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적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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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 적석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본문
1) 적석총의 기원에 관한문제
2) 적석총의 분포
3) 적석총의 구조와 형식
(1) 鄭栢雲
(2) 鄭燦永
(3) 朱榮憲
(4) 『고구려문화』
(5) 『조선고고학개요』
(6) 李殿福
(7) 姜仁求
(8)田村晃一
(9) 魏存誠
(10) 藤田亮策
(11) 陳大爲
(12) 方起東
(13) 池炳穆
4) 葬具 ․ 副葬品 ․ 매장의례
5) 고구려 고분 구조의 변천

3. 결론

본문내용

변천의 둘째 단계는 절충과 통합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셋째 단계는 단실구조의 석실봉토분이 중심이 되는 6세기 이후부터이다. 특히 방형 현실과 중앙 연도, 평행 삼각고임 천장의 단실구조는 고구려 고분을 대표하는 구조로, 고구려의 영역확대에 따라서 고구려 전역에서 축조된다. 따라서 셋째 단계는 단실구조의 석실봉토분이 고구려 고분의 전형으로 재창조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적석총에서 석실과 벽화를 채용하고, 적석과 봉토분구가 결합된 기단봉토분의 축조는 새로이 등장한 석실봉토분이나 벽화분이 기존의 석곽적석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적석총에서 새로운 요소를 개발하여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구려 고분 변천의 단계는 단절적이거나 단선적이라기보다는 고구려 고유의 적석총이 새로이 받아들인 봉토와 석실을 수용 통합하여, 석실봉토분이 고구려의 새로운 묘제로 재창조되는 통합과 재창조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통합과 재창조라 할 수 있는 고구려 고분구조의 변천과정에는 동북아시아 묘제 변천의 보편성과 함께 고구려 고유의 특수성이 함께 한다.
먼저, 고구려 고분 구조 변천과정의 보편성은 방형을 기본으로 하는 墳形과 葬具, 매장시설 등에서 관찰된다. 당시 동북아시아에서는 목관을 장구로 사용한 방형 분구묘가 유행하였으며, 單葬에서 合葬으로 매장시설은 수혈식의 棺, 槨에서 횡혈식의 室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漢代 이래 중국묘제 변화의 보편적인 과정으로, 동북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관찰된다. 매장 지설의 구조에서도 중국 한대 무덤의 매장시설은 여러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있다가 차츰 南北朝시대를 거치면서 단실구조로 변화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6세가를 전후한 고구려의 석실에서도 관찰된다,
반면, 고분구조의 특수성은 분구와 매장시설의 축조재료 및 매장시설의 구조와 위치 등에서 관찰되나, 고구려 고분의 커다란 특징은 분구와 매장시설 모두 돌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즉 기원전 4~3세기를 거치면서 선사시대 돌무덤을 사용하였던 중국동북지방의 여러 집단들은 중국 중원의 영향으로 돌무덤을 대신하여 목관(곽)묘를 사용하지만, 압록강 중하류역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세력권에서는 분구 뿐 만 아니라 매장시설을 돌로 축조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여타지역과 구별된다, 때문에 적석총은 고구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가 된다.
한편, 횡혈식 장법의 확산과 함께 중국전역에서는 벽돌로 매장시설을 축조하지만, 고구려에서는 돌을 사용하고 있어, 중국과 차이를 보인다. 축조재료의 차이는 매장시설 구조의 차이를 초래한다. 중국의 경우 주매장 공간의 평면은 양 長壁이 弧線인 장방형이며, 천장은 터널형이 중심이 되지만, 고구려에서는 방형 평면이 선호되고, 천장은 고임식이 중심이 되어 중국과 차이를 보인다.
이 외에도 매장시설의 위치에서도 중국과 차이를 보인다. 가령 합장이 가능한 매장시설이라도 중국의 매장시설은 지하 깊숙이 있는 반면, 고구려의 매장시설은 적석총의 경우 분구 중에, 봉토분의 경우 반지하나 지하에 위치하여 지하 깊숙이 있는 중국과 구별된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고구려 고분의 변천과정이 중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그러한 점에서 고구려 고분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3. 결론
고구려의 고분은 적석총가 봉토분으로 대별되지만, 700여 년간의 긴 역사 속에서 고구려 고분은 지역과 시간에 따라 입지의 분포, 구조와 부장품 등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복잡 다양한 고구려 고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구려 전 영역에서 정형성과 통일성을 갖고 전개되어간다.
한편 고구려를 대표하는 적석총에는 고구려의 정체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돌로 만든 적석총이나, 사신이 중심이 된 벽화고분은 중국과는 구별되는 고구려 고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죽은 자를 매장하는 행위에는 무덤을 축조하는 집단의 전통적 관습이나 사후관념이 반영되어 있으면, 고분에서의 차이는 무덤 축조집단의 차이를 의미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적석총은 고구여 주민이 중국과는 구별되는 주민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고구려의 고분은 동북아시아에서 고구려의 정체성이 잘 반영된 고구려의 주체적인 성장과 발전의 산물로 고구려의 높은 문화수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구려를 우리 선조가 세웠던 자랑스러운 국가로 생각하는 것에 동시에, 한편으로는 고구려를 가깝게 느끼면서도 또 매우 멀게 느껴지는 국가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지리적으로 통치 영역이 이북지역과 만주이고, 그에 따라 고구려의 유적을 많이 보지 못해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강이나 임진강 유역에서 5세기 고구려가 남하해 왔었을 당시의 유적들이 발굴되면서 우리의 고구려 유물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고 있긴 하지만 고구려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발굴 보고서를 보면서 이와 같은 현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 집안에 갔을 때, 훼손되어가고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고구려의 유적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중국정부는 고구려 유적보호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두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1. 徐光輝,「高句麗積石墓硏究』,『靑果集』1(吉林大學考古專業20周年記念文集), 1993
2. 池炳穆,「高句麗 成立過程考」,『白山學報』34, 1987
3. 魏存誠,「高句麗積石墓的類型和演變」,『考古學報』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1987-3
4. 정찬영,「고구려 적석총에 관하여」,『문화유산』,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61-5
5. 정찬영,「기원 4세기의 고구려 묘제에 관한 연구」,『고고민속논문집』5, 1973
6. 주영헌,「고구려적석무덤에 관한 연구」,『문화유산』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62-2
7. 강현숙,「고구려적석총의 등장에 대하여」,『경기사학』3, 1999
8. 강인구,「평양학계의 고구려 고분조사연구 성과 분석」,『북한의 한국학연구성과 분석』, 정신문화연구원, 1991
9. 강현숙,「고구려고분」,『한국고대의 Global Pride 고구려』, 통천문화사, 2005
10.李殿福, 「集安高句麗墓硏究」,『考古學報』,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1980-2
11.임영진, 「고구려 고고학」,『국사관논총』33,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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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28
  • 저작시기2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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