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중국 위협론
1. 중국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나라인가?
2. 중국 위협론의 근거와 논리
1) 경제적 측면
2) 군사적 측면
3) ‘중화민족주의’와 대외정책적 측면
3. 중국위협론에 대한 반대논리
1) 중국의 경제 수준
2) 중국의 군사력 수준
3) 중국의 민족주의 문제
4. 중국의 외교관계
1) 일본의 입장
2) 러시아의 입장
3) 북한의 입장
4) 대만의 입장
5) 미국의 입장
6) 한국의 입장
1. 중국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나라인가?
2. 중국 위협론의 근거와 논리
1) 경제적 측면
2) 군사적 측면
3) ‘중화민족주의’와 대외정책적 측면
3. 중국위협론에 대한 반대논리
1) 중국의 경제 수준
2) 중국의 군사력 수준
3) 중국의 민족주의 문제
4. 중국의 외교관계
1) 일본의 입장
2) 러시아의 입장
3) 북한의 입장
4) 대만의 입장
5) 미국의 입장
6) 한국의 입장
본문내용
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면서 이에 대항하는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미국의 일방주위를 배격하기 위해 중국과 적절한 보조를 맞추며 견제함으로서 동아시아의 지역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위협론을 중국의 부상에 따른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중국과의 파트너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해 중국과 함께 대항하면서도 동아시아내 주도권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형편이다.
이는 러시아는 중국위협론을 오히려 다원화의 한 축으로 받아들이며 국가 정책의 중요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려 함을 알 수 있다.
3) 북한의 입장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전통적인 혈맹의 형태에서 이해관계의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북한이 요즘 행하는 일련의 개방정책이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양국간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국이 북한의 제일 우방국임에는 변함이 없다. 중국은 한반도 내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할 것이고, 북한문제가 미국주도아래 행해지는 것을 그리 곱지 못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4) 대만의 입장
최근 완화방향으로 전환하였고 중국과 대만은 군비경쟁을 지속하는 가운데서도 정경분리노선에 따라 교류관계는 증진되는 추세이다. 중국은 대만-미국관계의 진전을 주시하면서 하나의 중국정책에 반하는 대만독립 움직임을 경계한다.
대만은 대 중국 교류협력관계(직접통항, 통상, 통신, 등 소3통)를 계속하면서도 중국의 군사위협에는 상응한 방위력 개선(무기개발/도입, 방어훈련 등)를 통해 단호히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가장 미묘한 관계를 가진 나라로 표현된다.
대만독립을 주창해온 쳰수이벤이 총통에 당선된 이후 한층 불안해지기 시작한 양안관계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안요인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민간단체인 과학자협회(FAS)와 국방정보센터(CDI)에서 공개한 중국의 공군기지 위성 촬영 결과와, 홍콩과 대만 언론이 미국 국제 전략연구협회(ISSA)에서 발행하는 <국방과 국제문제>를 인용하여 대만이 유사시 사용하기 위해 이미 2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보도는 양안관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이 발전함에 따라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며 끊임없이 대만을 위협하는 행동을 보이지만 대만은 항상 미국의 기조로 따라가며 항상 중국에 대항하는 정책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족적 갈등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도 대만의 일각에서는 읽을 수 있다.
5) 미국의 입장
표면적으로 중미관계는 중국의 6·4 천안문 사건으로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런 악화는 그 배후에 심오한 전략적 배경이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은 하나의 강대하고 통일된, 그리고 발달되고 공업화된 현재 중국의 궐기를 원치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적 속성과 그들의 세계전략 의도와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은 오늘날 일본경제의 강대함과 도전에 고민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현재화는 두 개의 강한 상대자의 동시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는 미국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중·미관계는 부시 행정부 출범후 2001년 4월 중·미 군용기 충돌, 미국의 대 대만 무기판매, 인권문제 등으로 불편한 국면을 맞았으나, 파월 국무장관의 방중, 9.11테러사건 이후 반테러 관련 협조등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정상회복 되고있다
양국간에는 인권, 비확산, 대만문제, 중국의 강대국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견제 심리 등 갈등 요인도 있으나, 호혜적 경제통상관계, 전략적 협조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 "전략적 경쟁자" 관계의 요소가 공존하면서 전반적으로는 협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6) 한국의 입장
한·중교역은 1979년 홍콩, 싱가포르나 동경을 경유한 간접교역 1900만 달러에서 18년만인 1997년에는 무려 1249배 증가한 237억 달러에 이르렀다. 수교 이전인 1991년에 이미 58억달러의 교역규모를 이루었던 것을 볼 때, 한·중 경제관계는 그 시작부터가 상당히 특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금융위기 영향으로 1982년 이후 한·중 교역규모가 처음으로 감소했던 1998년에도 양국은 서로 제3대 교역국의 자리를 지켰으며, 1999년에는 225억 달러 규모의 교역이 이루어져 1997년 수준을 거의 회복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1992년의 수교 이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대중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규모 또한 1998년에 54억 달러, 1999년에는 48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해외투자에 있어서도 그 실제 투자액 기준으로 65억 달러가 투자된 미국 다음의 제2 투자대상국이 중국(41억 달러 이상)이다. 한국의 대미 투자는 시기적 제한이 없었으나 대중 직접투자는 1988년 이후에야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중국 투자의 급속한 성장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한국은 중국의 해외투자 제7대 대상국 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중국은 한반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고 또 적지 않게 개입하고 관여해 왔다.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이 그러했고,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 그러했다.
더구나 중국이 소지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상당한 수준의 대북한 영향력은 중국의 정치, 외교적인 힘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그간의 경제위기를 그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중국에 의한 식량 및 에너지 무상원조 또는 '우의가격(友誼價格)'에 의한 유상제공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지원이 실제로 어떠한 상황 하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구체적인 영향력으로 전환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나라도 북한에 대해 중국과 같은 잠재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중국이 종래의 남북한을 지칭하는 '당사자 해결원칙'의 견지로부터 일정부분 벗어나 정전협정 당사자 자격으로 1997년 4자회담에 참여한 것을 보면 동북아지역 그리고 한반도에서 급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미국의 일방주위를 배격하기 위해 중국과 적절한 보조를 맞추며 견제함으로서 동아시아의 지역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위협론을 중국의 부상에 따른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중국과의 파트너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해 중국과 함께 대항하면서도 동아시아내 주도권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형편이다.
이는 러시아는 중국위협론을 오히려 다원화의 한 축으로 받아들이며 국가 정책의 중요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려 함을 알 수 있다.
3) 북한의 입장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전통적인 혈맹의 형태에서 이해관계의 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북한이 요즘 행하는 일련의 개방정책이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양국간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국이 북한의 제일 우방국임에는 변함이 없다. 중국은 한반도 내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할 것이고, 북한문제가 미국주도아래 행해지는 것을 그리 곱지 못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4) 대만의 입장
최근 완화방향으로 전환하였고 중국과 대만은 군비경쟁을 지속하는 가운데서도 정경분리노선에 따라 교류관계는 증진되는 추세이다. 중국은 대만-미국관계의 진전을 주시하면서 하나의 중국정책에 반하는 대만독립 움직임을 경계한다.
대만은 대 중국 교류협력관계(직접통항, 통상, 통신, 등 소3통)를 계속하면서도 중국의 군사위협에는 상응한 방위력 개선(무기개발/도입, 방어훈련 등)를 통해 단호히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가장 미묘한 관계를 가진 나라로 표현된다.
대만독립을 주창해온 쳰수이벤이 총통에 당선된 이후 한층 불안해지기 시작한 양안관계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안요인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민간단체인 과학자협회(FAS)와 국방정보센터(CDI)에서 공개한 중국의 공군기지 위성 촬영 결과와, 홍콩과 대만 언론이 미국 국제 전략연구협회(ISSA)에서 발행하는 <국방과 국제문제>를 인용하여 대만이 유사시 사용하기 위해 이미 2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보도는 양안관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이 발전함에 따라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며 끊임없이 대만을 위협하는 행동을 보이지만 대만은 항상 미국의 기조로 따라가며 항상 중국에 대항하는 정책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족적 갈등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도 대만의 일각에서는 읽을 수 있다.
5) 미국의 입장
표면적으로 중미관계는 중국의 6·4 천안문 사건으로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런 악화는 그 배후에 심오한 전략적 배경이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은 하나의 강대하고 통일된, 그리고 발달되고 공업화된 현재 중국의 궐기를 원치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적 속성과 그들의 세계전략 의도와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은 오늘날 일본경제의 강대함과 도전에 고민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현재화는 두 개의 강한 상대자의 동시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는 미국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중·미관계는 부시 행정부 출범후 2001년 4월 중·미 군용기 충돌, 미국의 대 대만 무기판매, 인권문제 등으로 불편한 국면을 맞았으나, 파월 국무장관의 방중, 9.11테러사건 이후 반테러 관련 협조등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정상회복 되고있다
양국간에는 인권, 비확산, 대만문제, 중국의 강대국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견제 심리 등 갈등 요인도 있으나, 호혜적 경제통상관계, 전략적 협조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 "전략적 경쟁자" 관계의 요소가 공존하면서 전반적으로는 협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6) 한국의 입장
한·중교역은 1979년 홍콩, 싱가포르나 동경을 경유한 간접교역 1900만 달러에서 18년만인 1997년에는 무려 1249배 증가한 237억 달러에 이르렀다. 수교 이전인 1991년에 이미 58억달러의 교역규모를 이루었던 것을 볼 때, 한·중 경제관계는 그 시작부터가 상당히 특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금융위기 영향으로 1982년 이후 한·중 교역규모가 처음으로 감소했던 1998년에도 양국은 서로 제3대 교역국의 자리를 지켰으며, 1999년에는 225억 달러 규모의 교역이 이루어져 1997년 수준을 거의 회복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1992년의 수교 이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대중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규모 또한 1998년에 54억 달러, 1999년에는 48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해외투자에 있어서도 그 실제 투자액 기준으로 65억 달러가 투자된 미국 다음의 제2 투자대상국이 중국(41억 달러 이상)이다. 한국의 대미 투자는 시기적 제한이 없었으나 대중 직접투자는 1988년 이후에야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중국 투자의 급속한 성장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한국은 중국의 해외투자 제7대 대상국 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중국은 한반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고 또 적지 않게 개입하고 관여해 왔다.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이 그러했고,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 그러했다.
더구나 중국이 소지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상당한 수준의 대북한 영향력은 중국의 정치, 외교적인 힘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그간의 경제위기를 그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중국에 의한 식량 및 에너지 무상원조 또는 '우의가격(友誼價格)'에 의한 유상제공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지원이 실제로 어떠한 상황 하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구체적인 영향력으로 전환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나라도 북한에 대해 중국과 같은 잠재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또한 중국이 종래의 남북한을 지칭하는 '당사자 해결원칙'의 견지로부터 일정부분 벗어나 정전협정 당사자 자격으로 1997년 4자회담에 참여한 것을 보면 동북아지역 그리고 한반도에서 급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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