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 머리말
Ⅱ . 대원군 집권 이전의 쇄국정책
Ⅲ . 대원군의 쇄국정책
1. 왕권회복을 위한 쇄국정책
2.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한 쇄국정책
3. 외세배척을 위한 쇄국정책
Ⅳ . 맺음말
Ⅱ . 대원군 집권 이전의 쇄국정책
Ⅲ . 대원군의 쇄국정책
1. 왕권회복을 위한 쇄국정책
2.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한 쇄국정책
3. 외세배척을 위한 쇄국정책
Ⅳ . 맺음말
본문내용
중국중심의 세계관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으며 삼국시대이후래로 지방분권적인 봉건제의 전통과 경험이 없어 지방의 독자적인 발달과 자체적인 대외통상이 허용 되지 못하였다.
또한, 흥선대원군의 정치사상적 특성은 격변하는 19세기말 국내의 상화에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사상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즉 한편으로는 문란해진 세도정치의 폐해를 근절하고 조선정부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한 왕권회복과 서구의 침략세력에 대항하고 내 국가와 내 민족을 지키겠다는 민족주체성의 확립에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정치사상에는 근대지향적인 의식이 포함하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들은 그의 개혁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흥선대원군의 정치사상은 개혁주의, 선도주의, 민본주의를 기본성격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정치사상은 그의 각종 국내외정책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정치사상은 근본적으로 유교적 테두리 내에서 진보적, 개혁적이라는 점에서 그 특색을 찾을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집행한 많은 정책들이 기본적으로 유교적 전통사상에 입각한 체계를 고수하였기 때문에 문란할대로 문란해진 사회모순을 혁파하여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개혁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경우 개혁이란 기존의 사회체제를 고수하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범위 내에서의 개혁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밖으로부터 밀려드는 서구의 침략세력에 대항하여야만 하였고, 또한 안으로는 세도정치하에서 나타난 각종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야 되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하였던 것이다.
대원군의 쇄국양이 정책은 외세의 침략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쇄국의 강화는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흐름을 따르지 못해 근대화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가 생존했던 시대적 배경과 대원군이란 위치에 서게 되는 배경을 알아야한다. 결국 요약하자면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왕권강화 즉, 정권을 잡은 기득권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법이며 세도정치기에서부터 이어지는 쇄국정 성향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세도정치기와의 차이가 있다면 따르던 중국이 서양의 침략으로 무너지자 더 이상 조선의 울타리 역할을 이행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러 측면에서 개항의 요구하는 서양열강에 대해 해결책을 가지지 못하였고,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서양의 힘을 앞세운 개강요구는 결국 더 쇄국적으로 흐르게 한 것이다.
대원군집권기의 쇄국정책은 대원군 한사람의 의지로서 정책의 결정으로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치적, 사상적, 문화적, 경제적인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일궈낸 일이라고 정의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원군은 시대의 조류에 부응하지 못한 리더로서 비판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결과론적인 입장에서의 항변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기득권층이 그러하듯 기존체제의 붕괴를 각오하면서 적극적으로 개항을 할 수 있는 왕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거란 것이 나의 소견이다.
이러한 성향은 대원군 집권기에 쇄국정책의 강력한 시행이 세도정치 하에서 이루어졌던 일련의 쇄국적 성향과 크게 다를게 없었단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문헌
《조선왕조실록》
《매천야록》 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서울 한양 출판, 1995
연갑수, 《대원군 집권기 부국강병정책 연구》,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유영익, 〈흥선대원군〉,《한국사 시민 강좌》13, 1993.
이만열, 〈대원군을 어떻게 볼 것인가〉,《우리 역사5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다출판사, 2000.
안외순, 「대원군의 사회적 기반과 지지세력」,『동방학』6, 한서대학교 동양고전 연구소, 2000
김윤곤, 「흥선대원군의 쇄국주의적 정책론」,『한국행정사학지』7, 한국행정사학회, 1999.
이완재, 「대원군정권과 박규수」,『한국학논집』20,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2.
연갑수, 「대원군 집정의 성격과 권력구조의 변화」,『한국사론』2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92.
김병우, 「대원군집권기 정치세력」,『계명사학』2, 계명사학회, 1991.
홍순창, 「쇄국양이와 위정척사사상」,『영남사학』(56합집), 영남대 사학회, 1974.
홍이섭, 「고종시대의 조선사회」,『사회과학연구』2, 한국사회과학연구회, 1975.
성대경, 〈대원군 집정기의 권력구조〉, 《대동문화연구》15, 1982.
정옥자, 「사대중화질서 관념의 해체과정: 박규수를 중심으로」『국제정치논총』제44집 1호 (한국국제정치학회,2004)
또한, 흥선대원군의 정치사상적 특성은 격변하는 19세기말 국내의 상화에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사상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즉 한편으로는 문란해진 세도정치의 폐해를 근절하고 조선정부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한 왕권회복과 서구의 침략세력에 대항하고 내 국가와 내 민족을 지키겠다는 민족주체성의 확립에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정치사상에는 근대지향적인 의식이 포함하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들은 그의 개혁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흥선대원군의 정치사상은 개혁주의, 선도주의, 민본주의를 기본성격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정치사상은 그의 각종 국내외정책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정치사상은 근본적으로 유교적 테두리 내에서 진보적, 개혁적이라는 점에서 그 특색을 찾을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집행한 많은 정책들이 기본적으로 유교적 전통사상에 입각한 체계를 고수하였기 때문에 문란할대로 문란해진 사회모순을 혁파하여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개혁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경우 개혁이란 기존의 사회체제를 고수하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범위 내에서의 개혁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밖으로부터 밀려드는 서구의 침략세력에 대항하여야만 하였고, 또한 안으로는 세도정치하에서 나타난 각종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야 되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하였던 것이다.
대원군의 쇄국양이 정책은 외세의 침략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쇄국의 강화는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흐름을 따르지 못해 근대화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가 생존했던 시대적 배경과 대원군이란 위치에 서게 되는 배경을 알아야한다. 결국 요약하자면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왕권강화 즉, 정권을 잡은 기득권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법이며 세도정치기에서부터 이어지는 쇄국정 성향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세도정치기와의 차이가 있다면 따르던 중국이 서양의 침략으로 무너지자 더 이상 조선의 울타리 역할을 이행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러 측면에서 개항의 요구하는 서양열강에 대해 해결책을 가지지 못하였고,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서양의 힘을 앞세운 개강요구는 결국 더 쇄국적으로 흐르게 한 것이다.
대원군집권기의 쇄국정책은 대원군 한사람의 의지로서 정책의 결정으로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치적, 사상적, 문화적, 경제적인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일궈낸 일이라고 정의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원군은 시대의 조류에 부응하지 못한 리더로서 비판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결과론적인 입장에서의 항변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기득권층이 그러하듯 기존체제의 붕괴를 각오하면서 적극적으로 개항을 할 수 있는 왕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거란 것이 나의 소견이다.
이러한 성향은 대원군 집권기에 쇄국정책의 강력한 시행이 세도정치 하에서 이루어졌던 일련의 쇄국적 성향과 크게 다를게 없었단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문헌
《조선왕조실록》
《매천야록》 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서울 한양 출판, 1995
연갑수, 《대원군 집권기 부국강병정책 연구》,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유영익, 〈흥선대원군〉,《한국사 시민 강좌》13, 1993.
이만열, 〈대원군을 어떻게 볼 것인가〉,《우리 역사5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다출판사, 2000.
안외순, 「대원군의 사회적 기반과 지지세력」,『동방학』6, 한서대학교 동양고전 연구소, 2000
김윤곤, 「흥선대원군의 쇄국주의적 정책론」,『한국행정사학지』7, 한국행정사학회, 1999.
이완재, 「대원군정권과 박규수」,『한국학논집』20,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2.
연갑수, 「대원군 집정의 성격과 권력구조의 변화」,『한국사론』2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92.
김병우, 「대원군집권기 정치세력」,『계명사학』2, 계명사학회, 1991.
홍순창, 「쇄국양이와 위정척사사상」,『영남사학』(56합집), 영남대 사학회, 1974.
홍이섭, 「고종시대의 조선사회」,『사회과학연구』2, 한국사회과학연구회, 1975.
성대경, 〈대원군 집정기의 권력구조〉, 《대동문화연구》15, 1982.
정옥자, 「사대중화질서 관념의 해체과정: 박규수를 중심으로」『국제정치논총』제44집 1호 (한국국제정치학회,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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