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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학기, 나에게『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 수업을 추천했던 선배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타자에 대해서 알고자 노력하는 것은 결국 자기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다.”
고독이라는 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있어서 타자로서 인식된다. 『백년의 고독』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한 고독에 대한 의문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이렇게 수다스러운데 왜 고독인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체 모를 고독에 대한 구체적인 실마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또, 그들이 고독하지 않았다는 제시도 없다. 이 ‘고독’ 은 ‘공기’ 와 비슷한 점이 있다. 우리는 원하던 원치 않던 공기 속에 던져져 있다. 이는 피치못할 숙명이며 고독 역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가끔씩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지내는 수도 있으나 일상의 아주 작은 균열을 통해서, 또는 부지불식간에 이 상한우유같은 처치곤란한 존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킨다. 공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건 모르건 우리는 계속 그 안에서 살아 가듯이, 고독의 존재를 깨닫건 아니건 간에 우리는 이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지난학기, 나에게『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 수업을 추천했던 선배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타자에 대해서 알고자 노력하는 것은 결국 자기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다.”
고독이라는 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있어서 타자로서 인식된다. 『백년의 고독』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한 고독에 대한 의문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이렇게 수다스러운데 왜 고독인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체 모를 고독에 대한 구체적인 실마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또, 그들이 고독하지 않았다는 제시도 없다. 이 ‘고독’ 은 ‘공기’ 와 비슷한 점이 있다. 우리는 원하던 원치 않던 공기 속에 던져져 있다. 이는 피치못할 숙명이며 고독 역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가끔씩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지내는 수도 있으나 일상의 아주 작은 균열을 통해서, 또는 부지불식간에 이 상한우유같은 처치곤란한 존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킨다. 공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건 모르건 우리는 계속 그 안에서 살아 가듯이, 고독의 존재를 깨닫건 아니건 간에 우리는 이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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