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공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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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위인]공자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공 자 >

1. 공자시대의 중국

2. 공자의 생애

3. 인간으로서의 공자

4. 개혁가로서의 공자

5. 공자의 사상

본문내용

예제를 지지한 공자로서는 그때까지 다음과 같은 생각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곧 그 자신이 노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더러 노예가 되도록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 그 자신이 착취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착취를 받아들이도록 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적대계급 사이에는 "忠恕"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피압박 노동인민으로서 말한다면, 소위 "忠恕"란 철두철미한 기만인 것이다.
공자에게 "復禮"란 "仁"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忠恕의 道"를 실행한다는 것은 반드시 주례에 서 규정한 준칙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자기가 바라는 것"이거나 "바라지 않는 것"이 나를 막론하고 주례라는 원칙적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소위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귀족들에게 주례가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서로 타협하고 양보할 것을 유구한 것으로 자신의 이익 을 고려할 때는 동시에 다른 귀족의 이익도 살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의 목적은 모순을 조화시키고 주례의 구질서를 개선, 유지하는 데 있을 뿐이다. 공자는 당시 두 가지 종류의 소유제에 대한 모순을 반영하는 통치계급 사이의 투쟁을 모두 노예소유주 귀족들 사이의 군신 내 부의 모순으로 보았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禮"에 의한 제재, 사상적으로는 "仁"의 고취로써 이와 같은 모순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이 공자가 제창한 "충서의 도"의 역사적 내용이자 계급적 정체이다. 공자는 결코 모든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며, 심지어는 착취계급 전부를 사랑한 것도 아니다. 그가 사랑한 것은 오직 착취계급 가운데 일부분인 노예소유주 귀족에 지나지 않았다. 공자는 노예소유주 귀족의 입장에 서서 "자기가 서려고 하면 남을 서게 해주고 자기가 이루려고 하면 남이 이루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허풍을 칠 수는 있어도 내가 참월을 생각한다면 남 의 참월도 지지해주고 내가 반란을 꾀한다면 남의 반란에도 공감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이다. 이러한 충서의 도는 공자에게는 결코 허락될 수 없다. 일정 계급적 도덕이론은 이 계급의 정치제도에 기여하는 것으로, 공자의 "인"도 "예"에 종속되는 것이다.
공자는 "인"을 "復禮"를 추진하는 일종의 도덕적 동력이자 사상적 근거로 보는 한편, "인"의 실행 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인이 어찌 멀리 있으랴? 내가 인을 바란다면 그 인 은 이미 와 있다."라고 공자는 말한다. 자신이 "인"은 바로 온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인"을 행 하려고만 한다면 "인"은 바로 온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인"을 양심이나 자아의식의 산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유심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공자는 주관적인 도덕동기와 소위 "내성적"인 자아수양의 역할을 크게 내세웠다. 그는 "인의 실천은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지 어찌 남에게 서 비롯되랴?"라고 강조하였다. 이는 "인"의 실천이 바깥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자각과 주관에 따른 노력에 의거할 뿐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공자는 노예소유주 귀족들이 오직 "인"을 실행하고 자각적으로 자기를 억제하며 주례의 규정을 준수할 수 있으면 "인"의 원칙 이 실현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례 또한 옹호되고 회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노예제 사회가 해체되어 봉건적 소유제 사회로 나아가돈 역사적 변혁기에 위치하는 공자의 인에 대한 학설은 한 역사시대의 복잡한 사회모순, 특히 통치계급 상층에서 발생한 모순으로서 분화와 투쟁을 반영한다. 공자가 중국 철학사에서 처음으로 통치계급의 내부관계를 조정하는 원칙으로서 하나의 도덕범주인 "인"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통치계급 내부에 새로운 위기가 출현했음을 나타내 는 것으로 불가결한 새로운 조치였다. 그러나 공자는 노예제 사회의 종법제도를 옹호하는 반동적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의 도덕학설도 위선과 기만적 성질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 같은 본질이 일체의 반동계급의 수요를 충족시켰으며 이로써 그는 중국 역대의 반동통치자나 모 든 착취제도의 옹호자로 채용되었던 것이다. 공자의 "인"의 학설은 역대 봉건지주계급 사상가에 의해 지지, 보완되어 "三綱五常"과 "忠孝節義"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봉건 예교사상으로 발전하여 봉건통치를 옹호하는 냉혹한 사상적 압박도구가 되었다. 이리하여 중국 역사상 공자 때까지 "仁 慈"의 의미밖에 없었던 "인"이 봉건지주계급의 독재를 위한 마취제이자 항상 노동인민의 신체를 얽어매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었던 것이다.

키워드

공자,   맹자,   성인,   중국,   춘추,   춘추전국시대,   주나라,   노나라
  • 가격1,5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7.02.27
  • 저작시기2007.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6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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