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흥망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해당 자료는 10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0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강대국의 흥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Ⅰ부. 산업화 이전 세계의 전략과 경제
제1장 서양세계의 부상제
제2장 합스부르크의 지배권시도(1519-1659)
제3장 재정ㆍ지리적 위치와 전쟁의 승리(1660-1815)

제Ⅱ부. 산업화 시대의 전략과 경제
제4장 산업화와 세계 균형의 변동(1815-1885)
제5장 양극세계의 도래와 중위권 국가의 위기Ⅰ: 1885-1918
제6장 양극세계의 도래와 중위권 국가의 위기Ⅱ: 1919-1942

제Ⅲ부. 현대 세계의 전략과 경제
제7장. 양국세계의 안정과 변화(1943-1980)
제8장. 21세기를 위하여

본문내용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많이 저해되었다.
러시아는 서유럽과 지리적으로 원거리였지만 모스크바 공국은 서유럽으로부터 신무기를 들여와서 아시아 대평원의 유목민의 침입을 막고, 1556년 러시아군은 카스피해까지 진출하지만 정복에 대한 내부의 불만과 반란의 가능성, 크림반도의 타타르 부족의 침략, 서유럽의 도전(1608-1613년 폴란드의 모스크바점령), 기술적 낙후와 경제적 후진성(극도의 기후, 광대한 국토, 커뮤니케이션의 미비, 차르의 군사적 절대주의, 교회가 장악한 교회, 관리의 부패와 농노제도의 결함)은 큰 전략적 약점이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전제 차르정부는 명과 이슬람제국과 달리 세계강대국으로 진입하게 된다.
4. 유럽의 기적
서유럽에서 어떻게 줄기찬 경제발전과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세계문제의 상업적ㆍ군사적이 꾸준히 나올 수 있었을 까? 그것은 유럽의 특징중의 하나가 정치적으로 분산되어 있고, 정치세력은 소규모이고 국지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유럽의 정치적 분산성은 거의 지형에 기인하는 것으로 거대한 평원이나 비옥한 강변도 없고 동서와 남북의 기후차이 그리고 삼림과 산맥사이의 계곡에 인구가 분포하는 이런 지형적 특성은 분산된 세력의 성장과 존속을 가능하게 하고, 외부세력의 침입을 막아 주었으며, 통일된 지배권의 확립을 불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기후로 인한 교환하기 좋은 다양한 생산물과 주변에 생산 운반에 적합한(경제적인) 강이 많아 무역을 증진시켰다. 이런 숲의 소로를 통한 벌크 생산물의 교역 확대, 조선산업의 발달로 중세후기엔 발트해, 북해, 지중해 그리고 흑해를 무대로 해상무역이 지속적으로 번성함에 따라 한자동맹 도시와 이탈리아의 도시와 같은 새로운 부의 중심지를 형성, 또한 정지적 장거리 교역으로 어음 거래, 신용제도, 국제 금융의 발달의 촉진하였다. 물론 도시의 특권을 빼앗으려는 봉건 영주와 영리를 추구하는 상인과 폭리를 취하는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교황의 혐오 같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분산화되어 거의 통제할 수 없는 상업과 상인, 항구와 시장은 통일된 권력이 존재치 않는 유럽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의 제후나 소규모 정치체는 이런 상인과 시장과 제각기 공생관계를 맺고 점차 이에 의존하게 된다.
르네상스는 유럽에 경제와 기술의 발달을 더욱 증진시켜 프랑스와 영국의 군주 그리고 베네치아와 밀라노와 같은 부유한 나라에게 새로운 전술과 무기 기술의 혁신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양한 경제, 군사적 세력의 존재 즉,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군사적 수단과 돈으로 구비할 능력을 갖춘 나라는 유럽의 분산된 국가체제가 어떤 한 나라에 의한 대륙의 지배를 가질 수 없게 한다 물론 다른 요인과 함께.
17세기가 되자 유럽과 이슬람, 동양제국과의 군사력의 균형이 유럽쪽으로 유리하게 흘렀는데 이 같은 변화는 무엇보다 도시국가들, 나중에 보다 큰 왕국간의 초보적인 군비경쟁을 유발할 수 있게 한 유럽의 세력분산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동양제국과 이슬람 제국과 달리 유럽이 지속적인 무기개량을 할 수 있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군비의 발달은 유럽의 정치적 다원화를 확립하고 또한 유럽의 궁극적인 해상지배(탐험정신과 더불어 항해기술, 화약혁명, 장거리 무장선박의 발전으로 식민지 건설 등의 해외 진출, 점진적으로 유럽이 헤게모니)를 가져왔다. 스페인은 멕시코(1520년), 페루(1530년)정복에 이어 남부의 평야지대에서 북부의 리오그란데강가까지 지배(식민지와 신대륙으로부터 은, 설탕, 염료 등이 본국으로 끊임없는 유입)를 확대했다. 포르투갈은 인도양에서 이슬람과 충돌에서 승리 그리고 이후 기니만에서 남지나해에 이르는 항구의 연결망의 확립을 통해 인도로부터의 향료무역을 베네치아와 함께 독점하였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대서양 진출, 종교개혁과 반동종교개혁으로 북서유럽인들의 전리품 획득을 위한 새로운 무역과 약탈 탐험에 나섬. 이로서 유럽은 동양과 이슬람과 달리 유럽이 세계의 중심무대로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2장 합스부르크의 지배권시도(1519-1659)
스페인ㆍ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지배하는 여러 왕국과 공국 그리고 지방의 유럽의 정치ㆍ종교적 지배권 시도는 과거 국지적 전쟁(이탈리아 도시국가 간의 충돌, 영국과 프랑스 왕실간의 경쟁 그리고 독일기사단의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와의 전쟁)과 달리 강도와 지리적 규모면에서 광역화되었다.
1. 싸움의 의미와 추이
- 유럽의 전쟁이 그 강도와 지리적 규모면에서 과거와 달리 크게 변모한 두 가지 보편적인 이유는 첫째는 종교개혁의 발생으로 기독교 세계가 분열되고 이제 종교적 교리에 따라 국경을 초월한 분쟁에 휘말렸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유는 왕조연합 즉 합스부르크 동맹체의 결성이었다. 이 동맹체를 지브롤터에서 헝가리까지, 시칠리아에서 암스테르담까지 뻗쳐있었다. 오스트리아에 기원을 둔 합스부르크의 통치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오르는 관례, 카를 5세가 결혼과 상속으로 부르군트, 스페인, 카스틸라, 헝가리, 아라곤, 나폴리, 시칠리아, 사르데냐의 영지를 얻는다.
- 이 전쟁들은 장기간에 걸친 전쟁의 부담을 견뎌낼 수 있는 개별국가의 상대적 능력과 군사혁신이라는 전투의 성격과 비용적 면에서 물질적ㆍ재정적 뒤받침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 합스부르크가 종교개혁으로 불붙은 종교분쟁에 개입하면서 긴 전쟁(투르그와의 수십년간의 투쟁, 네덜란드의 반란(1560-1648), 합스부르크제국과 적대국가 동맹과의 충돌(1618-1648))은 시작된다.
- 싸움의 추이
ㆍ1519년 스페인과 프랑스가 프랑스의 밀라노요구를 쟁점으로 대결하고 있을 때 카를 5세가 신성로마황제로 선출, 프랑스와 1세가 이탈리아, 부르군트, 남부 네덜란드, 스페인 국경을 따라 전면적 반격작전을 감행하지만 파피아전투(1525)에서 이탈리아 원정실패. 이탈리아에 대한 요구포기(1529, 캉브레 조약)
ㆍ오트만제국의 공격(1529년 빈점령)에 이어 1542년 오트만과 프랑스함대의 니스공격, 합스부프크제국이 독일 프로티스턴트를 뮐베르크 전투(1547년)에서 격파, 1552년 프랑스군의 프로티스턴트 국가지원을 위한 독일 진
  • 가격3,000
  • 페이지수30페이지
  • 등록일2005.10.24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681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