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선사시대의 토기와 고대 문명의 토기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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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토기와 고대 문명의 토기 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토기[土器]

⑴ 토기
⑵ 토기의 특징
⑶ 토기의 용도
⑷ 토기 제작
⑸ 토기 제작 방식

Ⅱ. 신석기 토기

⑴ 신석기 토기
⑵ 빗살무늬토기 [櫛文土器(즐문토기)]
⑶ 덧무늬 토기[隆起文土器(융기문토기)]
⑷ 한국의 신석기 토기

Ⅲ. 청동기, 철기 토기

⑴ 민무늬토기 [無文土器(무문토기)]
⑵ 미송리형 토기 [美松里型土器]
⑶ 검은간토기 [黑陶(흑도)]
⑷ 덧띠토기 [粘土帶土器(점토대토기)]
⑸ 붉은간토기[紅陶/丹塗磨硏土器(홍도/단도마연토기)]

Ⅳ. 세계의 토기
⑴ 서양의 토기
⑵ 지중해와 중동 지방
⑶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⑷ 유럽
⑸ 토기의 발생 및 분포

Ⅴ. 고대문명의 토기

⑴ 메소포타미아 문명
⑵ 이집트 문명
⑶ 황하 강 문명
⑷ 인더스 문명

Ⅵ. 토기연구의 의의

본문내용

나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기원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편 일본의 조몬[繩文]토기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 의하면 약 1만 2000년 이전으로 올라가서 세계 최고(最古)의 토기로 볼 수 있으며, 혹자는 이것을 구석기시대 말기의 토기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토기의 출현과정은 일반적으로 식량채집사회에서는 덴마크, 북방 유라시아, 연해주, 한반도의 빗살무늬[櫛文]토기에 보이는 것처럼 음식물을 끓이는 데 쓰는 깊은 바리형[鉢形]의 기종(器種)에서 출발하는 것이 많다. 식량생산, 특히 농업사회에서 토기는 서아시아 ·유럽 ·중국 각지에서처럼 처음부터 여러 기종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Ⅴ. 고대문명의 토기
⑴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서 발달하여 진흙으로 만든 토기가 발달 했다. 기원전 27세기 이전에 남부 메소포타미아 평야에서 일어난 고대 초기 문명인 수메르 문명에서는 채색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BC 3000년대에는 하수나 시대와 텔할라프 시대에 해당하는 촌락문화가 메소포타미아 북부 전역에 퍼져 있었다. 이 문화는 바그다드의 북쪽 티그리스 강가에 있는 사마라(Samarra)를 대표적인 유적으로 하므로 사마라 문화라고 부른다. 사마라 문화는 하수나 시대와 텔할라프 시대에 걸쳐 있었으며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중류 지대에서만 발전했다. 사마라 문화와 텔할라프 문화는 모두 채색토기가 탁월하게 발달했다.
⑵ 이집트 문명
햄족 계통의 이집트인은 나일 강 유역에 거주하였다. 이집트는 중석기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로 접어들 무렵에는 건조화가 진전되어 나일 강의 수위도 내려가고 자연환경도 현재와 비슷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차차 나일하곡에 모여 정주하였으며, 농경 목축을 영위하면서 왕조시대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대체로 BC 5천년경의 일이다. 이 시대의 유적은 카이로 서남 80㎞에 있는 파이윰 문화, 중부 이집트 동안의 델 타사 문화가 알려져 있는데 반정주의 상태이며, 농경과 수렵이 반반이었다. 토기 석기 골각아기 바구니세공 직물 피혁제품 팔레트(화장접시) 꾸미개 등을 가지며, 이미 상 하 이집트에서 각각 그 특징이 나타나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신석기 시대의 후기에 속한다.
이에 뒤따르는 금석병용기(金石倂用期)는, 상 이집트에서는 바다리 문화, 하 이집트에서는 메림데 문화가 알려져 있다. 바다리에서는 고타에 의한 것이고, 주조법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최초의 구리제품이 발견되었으며, 토기가 현저히 발달했다.
⑶ 황하 강 문명
황하 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는 양사오 문화와 그로부터 발생한 룽산 문화 두 가지로 대별되는데 그 중, 양사오 문화는 확실치는 않으나 BC4000∼BC 2000년경이며, 칠무늬 토기를 만들어 썼다.
룽산 문화는 BC 2500∼BC1500년경이라고 추정된다. 황하 하류와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 검은 간 토기가 사용되었다. 그 중심지가 산둥성의 룽산이므로 이를 룽산 문화라 한다. (황하 하류)
⑷ 인더스 문명
인더스 문명에서는 다양한 색채의 토기가 발견 되었다. 주로 토기에는 나무와 동그라미를 무늬 넣었다.
인더스문명의 전신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인더스 강 유역 및 그 서쪽의 발루치스탄 구릉지대에 농경촌락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있으나, 인더스문명과의 계보(系譜) 관계나 발전의 경위는 증명되고 있지 않다. 이들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촌락 유적은 서아시아의 자르모 문화에 병행하는 무토기(無土器) 농경문화단계의 킬리 굴 무하마드(Kili Ghul Muhammad) 유적으로, 일광건조벽돌 집에 살면서 염소 ·양 등을 사육하고 보리류를 재배하였다. 그것은 대략 BC 4000년경으로 생각된다.
그 후 BC 3000년 전후까지의 문화변천의 흔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BC 3000년경의 농경 촌락문화는 가지무늬기토를 시표(示標)로 하는데, 적색토기문화와 순황색 토기문화로 나누어진다. 전자에는 조브(Zhob)문화 ·토가우(Togau)문화 등이, 후자에는 암리날(Amri-Nal)문화 ·쿨리(Kulli)문화 ·퀘타(Kueta)문화 등이 속한다.
토기에는 가지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가 있고, 유약을 입힌 도기도 있다. 무늬의 종류에는 원을 교차시켜서 만든 나뭇잎무늬 · 어린(魚鱗)무늬 · 격자목(格子目)무늬 ·빗살무늬 · 파상(波狀)무늬 ·신장형(腎臟形)무늬 · 보리수나 야자 등의 식물무늬, 공작무늬 ·어(魚)무늬 등이 있었으며, 드물지만 새끼사슴에 젖을 먹이는 암사슴과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남자를 그려 넣은 것도 있다.
또 작은 구멍이 많이 뚫린 단지는 화로 또는 치즈나 맥주의 찌꺼기를 거르는 그릇이라고 하며, 인더스문명의 특징의 하나이다.
Ⅵ. 토기연구의 의의
고고학에서 토기가 중요시되는 커다란 이유는 편년(編年) 및 지역권의 설정에서 중요한 결정수단으로 되기 때문이다. 점토는 가소성(可塑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형(成形) · 조정(調整) ·시문(施文)의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또 바탕흙에 섞어 넣는 재료의 종류도 다양하고, 소성의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따라서 토기의 제작기술은 다른 재질에 의한 도구류에 비교하여 특히 변화가 풍부하고 개개의 식별이 용이하다. 게다가 토기의 양은 다른 재질의 유물에 비하여 풍부한 것이 일반적이다. 토기는 만약 깨지거나 떨어지면 용이하게 새로운 제품으로 보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진대사의 속도가 빠르며, 다른 재질의 유물에 비교하여 연대적인 변화가 크고, 게다가 그 변화가 매우 섬세하다. 또한 점토는 사막을 제외한 어디에서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지역에서 제작할 수 있다. 이것이 토기의 지방색을 낳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많은 이유 때문에 토기가 등장한 이래 그 연대에 대하여는 제작기술 · 기종 · 형태 · 무늬에 따라 고고학연대의 시간적(수십 년~수백 년), 공간적 변천을 추구하기 위한 단위로서 토기형식 · 양식이 설정되고 있다.
* 참고
-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의 미 : 5토기 - 중앙일보사. 편집부
- 국립중앙 박물관 사이트
- '서양의 도자기 역사' - 네이버 지식iN
- 네이버 오픈사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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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08
  • 저작시기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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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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