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향가의 개념과 범주
Ⅲ. 향가의 특징
Ⅳ. 향가의 율격
Ⅴ. 향가의 민요적 성격
Ⅵ. 향가에 나타난 사상적 배경
1. 풍요
2. 도솔가
3. 안민가
4. 제망매가
5. 원앙생가
6. 도천수대비가
7. 찬기파랑가
8. 혜성가
9. 우적가
Ⅶ. 결론
Ⅱ. 향가의 개념과 범주
Ⅲ. 향가의 특징
Ⅳ. 향가의 율격
Ⅴ. 향가의 민요적 성격
Ⅵ. 향가에 나타난 사상적 배경
1. 풍요
2. 도솔가
3. 안민가
4. 제망매가
5. 원앙생가
6. 도천수대비가
7. 찬기파랑가
8. 혜성가
9. 우적가
Ⅶ. 결론
본문내용
청하자 차를 다려 주었는데 그 차의 맛이 이상하고 잔 속에서 이상한 향기가 풍겼다는 표현을 보면 미륵불과 보통의 인연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國仙으로 화랑의 우두머리가 된 문노를 미륵신앙과 관련하여 미륵선화라고 호칭함을 볼 때, 화랑을 미륵의 화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 진지왕 때 흥륜사의 승 眞慈가 “원컨대 大聖이 화랑으로 출현하여 내가 항상 그 聖容을 모시도록 해달라”는 기원으로 지상에 미륵이 化現하여 그 이상이 화랑에게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한 경우에도 그 정성이 미륵을 감응시켰다고 할 수 있다. 진자는 미륵의 화신인 미시라는 이름의 국선을 7년이나 모셨다고 한다. 미시가 홀연 사라진 후 진자가 미시의 慈澤을 입고 그의 淸化를 이었으므로 스스로를 뉘우치고 고치어서 미시는 미륵의 化現이며 그 미시를 모시고자한 진자의 간원에서 미륵선화인 미시가 국선으로서 그 이상을 이루어진 진자의 심경처럼 충담사도 미륵과 화랑이 일체화된 이상에서 <찬기파랑가>를 불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8. 혜성가
舊理東尸汀叱 옛날 동쪽 물가
乾達婆矣遊烏隱城叱良望良古 건달파의 논 城을랑 바라고
倭理叱軍置來叱多 왜군도 왔다
烽燒邪隱邊也藪耶 횃불 올린 어여 수풀이여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 세 화랑의 산 보신다는 말씀 듣고
月置八切爾數於將來尸波矣 달도 갈라 그어 잦아들려 하는데
道尸掃尸星利望良古 길 쓸 별 바라고
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多 혜성이여 하고 사뢴 사람이 있다.
達阿羅浮去伊叱等邪 아아, 달은 떠나 버렸더라.
此也友物比所音叱彗叱只有叱故 이에 어울릴 무슨 혜성을 함께 하였습니까
이 글을 지은 융천사의 직분은 星怪를 물리쳤다는 점에서 주술적인 성격과 관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융천사에 의한 星怪의 퇴치는 배경설화가 구전하면서 개입된 상징적 표현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융천사의 직분은 감통편에 배경설화가 위치한다는 점과 작자로 말미암아 화랑의 유람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에서 월명사와 유사할 것으로 파악된다. 월명사가 물리친 ‘二日竝現’의 日怪가 정치 상황에서 빚어진 것처럼 星怪 또한 유사한 것이다. 그리고 융천사가 화랑의 유람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화랑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화랑은 仙徒였고, 선도가 신궁을 받드는 데에서 출발했으며 신궁이 조상신이 아닌 천지신이란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신라 불교가 지닌 특수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무속신앙과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융천사는 승려이면서 낭도승이었고, 신라 불교의 특성을 독립적인 종교로써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혜성가>의 성격을 주술적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 것이다.
9. 우적가
自矣心米 제 마음의
史毛達只將來呑隱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日遠鳥逸過出知遣 日遠鳥逸 달이 난 것을 알고
今呑藪未去遣省如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但非乎隱焉破主 다만 잘못된 것은 强豪님,
次弗史內於都還於尸郞也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다.
此兵物叱沙過乎 兵器를 마다하고
好尸曰沙也內乎呑尼 즐길 법을랑 듣고 있는데,
阿耶唯只伊吾音之叱恨隱陵隱 아아, 조만간 善業은
安尙宅都乎隱以多 아직 턱도 없습니다.
1행의 ‘제 마음’은 自性으로써 一切衆生의 심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심성은 중생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본성으로 佛性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3-4행은 해가 저물어 새가 숨어버린 ‘日遠鳥逸’과 ‘달이 난’ 부분을 결부시킬 때 그동안 미망의 상태에 있던 시간을 깨닫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도하러 가는 영재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작품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결구에서의 노승이 도적에게 보였던 교화의 내용이 부처와 비교할 때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부분이다. 병기로 위협하는 도적들을 교화하는 노승의 행동 또한 중생을 구제하는 善業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데도, 노승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상대적으로 절대자의 덕을 높이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원성왕대에 영재가 도적을 만나 그들을 교화시킨 사건이 구전되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성왕대는 전부문에 걸쳐 많은 문제가 있던 시기였다. 14년 동안 해마다 각종 재난과 이변이 일어났다. 이런 시기에 도적떼가 횡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들의 성격 또한 폭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도적들마저 교화시킨 영재의 이야기는 교화의 일례로써 구전시키기에 알맞은 것이었고 그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백성들의 정서에는 자연스럽게 부처의 공덕신앙이 투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Ⅶ. 결론
향가란 본래 중국의 노래에 대한 ‘우리의 노래’를 뜻하는 명칭으로, 보다 좁은 의미로는 신라 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 향찰식 문자로 지어진 노래 전반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향가는 달리 ‘詞腦歌’, ‘詩內歌’, ‘思內樂’ 등으로도 지칭된다.
향가는 4·8·10구체가 있는데, 4구체는 이름없는 사람들이 지어 부른 민요풍의 노래이고, 8·10구체는 불교적 귀족 문화를 배경으로 고도의 서정을 노래한 서정 가용이다. 특히 10구체 향가는 통일신라 시대의 문화적 관록이 고도로 양식화된 것으로서 향가의 완성형이라 일컬어지며, 이것이 ‘사뇌가’라는 하나의 장르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현존하는 향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14수와 <<균여전>>에 실린 <普賢十願歌> 11수를 합하여 모두 25수이며, 12세기 초 고려 예종이 지었다는 <도이장가>와 정서가 지은 <정과정>을 각각 그 문자와 형식의 유사성을 근거로 하여 향가의 잔영으로 파악하고 있다.
향가의 작가는 대부분 승려나 화랑 등으로 보이며 그 내용 역시 불교적 색채가 짙은 것이 많다. 진성여왕대에 각간 위홍과 대구 화상이 <<삼대목>>이라는 향가집을 편찬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현전하는 향가집은 없다. <<삼국유사>> 소재 향가는 대부분 그 배경 설화와 함께 전승되고 있어 노래 자체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설화와의 관련성 여부가 논란거리로 대두되기도 한다.
통일신라 시대에 꽃핀 불교적 귀족문화를 배경으로 민족 문학으로서의 개성을 지니고, 사상이나 내용 면에서 고대 시가와는 다른 일정한 수준을 보여 주었다는 데에 향가의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또 진지왕 때 흥륜사의 승 眞慈가 “원컨대 大聖이 화랑으로 출현하여 내가 항상 그 聖容을 모시도록 해달라”는 기원으로 지상에 미륵이 化現하여 그 이상이 화랑에게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한 경우에도 그 정성이 미륵을 감응시켰다고 할 수 있다. 진자는 미륵의 화신인 미시라는 이름의 국선을 7년이나 모셨다고 한다. 미시가 홀연 사라진 후 진자가 미시의 慈澤을 입고 그의 淸化를 이었으므로 스스로를 뉘우치고 고치어서 미시는 미륵의 化現이며 그 미시를 모시고자한 진자의 간원에서 미륵선화인 미시가 국선으로서 그 이상을 이루어진 진자의 심경처럼 충담사도 미륵과 화랑이 일체화된 이상에서 <찬기파랑가>를 불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8. 혜성가
舊理東尸汀叱 옛날 동쪽 물가
乾達婆矣遊烏隱城叱良望良古 건달파의 논 城을랑 바라고
倭理叱軍置來叱多 왜군도 왔다
烽燒邪隱邊也藪耶 횃불 올린 어여 수풀이여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 세 화랑의 산 보신다는 말씀 듣고
月置八切爾數於將來尸波矣 달도 갈라 그어 잦아들려 하는데
道尸掃尸星利望良古 길 쓸 별 바라고
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多 혜성이여 하고 사뢴 사람이 있다.
達阿羅浮去伊叱等邪 아아, 달은 떠나 버렸더라.
此也友物比所音叱彗叱只有叱故 이에 어울릴 무슨 혜성을 함께 하였습니까
이 글을 지은 융천사의 직분은 星怪를 물리쳤다는 점에서 주술적인 성격과 관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융천사에 의한 星怪의 퇴치는 배경설화가 구전하면서 개입된 상징적 표현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융천사의 직분은 감통편에 배경설화가 위치한다는 점과 작자로 말미암아 화랑의 유람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에서 월명사와 유사할 것으로 파악된다. 월명사가 물리친 ‘二日竝現’의 日怪가 정치 상황에서 빚어진 것처럼 星怪 또한 유사한 것이다. 그리고 융천사가 화랑의 유람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화랑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화랑은 仙徒였고, 선도가 신궁을 받드는 데에서 출발했으며 신궁이 조상신이 아닌 천지신이란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신라 불교가 지닌 특수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무속신앙과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융천사는 승려이면서 낭도승이었고, 신라 불교의 특성을 독립적인 종교로써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혜성가>의 성격을 주술적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 것이다.
9. 우적가
自矣心米 제 마음의
史毛達只將來呑隱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日遠鳥逸過出知遣 日遠鳥逸 달이 난 것을 알고
今呑藪未去遣省如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但非乎隱焉破主 다만 잘못된 것은 强豪님,
次弗史內於都還於尸郞也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다.
此兵物叱沙過乎 兵器를 마다하고
好尸曰沙也內乎呑尼 즐길 법을랑 듣고 있는데,
阿耶唯只伊吾音之叱恨隱陵隱 아아, 조만간 善業은
安尙宅都乎隱以多 아직 턱도 없습니다.
1행의 ‘제 마음’은 自性으로써 一切衆生의 심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심성은 중생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본성으로 佛性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3-4행은 해가 저물어 새가 숨어버린 ‘日遠鳥逸’과 ‘달이 난’ 부분을 결부시킬 때 그동안 미망의 상태에 있던 시간을 깨닫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도하러 가는 영재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작품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결구에서의 노승이 도적에게 보였던 교화의 내용이 부처와 비교할 때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부분이다. 병기로 위협하는 도적들을 교화하는 노승의 행동 또한 중생을 구제하는 善業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데도, 노승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상대적으로 절대자의 덕을 높이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원성왕대에 영재가 도적을 만나 그들을 교화시킨 사건이 구전되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성왕대는 전부문에 걸쳐 많은 문제가 있던 시기였다. 14년 동안 해마다 각종 재난과 이변이 일어났다. 이런 시기에 도적떼가 횡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들의 성격 또한 폭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도적들마저 교화시킨 영재의 이야기는 교화의 일례로써 구전시키기에 알맞은 것이었고 그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백성들의 정서에는 자연스럽게 부처의 공덕신앙이 투영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Ⅶ. 결론
향가란 본래 중국의 노래에 대한 ‘우리의 노래’를 뜻하는 명칭으로, 보다 좁은 의미로는 신라 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 향찰식 문자로 지어진 노래 전반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향가는 달리 ‘詞腦歌’, ‘詩內歌’, ‘思內樂’ 등으로도 지칭된다.
향가는 4·8·10구체가 있는데, 4구체는 이름없는 사람들이 지어 부른 민요풍의 노래이고, 8·10구체는 불교적 귀족 문화를 배경으로 고도의 서정을 노래한 서정 가용이다. 특히 10구체 향가는 통일신라 시대의 문화적 관록이 고도로 양식화된 것으로서 향가의 완성형이라 일컬어지며, 이것이 ‘사뇌가’라는 하나의 장르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현존하는 향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14수와 <<균여전>>에 실린 <普賢十願歌> 11수를 합하여 모두 25수이며, 12세기 초 고려 예종이 지었다는 <도이장가>와 정서가 지은 <정과정>을 각각 그 문자와 형식의 유사성을 근거로 하여 향가의 잔영으로 파악하고 있다.
향가의 작가는 대부분 승려나 화랑 등으로 보이며 그 내용 역시 불교적 색채가 짙은 것이 많다. 진성여왕대에 각간 위홍과 대구 화상이 <<삼대목>>이라는 향가집을 편찬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현전하는 향가집은 없다. <<삼국유사>> 소재 향가는 대부분 그 배경 설화와 함께 전승되고 있어 노래 자체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설화와의 관련성 여부가 논란거리로 대두되기도 한다.
통일신라 시대에 꽃핀 불교적 귀족문화를 배경으로 민족 문학으로서의 개성을 지니고, 사상이나 내용 면에서 고대 시가와는 다른 일정한 수준을 보여 주었다는 데에 향가의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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