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사상 종교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학문과 사상 종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한자의 보급과 교육

역사 편찬과 유학의 보급

불교의 수용

본문내용

十八年 遣使朝魏 上表曰 『臣立國東極 豺狼隔路 雖世承靈化 莫由奉藩 瞻望雲闕 馳情罔極 凉風微應 伏惟皇帝陛下 和天休 不勝係仰之情 謹遣私署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侯長史餘禮 龍將軍帶方太守司馬張茂等 投舫波阻 搜徑玄津 託命自然之運 遣進萬一之誠 冀神祇垂感 皇靈洪覆 克達天庭 宣暢臣志 雖旦聞夕沒 永無餘恨』 又云 『臣與高句麗 源出扶餘 先世之時 篤崇舊款 其祖釗輕廢好 親率士衆 凌踐臣境 臣祖須 整旅電邁 應機馳擊 矢石暫交 梟斬釗首 自爾已來 莫敢南顧 自馮氏數終 餘燼奔竄 醜類漸盛 遂見凌逼 構怨連禍 三十餘載 財力竭 轉自孱 若天慈曲矜 遠及無外 速遣一將 來救臣國 當奉送鄙女 執後宮 幷遣子弟 牧外廐 尺壤匹夫 不敢自有』 又云 『今璉有罪 國自魚肉 大臣彊族 戮殺無已 罪盈惡積 民庶崩離 是滅亡之期 假手之秋也 且馮族士馬 有鳥畜之戀 樂浪諸郡 懷首丘之心 天威一擧 有征無戰 臣雖不敏 志效畢力 當率所統 承風響應 且高句麗不義 逆詐非一 外慕藩卑之辭 內懷凶禍豕突之行 或南通劉氏 或北約 共相脣齒 謀凌王略 昔唐堯至聖 致罰丹水 孟嘗稱仁 不捨塗 涓流之水 宜早壅塞 今若不取 將貽後悔 去庚辰年後 臣西界小石山北國海中 見屍十餘 幷得衣器鞍勒 視之非高句麗之物 後聞乃是王人來降臣國 長蛇隔路 以沈于海 雖未委當 深懷憤 昔宋戮申舟 楚莊徒跣 撮放鳩 信陵不食 克敵立名 美隆無已 夫以區區偏鄙 猶慕萬代之信 況陛下合氣天地 勢傾山海 豈令小竪 跨塞天逵 今上所得鞍 一以實驗』
18년(472)에 사신을 위(魏)나라에 보내 조공하고, 표(表)를 올렸다. 『신은 나라가 동쪽 끝에 서 있고 승냥이와 이리[豺狼:고구려]가 길을 막아, 비록 대대로 신령한 교화를 받았으나 번병(蕃屛)의 [예를] 바칠 수 없었습니다. 멀리 천자의 대궐[雲闕]을 바라보면 달리는 정이 끝이 없습니다.서늘한 바람이 가볍게 부는 이 때에 생각컨대 황제 폐하는 천명[天休]에 화합하시니 우러러 사모하는 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삼가 사사로이 임명한 관군장군(冠軍將軍) 부마도위(駙馬都尉) 불사후(弗斯侯) 장사(長史) 여례(餘禮)와 용양장군(龍將軍) 대방태수(帶方太守) 사마(司馬) 장무(張茂) 등을 보내 험한 파도에 배를 띄워 아득한 나루터를 찾아 헤매며 목숨을 자연의 운수에 맡겨 만 분의 일의 정성이라도 드리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하늘 신[神]과 땅 신[祇]이 감응을 드리우고 황제의 신령이 크게 살피셔서 황제의 궁궐에 능히 도달하여 신의 뜻을 펴 드러낼 수 있다면 비록 「[그 소식을]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는다.」고 하더라도 길이 여한이 없겠습니다.』[표(表)에서]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은 고구려와 더불어 근원이 부여(夫餘)에서 나왔습니다. 선세(先世) 때에는 옛 우의를 두텁게 하였는데 그 할아버지 쇠(釗)[고국원왕]가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가벼이 저버리고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신(臣)의 국경을 함부로 짓밟았습니다. 저의 할아버지 수(須)[근구수왕]가 군사를 정비하여 번개같이 달려가 기회를 타서 잽싸게 공격하니, 화살과 돌(矢石)로 잠시 싸운 끝에 쇠(釗)의 목을 베어 달았습니다. 이로부터 [고구려는] 감히 남쪽을 돌아다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풍씨(馮氏)의 운수가 다하여서 남은 사람들이 도망해 오자 추악한 무리들[醜類:고구려]이 점차 성해져서 드디어 [우리는] 능멸과 핍박을 당하게 되었으며, 원한을 맺고 병화[禍]가 이어진 지 30여 년에 재물도 다하고 힘도 고갈되어 점점 약해지고 위축되었습니다.
만일 폐하의 인자하심과 간절한 긍휼(矜恤)이 멀리 가없는 데까지 미친다면 속히 한 장수를 신의 나라에 보내 구해 주십시오.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 후궁에서 모시게 하고 아울러 자제를 보내 바깥 외양간에서 말을 기르게 하며 한 자(尺)의 땅도 한 명의 백성[匹夫]이라도 감히 스스로 가지지 않겠습니다.』[표(表)에서]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연(璉)[장수왕]은 죄가 있어 나라가 스스로 으깨어지고[魚肉], 대신(大臣)과 힘센 귀족들을 죽이고 살해하기[戮殺]를 마지않아, 죄가 차고 악이 쌓여 백성들은 무너지고 흩어졌습니다. 이는 멸망시킬 수 있는 시기요 손을 쓸[假手] 때입니다. 또 풍족(馮族)의 군사와 말들은 새와 짐승이 주인을 따르는 정[鳥畜之戀]을 가지고 있으며, 낙랑(樂浪)의 여러 군(郡)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首丘之心]을 품고 있으니, 천자의 위엄이 한번 떨치면 정벌은 있을지언정 싸움은 없을 것입니다. 신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마땅히 예하 군대를 거느리고 위풍을 받들어 호응할 것입니다. 또 고구려는 의롭지 못하여 반역과 속임수가 하나만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외효(嵬)가 번국으로서 낮추어 썼던 말을 본받으면서 속으로는 흉악한 재앙과 저돌적인 행위를 품어, 혹은 남쪽으로 유씨(劉氏)와 내통하였고 혹은 북쪽으로 연연()과 맹약하여 서로 입술과 이[脣齒]처럼 의지하면서 왕법[王略]을 능멸하려 꾀하고 있습니다. 옛날 요임금[唐堯]은 지극한 성인이었지만 단수(丹水)를 쳐서 벌주었으며, 맹상군(孟嘗君)은 어진 사람이라고 일컬어졌지만 길에서 욕하는 말을 못들은 채하지 않았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도 마땅히 빨리 막아야 하는데 지금 만일 [고구려를] 치지 않으면 장차 후회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지난 경진년(庚辰年) 후에 우리 나라 서쪽 경계의 소석산북국(小石山北國) 바다 가운데서 시체 10여 개를 발견하고 아울러 의복(衣服)과 기물(器物)과 안장(鞍裝)과 굴레[勒] 등을 습득하였는데 살펴보니 고구려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들으니 이는 곧 황제의 사신이 신의 나라로 내려오던 중 큰 뱀[長蛇:고구려]이 길을 막아 바다에 빠진 것이라 합니다. 비록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깊이 분노를 품게 됩니다. 옛날 송(宋)나라가 신주(申舟)를 죽이니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맨발로 뛰어 나갔고, 새매가 놓아준 비둘기를 잡으니 신릉군(信陵君)이 식사를 안했다고 합니다. 적을 이겨 이름을 세우는 것은 아름답고 높기가 그지없습니다. 저 구구한 변방의 나라들도 오히려 만대의 신의를 사모하는데 하물며 폐하는 기개가 하늘과 땅에 합하고 세력은 산과 바다를 기울이는데 어찌 더벅머리 아이[小竪:고구려 왕]로 하여금 황제의 길을 걸터막게 하겠습니까. 이제 습득한 안장을 올리니 이 하나로서 사실을 징험하십시오.』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6.07.20
  • 저작시기2005.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954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