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조선시대 향교(鄕校)
(1) 조선시대 향교(鄕校)의 기원 및 배경
(2) 조선시대 향교(鄕校)의 발전 및 쇠퇴
(3) 조선시대 향교(鄕校)의 교관
(4) 조선시대 향교(鄕校) 건축물의 특징
(5) 부안향교(扶安鄕校)의 건물
2. 조선시대 서원(書院)
(1) 조선시대 서원(書院)의 배경 및 기원
(2) 조선시대 서원(書院)의 발전 및 쇠퇴
(3) 조선시대 서원(書院)의 훼철
(4) 도계서원의 건물
3.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공통점과 차이점
(1)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공통점
(2)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차이점
4. 맺음말
(1) 조선시대 향교(鄕校)의 기원 및 배경
(2) 조선시대 향교(鄕校)의 발전 및 쇠퇴
(3) 조선시대 향교(鄕校)의 교관
(4) 조선시대 향교(鄕校) 건축물의 특징
(5) 부안향교(扶安鄕校)의 건물
2. 조선시대 서원(書院)
(1) 조선시대 서원(書院)의 배경 및 기원
(2) 조선시대 서원(書院)의 발전 및 쇠퇴
(3) 조선시대 서원(書院)의 훼철
(4) 도계서원의 건물
3.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공통점과 차이점
(1)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공통점
(2)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차이점
4. 맺음말
본문내용
원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이 서원이 훼파된 후 서원자리에 세워놓았던 비라고 한다. 서원이 무너진 후 흔적으로 남겨놓았던 자리 표지석이었던 셈이다.
이 서원을 찾아와서 알 수 있었던 신기한 사실은 익제 이희맹이 나와 같은 본관을 가진 사람이었고 문헌공 경조의 후예라는 사실이었다. 처음 서원 답사를 위해 정보를 찾던 중 도계서원이 끌렸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을 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도계서원 답사를 마치고 난 다음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문을 들어설 때 가운데 문으로는 들어서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유인 즉 중앙문은 혼령들만 드나드는 문이고 동입서출이라, 산 사람은 동쪽문으로 들어오고 나갈 때는 서쪽문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도계서원을 관리하시는 할아버지(81세의 김동률옹)께 들은 이야기였다.
3.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공통점과 차이점
(1)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공통점
부안향교와 도계서원을 답사 한 후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공통점으로 첫째, 제를 지내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통점이 될 수도 있고 차이점이 될 수도 있지만 우선 옛 선현들의 제를 지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된다고 본다. 둘째, 서원과 향교의 건물 배치와 건물 구조, 건물 역할 들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는 서원과 향교 모두 성리학을 교육하던 곳이기 때문에 똑같이 유교의 영향을 받았고 불교의 건물과 달리 소박하고 유교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향교와 서원은 둘 다 지방에 세워진 중등교육기관이라는 것이다. 차이점에서 말하겠지만 향교와 서원은 중등교육기관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넷째, 향교의 대부분은 앞쪽에 공부하는 공간 뒤쪽에 제사 지내는 공간이 배치되는 형식인데 서원도 마찬가지로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랐다. 위패를 모신 곳은 엄숙하고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청절당은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왕래가 편한 입구쪽에 자리 잡았다.
(2)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차이점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의 차이점으로는 첫째, 제를 지내는 기능이 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제를 지내는 대상이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향교는 여러 국가의 선현들 공자와 주자, 주희 등 여러 유학자들의 제를 지내는 것에 반해 서원은 조선시대의 선현들의 제를 지낸다는 것이다. 또한 향교는 전국의 거의 모든 향교를 살펴보면 제를 드리는 선현들이 비슷한 것에 반해 서원은 지역마다 제를 드리는 선현들이 각각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다. 향교에서는 위패를 모시는 것에 반해 서원에서는 진영을 모신다. 둘째, 향교와 서원은 지방의 중등교육기관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향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학인 것에 반해 서원은 국가가 아니라 한 개인이 운영하는 사학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현대식으로 따져보면 향교는 국공립중등학교이고 서원은 사립중등학교라고 보면 될 것이다. 셋째, 문묘 기능의 유무이다. 향교는 문묘기능이 있지만 서원은 문묘의 기능이 있지 않다. 넷째, 향교는 오늘날의 중등교육 기관으로,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보다는 낮은 단계의 교육 기관이었다. 정부는 지배사상인 유교이념을 전국에 보급하기 위하여 군현마다 향교를 설립하였다. 향교는 일읍일교의 원칙대로 수령이 파견된 주읍에 반드시 설치되었다. 교육 내용과 운영의 측면에서 볼 때 순수한 유교 교육기관이자 공교육 기관이었던 것에 반해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양대 중등 교육기관의 하나였다. 서원의 본격적 확산은 조선초 이래 계속된 사림의 자기세력 기반 구축을 위한 향촌 내에서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 16세기 중엽 정계에 진출해 있던 사림들의 자신들의 학문적 우위와 정치적 입장의 강화를 위해 선배 도학자들을 문묘에 제향하는 문묘종사 운동을 전개하면서 서원이 확산되어 갔다. 즉, 설립이념이 각각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4. 맺음말
향교와 서원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공교육과 사교육으로서 서로 보완관계에 있으면서도 서원이 흥하면 향교가 쇠락하고, 사교육이 강화되니 많은 병폐가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서원철폐라는 철퇴를 맞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와 현대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서원과 향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쉽게 찾아지지 않는 곳, 이제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지역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서원과 향교의 기능을 재정립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서원을 찾아와서 알 수 있었던 신기한 사실은 익제 이희맹이 나와 같은 본관을 가진 사람이었고 문헌공 경조의 후예라는 사실이었다. 처음 서원 답사를 위해 정보를 찾던 중 도계서원이 끌렸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을 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도계서원 답사를 마치고 난 다음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문을 들어설 때 가운데 문으로는 들어서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유인 즉 중앙문은 혼령들만 드나드는 문이고 동입서출이라, 산 사람은 동쪽문으로 들어오고 나갈 때는 서쪽문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도계서원을 관리하시는 할아버지(81세의 김동률옹)께 들은 이야기였다.
3.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공통점과 차이점
(1)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공통점
부안향교와 도계서원을 답사 한 후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공통점으로 첫째, 제를 지내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통점이 될 수도 있고 차이점이 될 수도 있지만 우선 옛 선현들의 제를 지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된다고 본다. 둘째, 서원과 향교의 건물 배치와 건물 구조, 건물 역할 들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는 서원과 향교 모두 성리학을 교육하던 곳이기 때문에 똑같이 유교의 영향을 받았고 불교의 건물과 달리 소박하고 유교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향교와 서원은 둘 다 지방에 세워진 중등교육기관이라는 것이다. 차이점에서 말하겠지만 향교와 서원은 중등교육기관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넷째, 향교의 대부분은 앞쪽에 공부하는 공간 뒤쪽에 제사 지내는 공간이 배치되는 형식인데 서원도 마찬가지로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랐다. 위패를 모신 곳은 엄숙하고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청절당은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왕래가 편한 입구쪽에 자리 잡았다.
(2) 조선시대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차이점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의 차이점으로는 첫째, 제를 지내는 기능이 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제를 지내는 대상이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향교는 여러 국가의 선현들 공자와 주자, 주희 등 여러 유학자들의 제를 지내는 것에 반해 서원은 조선시대의 선현들의 제를 지낸다는 것이다. 또한 향교는 전국의 거의 모든 향교를 살펴보면 제를 드리는 선현들이 비슷한 것에 반해 서원은 지역마다 제를 드리는 선현들이 각각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다. 향교에서는 위패를 모시는 것에 반해 서원에서는 진영을 모신다. 둘째, 향교와 서원은 지방의 중등교육기관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향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학인 것에 반해 서원은 국가가 아니라 한 개인이 운영하는 사학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현대식으로 따져보면 향교는 국공립중등학교이고 서원은 사립중등학교라고 보면 될 것이다. 셋째, 문묘 기능의 유무이다. 향교는 문묘기능이 있지만 서원은 문묘의 기능이 있지 않다. 넷째, 향교는 오늘날의 중등교육 기관으로,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보다는 낮은 단계의 교육 기관이었다. 정부는 지배사상인 유교이념을 전국에 보급하기 위하여 군현마다 향교를 설립하였다. 향교는 일읍일교의 원칙대로 수령이 파견된 주읍에 반드시 설치되었다. 교육 내용과 운영의 측면에서 볼 때 순수한 유교 교육기관이자 공교육 기관이었던 것에 반해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양대 중등 교육기관의 하나였다. 서원의 본격적 확산은 조선초 이래 계속된 사림의 자기세력 기반 구축을 위한 향촌 내에서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 16세기 중엽 정계에 진출해 있던 사림들의 자신들의 학문적 우위와 정치적 입장의 강화를 위해 선배 도학자들을 문묘에 제향하는 문묘종사 운동을 전개하면서 서원이 확산되어 갔다. 즉, 설립이념이 각각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4. 맺음말
향교와 서원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공교육과 사교육으로서 서로 보완관계에 있으면서도 서원이 흥하면 향교가 쇠락하고, 사교육이 강화되니 많은 병폐가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서원철폐라는 철퇴를 맞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와 현대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서원과 향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쉽게 찾아지지 않는 곳, 이제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지역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서원과 향교의 기능을 재정립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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