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몽골의 주거문화
1. 게르(Ger),,,
◎ 몽골포(게르-Ger)와 우주관
◎ 합리적 구조
(근거이유 4항목 : 첫째,,,둘째,,,셋째,,,넷째,,,)
◎ 건축재료
◎ 몽골포의 내외질서
◎ 몽골포의 이사
◎ 몽골포의 화장실
2. 게르아일 (나무집),,,
3. 어런소츠 (아파트),,,
Ⅱ. 한국의 주거문화
기후와 생활양식에 의해 한일자 홑집, 겹집, 양통집 그리고 곱은자집으로 구분한다.
1. 시대별 주거문화의 변천사
1) 고대시대의 주거문화
2) 중세시대의 주거문화
3) 근대의 한국주거 문화형태
2. 한국 전통주택의 구조
◎ 안방
◎ 건넌방
◎ 사랑방
◎ 부엌
◎ 찬방
◎ 누마루
◎ 대청
3. 전통주택의 공간배치
◎ “안” 공간 + “밖” 공간
1. 게르(Ger),,,
◎ 몽골포(게르-Ger)와 우주관
◎ 합리적 구조
(근거이유 4항목 : 첫째,,,둘째,,,셋째,,,넷째,,,)
◎ 건축재료
◎ 몽골포의 내외질서
◎ 몽골포의 이사
◎ 몽골포의 화장실
2. 게르아일 (나무집),,,
3. 어런소츠 (아파트),,,
Ⅱ. 한국의 주거문화
기후와 생활양식에 의해 한일자 홑집, 겹집, 양통집 그리고 곱은자집으로 구분한다.
1. 시대별 주거문화의 변천사
1) 고대시대의 주거문화
2) 중세시대의 주거문화
3) 근대의 한국주거 문화형태
2. 한국 전통주택의 구조
◎ 안방
◎ 건넌방
◎ 사랑방
◎ 부엌
◎ 찬방
◎ 누마루
◎ 대청
3. 전통주택의 공간배치
◎ “안” 공간 + “밖” 공간
본문내용
분리되는 서구식구조가 섞이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 새마을 운동과 농촌 주거문화
1971년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으로 우리 농촌은 크게 바뀌었고, 정부는 1972년 시작된 농촌주택 개량사업으로 담장과 지붕을 바꾸어 나갔다. 초가지붕은 위생에 안 좋고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헐리고 시멘트기와, 슬레이트, 함석이 그 자리에 얹혔다. 초가지붕이 사라지고 울긋불긋한 원색 지붕이 얹히면서 자연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마을풍경이 생겼고, 비가 새거나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살림집이 됐다. 정부는 지붕개량 만으로 주택개량이 안 된다고 하여 1978년부터 농촌표준주택을 권장해 나갔다.
◎ 아파트시대 개막과 거실중심구조
60년대 중반 공업화, 도시화, 핵가족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주택공급확대가 이뤄졌고, 62년 국내 첫 아파트단지인 마포아파트가 등장했으며, 69년 건립된 한강 아파트는 중앙공급식 난방시설 등을 갖춰 중산층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등 70년대는 아파트의 시대였다. 70년대 중반 민간업체들의 아파트 건설 붐이 일고 대규모 단지개발방식이 확산되면서 도시의 주거형태는 단독 및 연립주택에서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아파트 투기 붐이 일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2. 한국 전통주택의 구조
◎ 안방
부엌과 건넌방 사이에 위치한 안방은 안주인의 일상 거처실인만큼 여성의 가사노동(바느질, 다듬이질등) 위주의 공간을 구성한다. 방 옆면이나 웃목에는 반닫이를 두고 의류를 수장하며 그 위에 이불을 얹으며, 아랫목에는 보료, 장침, 방석을 놓고 벽에는 횃대와 빗접고비를 건다.
이 공간에는 직계 존비속 이외의 남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바 이는 내외법에 따른 것이며, 겨울철에는 보온을 위해 아랫목에 이불을 깔아놓기도 한다.
실내의 집기에는 장, 농, 빗접 또는 좌경서안, 문갑, 사방탁자, 화로, 반짇고리 등이 있으며, 매우 가난한 사람들은 반닫이 대신에 고리짝을 사용하고, 천정 가까이에 시렁을 매어 간단한 물건을 얹어둔다.
◎ 건넌방
건넌방은 주인의 일상 거처실로서 남성위주의 기물들로 꾸며지며, 사랑방이 없는 주택에서는 건넌방이 사랑방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바닥에는 장판을 하거나 온돌 흙바닥 위에 삿자리를 깔기도 하고, 실내가구는 다목적용 반닫이 정도가 놓이며, 끽연구 및 간단한 문방소품류가 갖추어진다.
◎ 사랑방
사랑방은 바깥주인의 일상 거처실로서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의 기능을 갖는다. 본래는 안채와 뒤로 연결되어 있으나 외관상으로는 내외의 구분이 뚜렷하다. 바닥은 장판지 마감이고 벽은 흰색의 한지, 천장은 색지에 굽도리를 돌려 마감하였다.
실내의 집기류로는 보료, 안석, 방석, 장침, 병풍, 서안과 지필묵연등 문방사우(文房四友), 문갑, 연상, 필통, 지통, 연적, 고비, 의거리장, 갓집, 끽연구류 등을 갖추게 된다.
◎ 부엌
부엌은 재래 한옥의 경우 안방에 붙어 있는 것이 통례인데, 안방에 불을 때도록 지면을 낮게 하여 2~4개의 아궁이를 달았다. 부뚜막은 아궁이에 진흙을 발라 쌓아 올리고, 아궁이와 비슷한 수의 솥을 걸어 놓는다. 부엌은 물 데우기 및 각종 음식의 조리 등 식생활을 전담하는 현대의 주방과 같은 곳이다.
재래 부엌의 기능은 안방에 난방을 하며, 며느리나 하녀들의 식당도 겸했으므로 주방보다 다양한 기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아궁이의 땔감은 장작, 나무잎, 짚 등 부피가 있는 고체연료를 사용하였고, 부엌 안에는 물항아리나 물두멍을 놓아두었다. 찬방이 설치되지 않은 부엌은 한쪽에 작은 마루를 설치해 찬장을 두거나, 벽면에 시렁을 설치해 소반, 양념단지칼, 도마 등을 쓰기 쉽도록 수납했으며, 수저집과 조리, 국자 등은 통에 담아 벽에 걸었다.
◎ 찬방
찬방 또는 찬마루 라고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 주택의 다용도실 정도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반가나 중상류 지방의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부엌과 인접한 공간이다.
부엌과는 문으로 연결되어 있어 부엌에서 조리된 음식을 이곳에서 상에 올려 안방, 사랑방 등으로 내갔으며, 간단한 음식은 이곳에서 조리하였다.
이곳에는 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그릇, 식기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도 쓰였다.
◎ 누마루
누마루는 대개 사랑방에 이어서 건축되며 마루 주변을 따라 난간이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주(高柱)로 높여져 있으며 연등천정 또는 부분적으로 우물천정을 한 전망 좋은 공간인 누마루는 특히 여름철에는 청한(淸閑)한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사랑방의 꾸밈과 같이 병풍, 서안, 연상, 궤상, 탁자, 책장과 끽연도구, 거문고, 바둑판 및 차를 끓일 수 있도록 화로가 적당히 배치되어 있으며, 평상과 그 위에 죽부인이 놓여 있다.
◎ 대청
대청은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위치해 이들 방으로 출입하는 전실(前室)의 기능을 갖는 동시에 여름에는 시원한 거실로 쓰며, 집안의 큰일은 이 대청을 중심으로 치른다.
대청의 바닥은 장귀틀과 동귀틀을 사용한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그 사이는 회반죽으로 마감된다.
3. 전통주택의 공간배치
◎ “안” 공간 + “밖” 공간
일반적으로 조선의 상류주택은 내외사상에 입각해 여자들이 사용하는 '안' 공간과 남자들이 사용하는 '밖' 공간으로 구분되었다.
“안” 공간인 안채는 집안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으로 주택 안쪽에 위치한 반면, 가부장적 제도의 권위를 상징하는 사랑채는 “밖” 공간으로, 집안의 가부장과 장자를 비롯한 남자들이 글공부를 하거나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었다.
그 외에도 전통주택은 상하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공간을 다르게 배치하였다. “상(上)”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양반들이, “하(下)” 공간인 행랑채는 대문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머슴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으며, 중문간 행랑채는 “중(中)”의 공간으로 중간계층인 청지기의 거처 공간이었다.
이들 공간들은 커다란 한 울타리 안에 작은 담장을 세우거나 채를 분리해 구획하였는데, 이처럼 상류주택은 신분별, 남녀별, 장유별로 공간을 분리하여, 대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당시의 가족생활을 고려한 공간 배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새마을 운동과 농촌 주거문화
1971년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으로 우리 농촌은 크게 바뀌었고, 정부는 1972년 시작된 농촌주택 개량사업으로 담장과 지붕을 바꾸어 나갔다. 초가지붕은 위생에 안 좋고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헐리고 시멘트기와, 슬레이트, 함석이 그 자리에 얹혔다. 초가지붕이 사라지고 울긋불긋한 원색 지붕이 얹히면서 자연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마을풍경이 생겼고, 비가 새거나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살림집이 됐다. 정부는 지붕개량 만으로 주택개량이 안 된다고 하여 1978년부터 농촌표준주택을 권장해 나갔다.
◎ 아파트시대 개막과 거실중심구조
60년대 중반 공업화, 도시화, 핵가족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주택공급확대가 이뤄졌고, 62년 국내 첫 아파트단지인 마포아파트가 등장했으며, 69년 건립된 한강 아파트는 중앙공급식 난방시설 등을 갖춰 중산층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등 70년대는 아파트의 시대였다. 70년대 중반 민간업체들의 아파트 건설 붐이 일고 대규모 단지개발방식이 확산되면서 도시의 주거형태는 단독 및 연립주택에서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아파트 투기 붐이 일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2. 한국 전통주택의 구조
◎ 안방
부엌과 건넌방 사이에 위치한 안방은 안주인의 일상 거처실인만큼 여성의 가사노동(바느질, 다듬이질등) 위주의 공간을 구성한다. 방 옆면이나 웃목에는 반닫이를 두고 의류를 수장하며 그 위에 이불을 얹으며, 아랫목에는 보료, 장침, 방석을 놓고 벽에는 횃대와 빗접고비를 건다.
이 공간에는 직계 존비속 이외의 남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바 이는 내외법에 따른 것이며, 겨울철에는 보온을 위해 아랫목에 이불을 깔아놓기도 한다.
실내의 집기에는 장, 농, 빗접 또는 좌경서안, 문갑, 사방탁자, 화로, 반짇고리 등이 있으며, 매우 가난한 사람들은 반닫이 대신에 고리짝을 사용하고, 천정 가까이에 시렁을 매어 간단한 물건을 얹어둔다.
◎ 건넌방
건넌방은 주인의 일상 거처실로서 남성위주의 기물들로 꾸며지며, 사랑방이 없는 주택에서는 건넌방이 사랑방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바닥에는 장판을 하거나 온돌 흙바닥 위에 삿자리를 깔기도 하고, 실내가구는 다목적용 반닫이 정도가 놓이며, 끽연구 및 간단한 문방소품류가 갖추어진다.
◎ 사랑방
사랑방은 바깥주인의 일상 거처실로서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의 기능을 갖는다. 본래는 안채와 뒤로 연결되어 있으나 외관상으로는 내외의 구분이 뚜렷하다. 바닥은 장판지 마감이고 벽은 흰색의 한지, 천장은 색지에 굽도리를 돌려 마감하였다.
실내의 집기류로는 보료, 안석, 방석, 장침, 병풍, 서안과 지필묵연등 문방사우(文房四友), 문갑, 연상, 필통, 지통, 연적, 고비, 의거리장, 갓집, 끽연구류 등을 갖추게 된다.
◎ 부엌
부엌은 재래 한옥의 경우 안방에 붙어 있는 것이 통례인데, 안방에 불을 때도록 지면을 낮게 하여 2~4개의 아궁이를 달았다. 부뚜막은 아궁이에 진흙을 발라 쌓아 올리고, 아궁이와 비슷한 수의 솥을 걸어 놓는다. 부엌은 물 데우기 및 각종 음식의 조리 등 식생활을 전담하는 현대의 주방과 같은 곳이다.
재래 부엌의 기능은 안방에 난방을 하며, 며느리나 하녀들의 식당도 겸했으므로 주방보다 다양한 기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아궁이의 땔감은 장작, 나무잎, 짚 등 부피가 있는 고체연료를 사용하였고, 부엌 안에는 물항아리나 물두멍을 놓아두었다. 찬방이 설치되지 않은 부엌은 한쪽에 작은 마루를 설치해 찬장을 두거나, 벽면에 시렁을 설치해 소반, 양념단지칼, 도마 등을 쓰기 쉽도록 수납했으며, 수저집과 조리, 국자 등은 통에 담아 벽에 걸었다.
◎ 찬방
찬방 또는 찬마루 라고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 주택의 다용도실 정도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반가나 중상류 지방의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부엌과 인접한 공간이다.
부엌과는 문으로 연결되어 있어 부엌에서 조리된 음식을 이곳에서 상에 올려 안방, 사랑방 등으로 내갔으며, 간단한 음식은 이곳에서 조리하였다.
이곳에는 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그릇, 식기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로도 쓰였다.
◎ 누마루
누마루는 대개 사랑방에 이어서 건축되며 마루 주변을 따라 난간이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주(高柱)로 높여져 있으며 연등천정 또는 부분적으로 우물천정을 한 전망 좋은 공간인 누마루는 특히 여름철에는 청한(淸閑)한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사랑방의 꾸밈과 같이 병풍, 서안, 연상, 궤상, 탁자, 책장과 끽연도구, 거문고, 바둑판 및 차를 끓일 수 있도록 화로가 적당히 배치되어 있으며, 평상과 그 위에 죽부인이 놓여 있다.
◎ 대청
대청은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위치해 이들 방으로 출입하는 전실(前室)의 기능을 갖는 동시에 여름에는 시원한 거실로 쓰며, 집안의 큰일은 이 대청을 중심으로 치른다.
대청의 바닥은 장귀틀과 동귀틀을 사용한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그 사이는 회반죽으로 마감된다.
3. 전통주택의 공간배치
◎ “안” 공간 + “밖” 공간
일반적으로 조선의 상류주택은 내외사상에 입각해 여자들이 사용하는 '안' 공간과 남자들이 사용하는 '밖' 공간으로 구분되었다.
“안” 공간인 안채는 집안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으로 주택 안쪽에 위치한 반면, 가부장적 제도의 권위를 상징하는 사랑채는 “밖” 공간으로, 집안의 가부장과 장자를 비롯한 남자들이 글공부를 하거나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었다.
그 외에도 전통주택은 상하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공간을 다르게 배치하였다. “상(上)”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양반들이, “하(下)” 공간인 행랑채는 대문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머슴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으며, 중문간 행랑채는 “중(中)”의 공간으로 중간계층인 청지기의 거처 공간이었다.
이들 공간들은 커다란 한 울타리 안에 작은 담장을 세우거나 채를 분리해 구획하였는데, 이처럼 상류주택은 신분별, 남녀별, 장유별로 공간을 분리하여, 대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당시의 가족생활을 고려한 공간 배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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