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교과서”를 잃어버린 일본인
3. ‘확대지향’형 일본의 조건
4. 한국과 일본 무엇이 다른가(한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이질성)
5. 맺음말 : 일본인(특히 일본기업)에게 告하는 조언(당부)
2. “교과서”를 잃어버린 일본인
3. ‘확대지향’형 일본의 조건
4. 한국과 일본 무엇이 다른가(한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이질성)
5. 맺음말 : 일본인(특히 일본기업)에게 告하는 조언(당부)
본문내용
는다.
5. 맺음말 : 일본인(특히 일본기업)에게 告하는 조언(당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에서 지적된 내용이지만, 일본인들은 원리원칙을 지키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판단을 해온 전통이 있다. 개인도 기업도 종교감각도 마찬가지다. '플레시 빌리티'로 임해온 것이 없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문화에서는 분명히 '플레시 빌리티'가 대립을 받아오지 않았다.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를것으로 생각된다. 21세기에는 이같이 주목받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플레시블'이라고 하면 원칙이 없고 무엇인가 분명하지 않고 불투명한 상태, 다시말해 '플렉시블'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원리원칙이 없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경멸되어왔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시대-포스터 모던시대에는 바로 이 '플렉시 빌리티'가 두각을 나타낸다. 이제부터 일본은 이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와같은 일본식 사고방식을 어떻게 서구의 사고방식과 조화시켜 활성화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시대는 크게 변하고 있다. 한국의 민속예능에는 사물놀이라는 것이 있다. 장구나 징 같은 네가지 제각기 다른 악기가 찢어지는 듯한 강한 소리를 내는 놀이인데, 리드미컬하면서도 대단한 역동감이 있는 그런 놀이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신이 나지 않으면 아무리 이치를 따져가며 설득을 해도 무엇에건 열중하려 하지 않는 민족성이 있다. 그 대신 '흥이 난다', '신명이 난다'고 하면, 도저히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한 일을 거뜬히 해내기도 한다.
21세기에는 서구의 도덕, 윤리, 법률 등의 가치관을 다시 평가해야만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다. 이제까지 합리주의 일변도의 가치관으로 인해 매사가 극히 빡빡하게 되어왔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 사상에는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까지 내주어라'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All or nothing'의 사고방식이다. 동양의 유교에서는 이와 같은 전부냐, 아니냐의 극과 극적인 사고방식이 없다. 살기위해서라면 물고기를 잡아도 좋다. 그러나 작은 것은 잡지마록 큰 것만을 잡아라. 작은 것은 다시 놓아주라는 식이다. '잡아라, 잡지 말라'라는 칼로 양단되는 듯한 경직된 사고방식이 아니라, 유연하고 상황에 따라 유동성이 있는 '이인칭적'사고방식이다.
끝으로, 이제 기업이나 기업문화에 대해서 앞으로 어떤것이 중요하며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이 책을 읽고 느낀 바 참조하여 서술해 보겠다. 나는 시인이 하는 일이나 기업이 하는 일이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시인도 예술가도 기업도 어떻게 하면 독자를 감동시킬 것인가를 실천하기로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문화를 기업 구석구석에 침투시켜라'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기업인이 문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돕고 싶다라는 것이었는데 이제부터는 거꾸로이다. 앞으로는 기업이 문화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기업문화의 모습이지, '메세이'운동이 참다운 기업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5. 맺음말 : 일본인(특히 일본기업)에게 告하는 조언(당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에서 지적된 내용이지만, 일본인들은 원리원칙을 지키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판단을 해온 전통이 있다. 개인도 기업도 종교감각도 마찬가지다. '플레시 빌리티'로 임해온 것이 없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문화에서는 분명히 '플레시 빌리티'가 대립을 받아오지 않았다.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를것으로 생각된다. 21세기에는 이같이 주목받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플레시블'이라고 하면 원칙이 없고 무엇인가 분명하지 않고 불투명한 상태, 다시말해 '플렉시블'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원리원칙이 없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경멸되어왔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시대-포스터 모던시대에는 바로 이 '플렉시 빌리티'가 두각을 나타낸다. 이제부터 일본은 이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와같은 일본식 사고방식을 어떻게 서구의 사고방식과 조화시켜 활성화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시대는 크게 변하고 있다. 한국의 민속예능에는 사물놀이라는 것이 있다. 장구나 징 같은 네가지 제각기 다른 악기가 찢어지는 듯한 강한 소리를 내는 놀이인데, 리드미컬하면서도 대단한 역동감이 있는 그런 놀이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신이 나지 않으면 아무리 이치를 따져가며 설득을 해도 무엇에건 열중하려 하지 않는 민족성이 있다. 그 대신 '흥이 난다', '신명이 난다'고 하면, 도저히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한 일을 거뜬히 해내기도 한다.
21세기에는 서구의 도덕, 윤리, 법률 등의 가치관을 다시 평가해야만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다. 이제까지 합리주의 일변도의 가치관으로 인해 매사가 극히 빡빡하게 되어왔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 사상에는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까지 내주어라'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All or nothing'의 사고방식이다. 동양의 유교에서는 이와 같은 전부냐, 아니냐의 극과 극적인 사고방식이 없다. 살기위해서라면 물고기를 잡아도 좋다. 그러나 작은 것은 잡지마록 큰 것만을 잡아라. 작은 것은 다시 놓아주라는 식이다. '잡아라, 잡지 말라'라는 칼로 양단되는 듯한 경직된 사고방식이 아니라, 유연하고 상황에 따라 유동성이 있는 '이인칭적'사고방식이다.
끝으로, 이제 기업이나 기업문화에 대해서 앞으로 어떤것이 중요하며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이 책을 읽고 느낀 바 참조하여 서술해 보겠다. 나는 시인이 하는 일이나 기업이 하는 일이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시인도 예술가도 기업도 어떻게 하면 독자를 감동시킬 것인가를 실천하기로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문화를 기업 구석구석에 침투시켜라'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기업인이 문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돕고 싶다라는 것이었는데 이제부터는 거꾸로이다. 앞으로는 기업이 문화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기업문화의 모습이지, '메세이'운동이 참다운 기업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