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대구 향교 가는 길
▣ 향교의 기원
▣ 대구 향교의 역사
▣ 대구 향교 건물 명칭, 기능
▣ 대구향교 김재운님과의 면담
▣ 향교의 역사적 의의
▣ 향교의 교육적 의의
▣ 보고서를 마치며...
▣ 향교의 기원
▣ 대구 향교의 역사
▣ 대구 향교 건물 명칭, 기능
▣ 대구향교 김재운님과의 면담
▣ 향교의 역사적 의의
▣ 향교의 교육적 의의
▣ 보고서를 마치며...
본문내용
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발표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처음의 포부와는 달리 보고서를 마치고 나니 아쉬운 점,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이것으로 만족하고 보고서를 마친다.
ooo - 이번 교육사 강의를 들으면서도 강의를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레포트를 쓰면서 아니 쓰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말그대로 뼈가되고 살이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단지 레포트 쓰기라하면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 상의 문서들을 복사하여 붙이기 하는 정도로 쉽게 쉽게 해결해 버렸었는데 이번의 경우는 그럴 수 가 없었다. 레포트 내용에 면담이란 것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면담을 하려면 적어도 그 방문하려는 기관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고 또 그를 바탕으로 한 의문 사항들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레포트 쓰기 전에 벌써부터 향교에 대해 자료를 찾고 있었고 공부해야 했었다. 또한 개별적으로 어떤 기관에 들러 면담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궁금한 사항을 인터뷰하니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고 지식을 확장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한 향교에서는 솔직히 기대 이하의 인터뷰를 하였다. 면담해주신 분이 매우 바쁘시기도 했고 우리가 알고자 하는 교육적 측면의 향교에 대해서 속시원히 답변해 주시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내 스스로가 더 많이 향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면담을 마친 후에 사진도 찍을 겸해서 향교를 찬찬히 한번 더 둘러 봤는데 각 건물을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지 특히 대성전은 담으로까지 둘러 쌓여서 그 출입구 조차 개방하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대성전에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것이 모습일까 상상하던 것을 눈으로 확인하려 했으나... 일반인에게도 출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과거 향교의 교육적 의미를 잇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목적은 레포트를 위한 것이 었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에 길들여져 버렸고 어떻게 하는 것이 참 공부인지 모르는 내가, 수동적이었지만 그 방법의 한 길을 가본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 할 것 같다.
ooo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2동에 있는 건들바위(대구기념물 2)에서 북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교동(校洞)에 창건되었다. 당시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1599년(선조 32) 달성공원 부근에 새로 지었다가 1605년에 교동으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향교를 중심으로 지방 유생들의 독립운동이 확산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복잡한 대구 시가지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하였다. 1973년에 시에서 보수·정화하였다고 한다. 교육사 보고서를 위해 전날 면담 시간을 정하고 조금 일찍 향교로 들어섰다. 경내에는 대성전·명륜당을 비롯하여 동무·서무·동재·서재·낙육재·양사재·유림회관·외삼문·동관·서관 등이 있었고 토담이 길게 가로놓여 있어 앞·뒤뜰이 분명하게 구분되는데, 앞뜰에는 명륜당·낙육재 등 비교적 최근에 지은 건물들이 있고 뒤뜰에는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뜰에는 정말 큰 수탉 두 마리가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대성전은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1601년에 지었으며, 중국과 한국 성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은 폐쇄되어 있어 들어가볼 수가 없어 아쉬윗다.
현재 대구 향교에는 해마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올리며, 한문교육·예절교육 등 다양한 전통교육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전통혼례식장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면담 질문을 가지고 향교 사무실에서 면담자와 면담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가지 면담을 하였지만 몇가지 질문은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해 향교 자료를 참고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면담자가 항상 옛 인성 교육이 현 교육에서 제대로 이어져 오지 않는 점을 안타까워 했고 우리도 거기에는 모두 동감했다. 향교에서 진정으로 배울점은 이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 문헌
이만규,《조선교육사》, 기획출판 거름, 서울, 1991.
김경식, 《교육사·철학신론》, 교육과학사, 서울, 1999.
김영우·서영현·이항재·피정만·한규원, 《교육사·교육철학》, 교육과학사, 서울, 1998.
처음의 포부와는 달리 보고서를 마치고 나니 아쉬운 점,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이것으로 만족하고 보고서를 마친다.
ooo - 이번 교육사 강의를 들으면서도 강의를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레포트를 쓰면서 아니 쓰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말그대로 뼈가되고 살이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단지 레포트 쓰기라하면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 상의 문서들을 복사하여 붙이기 하는 정도로 쉽게 쉽게 해결해 버렸었는데 이번의 경우는 그럴 수 가 없었다. 레포트 내용에 면담이란 것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면담을 하려면 적어도 그 방문하려는 기관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고 또 그를 바탕으로 한 의문 사항들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레포트 쓰기 전에 벌써부터 향교에 대해 자료를 찾고 있었고 공부해야 했었다. 또한 개별적으로 어떤 기관에 들러 면담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궁금한 사항을 인터뷰하니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고 지식을 확장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한 향교에서는 솔직히 기대 이하의 인터뷰를 하였다. 면담해주신 분이 매우 바쁘시기도 했고 우리가 알고자 하는 교육적 측면의 향교에 대해서 속시원히 답변해 주시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내 스스로가 더 많이 향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면담을 마친 후에 사진도 찍을 겸해서 향교를 찬찬히 한번 더 둘러 봤는데 각 건물을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지 특히 대성전은 담으로까지 둘러 쌓여서 그 출입구 조차 개방하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대성전에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것이 모습일까 상상하던 것을 눈으로 확인하려 했으나... 일반인에게도 출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과거 향교의 교육적 의미를 잇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목적은 레포트를 위한 것이 었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에 길들여져 버렸고 어떻게 하는 것이 참 공부인지 모르는 내가, 수동적이었지만 그 방법의 한 길을 가본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 할 것 같다.
ooo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2동에 있는 건들바위(대구기념물 2)에서 북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교동(校洞)에 창건되었다. 당시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1599년(선조 32) 달성공원 부근에 새로 지었다가 1605년에 교동으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향교를 중심으로 지방 유생들의 독립운동이 확산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복잡한 대구 시가지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하였다. 1973년에 시에서 보수·정화하였다고 한다. 교육사 보고서를 위해 전날 면담 시간을 정하고 조금 일찍 향교로 들어섰다. 경내에는 대성전·명륜당을 비롯하여 동무·서무·동재·서재·낙육재·양사재·유림회관·외삼문·동관·서관 등이 있었고 토담이 길게 가로놓여 있어 앞·뒤뜰이 분명하게 구분되는데, 앞뜰에는 명륜당·낙육재 등 비교적 최근에 지은 건물들이 있고 뒤뜰에는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뜰에는 정말 큰 수탉 두 마리가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대성전은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1601년에 지었으며, 중국과 한국 성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대성전은 폐쇄되어 있어 들어가볼 수가 없어 아쉬윗다.
현재 대구 향교에는 해마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올리며, 한문교육·예절교육 등 다양한 전통교육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전통혼례식장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면담 질문을 가지고 향교 사무실에서 면담자와 면담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가지 면담을 하였지만 몇가지 질문은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해 향교 자료를 참고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면담자가 항상 옛 인성 교육이 현 교육에서 제대로 이어져 오지 않는 점을 안타까워 했고 우리도 거기에는 모두 동감했다. 향교에서 진정으로 배울점은 이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 문헌
이만규,《조선교육사》, 기획출판 거름, 서울, 1991.
김경식, 《교육사·철학신론》, 교육과학사, 서울, 1999.
김영우·서영현·이항재·피정만·한규원, 《교육사·교육철학》, 교육과학사, 서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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