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고대시대 유학의 연원, 전개
2. 삼국시대 유학의 연원과 전개
3. 고려 유교사상의 전개
2. 삼국시대 유학의 연원과 전개
3. 고려 유교사상의 전개
본문내용
)의 문인들이 출사하여 활동하던 시기인 예종대에 권적(權適: 1094~1147)은 송의 태학에 들어가 그들과 교류하고 의리를 추구하는 성리학적 학풍을 익히고 돌아왔는데, 그의 학문은 자신의 아들 권돈례(權敦禮)와 임춘(林椿)에게 전해진다. 무인집권하에서 권돈례(權敦禮)는 원주(原州)에 은거하여 유학을 가르치면서 박인석(朴仁碩) 등과 함께 성리학적 학풍을 견지해간 것으로 보인다.
은거한 유학들의 저술은 전하는 것이 없어서 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이 시기 문장가들의 글 속에 표현된 유학의 학풍은 타 사상과 함께 융합되어 표현되는 절충주의적 입장을 보인다. 특히 불교와 유학의 차이들을 동질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화해시키는 입장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와같은 입장은 유학자의 사회적 위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졌음을 보여준다.
4) 고려말기의 유학(충렬왕~공양왕)
고려말기 유학은 무인정권의 말기 40여년에 걸친 몽고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시점에서 원(元)이라는 새로운 외세에 대응하면서 전개된다. 원은 송과 달리 고려에 대하여 적극적인 외교관계를 갖는 개방정책을 취하였는데, 이 때문에 고려 유학자들은 원의 사상계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가지면서 유학연구의 폭을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새로운 시대사조로서 성리학을 수용하는 한편, 문벌귀족세력을 억제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면서 유학이념에 따른 국가운영방식을 재건하는 새로운 개혁의 주체로 활동한다. 이어 원명교체라는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에 대응하여 성리학 이념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체제를 수립해간다. 이러한 개혁의 전개과정에서 유학자들의 활동은 두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국학을 재건하고, 국가운영을 위한 새로운 이론으로서 성리학을 적극 수용하는 단계이다. 둘째, 성리학 이념에 따른 국가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국내 유학자들에 의하여 개혁이 추진되는 단계이다.
무인집권과 대몽 항쟁기 동안 심대한 타격을 입은 유학은 충렬왕대부터 전개되는 국학 재건운동과 함께 회복되기 시작한다. 국학 재건운동은 주로 과거 급제자출신으로 원(元)에 유학하거나 또는 원의 과거에 급제한 해외파 유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리고 이들 상당수는 삼남(三南) 지역에 본관(本貫)을 둔 과거급제자로서 주로 무인정권이 붕괴된 이후 부각되기 시작하던 신진세력이었다. 이들은 원으로부터 이미 관학(官學)으로서 원의 통치이념이 된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고려 유학의 학풍을 새롭게 변화시켜간다.
은거한 유학들의 저술은 전하는 것이 없어서 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이 시기 문장가들의 글 속에 표현된 유학의 학풍은 타 사상과 함께 융합되어 표현되는 절충주의적 입장을 보인다. 특히 불교와 유학의 차이들을 동질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화해시키는 입장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와같은 입장은 유학자의 사회적 위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졌음을 보여준다.
4) 고려말기의 유학(충렬왕~공양왕)
고려말기 유학은 무인정권의 말기 40여년에 걸친 몽고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시점에서 원(元)이라는 새로운 외세에 대응하면서 전개된다. 원은 송과 달리 고려에 대하여 적극적인 외교관계를 갖는 개방정책을 취하였는데, 이 때문에 고려 유학자들은 원의 사상계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가지면서 유학연구의 폭을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새로운 시대사조로서 성리학을 수용하는 한편, 문벌귀족세력을 억제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면서 유학이념에 따른 국가운영방식을 재건하는 새로운 개혁의 주체로 활동한다. 이어 원명교체라는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에 대응하여 성리학 이념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체제를 수립해간다. 이러한 개혁의 전개과정에서 유학자들의 활동은 두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국학을 재건하고, 국가운영을 위한 새로운 이론으로서 성리학을 적극 수용하는 단계이다. 둘째, 성리학 이념에 따른 국가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국내 유학자들에 의하여 개혁이 추진되는 단계이다.
무인집권과 대몽 항쟁기 동안 심대한 타격을 입은 유학은 충렬왕대부터 전개되는 국학 재건운동과 함께 회복되기 시작한다. 국학 재건운동은 주로 과거 급제자출신으로 원(元)에 유학하거나 또는 원의 과거에 급제한 해외파 유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리고 이들 상당수는 삼남(三南) 지역에 본관(本貫)을 둔 과거급제자로서 주로 무인정권이 붕괴된 이후 부각되기 시작하던 신진세력이었다. 이들은 원으로부터 이미 관학(官學)으로서 원의 통치이념이 된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고려 유학의 학풍을 새롭게 변화시켜간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