 보다 확실해졌다.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에 대해 비판을 퍼붓는 것으로 우리의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는 안일하기 짝이 없다. "역사의 개찬을 둘러싼 '내전'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진행 중이다"고 하는 한 재일 코리안의 진단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小森陽一·高橋哲哉編, 앞 책 p.374. 이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박정희 복권 시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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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맺 음 말
해방 후 어언 60년이 지나려 하고 있다. 그 동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격변에 격변을 더해 왔다. 과연 바람직한 한일관계란 어떤 것인가? 이번의 교과서 문제는 새삼 우리에게 이 질문을 곱씹어 보게 한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양국은 좋든 싫든 무수한 은원 관계에 얽혀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와중에서 양국의 백성들은 국가와 민족의 틀을 넘어서는 연대의 경험을 거의 갖지 못했다. 반대로 해방 후의 한국사가 말해 주듯이 지금까지도 나쁜 일본인과 나쁜 한국인의 야합은 강고하게 이어지고 있다. '반일'의 강렬함에 비해 우리에게 '좋은 일본인'의 느낌은 너무나 막연했다. '역사인식의 공유'는 어쩌면 좋은 일본인과 나쁜 일본인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는 역사를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나쁜 선례를 떠올리지만, 놓쳐서는 안 될 교훈을 담고 있다. 즉 역사는 바로 세우지 않으면 쓰러지고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 실험은 지난 20세기에 충분히 치러졌다. '굳건한 시민연대의 구축'은 한일 양국의 시민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요 유일한 비전이다.
  • 가격1,4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5.10.07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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