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친일논리][친일파 청산][친일파 처단][이완용][송병준][일진회][김활란][모윤숙][의열투쟁]친일파의 친일논리, 활동과 친일파 청산 및 친일파 처단(이완용, 송병준, 일진회, 김활란, 모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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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친일논리][친일파 청산][친일파 처단][이완용][송병준][일진회][김활란][모윤숙][의열투쟁]친일파의 친일논리, 활동과 친일파 청산 및 친일파 처단(이완용, 송병준, 일진회, 김활란, 모윤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근대 일본의 사상 흐름과 조선 침략론

Ⅲ. 친일파의 친일논리

Ⅳ. 친일파의 활동

Ⅴ. 해방 후 친일파 청산

Ⅵ. 이완용

Ⅶ. 송병준과 일진회

Ⅷ. 김활란과 모윤숙

Ⅸ. 친일파 처단과 의열투쟁

Ⅹ. 결론

본문내용

교통국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즉 황해도 은율에서 친일군수 崔丙赫을 처단한 일과, 은율읍 친일부호 高學監을 처단한 일은 황해도 연통제와 연계되어 있다고 보이며, 함남 풍산의 부호 金丙善?廉相漢이 처단된 것도 함남 교통사무국과 연계되었다고 보인다. 특히 평북 창성군에서는 1920년 1월 2일 연통제 창성기관이 설치된 이래 그해 10월까지 金昌鎰?姜昌憲?李基用, 許촉(王+蜀)?兪在赫 등의 친일파가 처단되었다. 창성군감에 임명된 姜濟羲는 당시 평북독판부가 있던 만주 관전현 향노구에 창성군 임시군청을 개설하고 군내에 독립운동자를 파견하여 군?면 기관을 편성하였다. 이들은 권총을 소지하고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군자금도 거두고 있었다. 또한 의주군에도 임정의 교통국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평북 의주군 古館面에서 전형사 洪世憲이 모젤권총으로 저격을 받고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다. 이 사건도 의주군 고관면 토교에 설치되어 있던 남구교통소와 연관이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의주군 옥상면의 친일 면장 金麟書가 처단되었는데, 이곳에도 역시 옥상 교통소가 설치되어 金時恒이 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었다. 이처럼 1920년 북부지역에서 의열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임정의 연통제?교통국의 활동과 연계되어 있었으며, 이들 조직이 국내의 비밀결사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친일파에 대한 처단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또한 임정의 친일파 처단은 주로 상해에서 일어났다. 상해에는 일제가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체포와 감시를 위해 파견한 밀정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에 대한 처단을 통해 임정은 정부를 보위하고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경무국 주도로 金道淳?鄭弼和?黃學善 등 밀정들을 처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20년까지 활발하던 의열투쟁은 그후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그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지만, 임정의 운동노선이 외교중심으로 흘렀다는 것과 파리강화회의 이후 이념상의 갈등과 지방적 파벌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운동역량이 통솔?결집되지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열투쟁 방략을 제한적으로 사용하자는 분위기도 있었다. 즉 1920년 5월 내무총장 안창호가 의열단 단장 김원봉에게?폭탄사용을 단독적으로 기율없이 사용하지 말고 (임정) 군사당국에 예속하여 실력을 漸畜한 뒤 상당한 때에 大擧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의열방략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1922년 3월 의열단에 의해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저격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임정은 암살?저격을 한 의열단과 무관함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임정은 성립 초기 일정부분 친일파에 대한 의열투쟁을 인정하기는 하였지만, 그 주류적 방략이 비폭력이었기 때문에 그후 별다른 의열활동을 보이지 못하였고, 그것을 대신하여 의열투쟁은 의열단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26년 병인의용대가 결성되면서 임정의 의열투쟁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임정의 활동이 부진하던 시기 정부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단체는 의열활동을 통해 정부를 지원하고 친일세력을 제거함으로써 독립의 의지를 선전하고자 하였다. 병인의용대는 3차례에 걸쳐 상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며, 수많은 일본인 관리와 밀정들을 처단하려고 했던 대표적 의열투쟁 단체였다.
1920년대 중반 이후 부진했던 임정은 1931년 일제가 만주침략을 단행하면서 독립전쟁의 분위기가 성숙되어 가자 이를 적절히 이용하기 위해 의열투쟁의 방략을 사용하였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한인애국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인애국단은 임정의 직속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단장인 김구의 전담하에 의열투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30년대 초반에는 주로 아나키즘계에서 주도하였는데, 임정은 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그것을 지원하였다.
Ⅹ. 결론
친일파들의 행적은 宗敎, 文化, 經濟, 軍事, 政治등 모든 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적인 면에서 일단 살펴보면 불교와 기독교에서 그 두드러진 면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 불교를 수입하면서 우리는 그네들의 사상까지도 수입하기에 이르렀고 일본에 승적을 가지고 있는 승려들이 늘어나면서 그들 또한 일본인 행세를 하는 것이 마치 더 잘난 사람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정춘수이나 김활란 같은 사람을 들 수 있는데 기독교라는 新 종교 속에서 학문을 닦고 그 시대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마저 친일행각을 과감하게(?) 벌임으로 해서 반민족 행위를 일삼았던 자들이다. 정춘수의 경우 알려진 대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하나로 투옥되고 풀려난 직후 풀려나서는 신사참배를 하고(기독교 윤리에 맞지 않음) 황민화체제를 완공시킴으로 해서 그의 친일행각,친일 사상 역시 완성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김활란 역시 애국금차회라는 말도 안되는 반민 행각을 벌이고서도 조금의 반성의 빛도 보이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여자다.
문화면에서는 이광수, 이인직, 최남선등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익히 들어왔던 사람들이며 우리나라 근대 한국문학의 대표 격이라고 칭하던 사람들의 행적이다. 그들은 그들의 붓을 통해 우리민족의 사상을 침투해 왔고 식민사관을 부르짖으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방해해 왔다. 특히 최남선은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람으로써 민족대표 33인중의 한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의 또하나의 선구자였단 주요한 역시 최초의 자유시의 시인이라고 교과서에 대문짝 만하게 배웠건만 역시 친일파였다.
경제면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는 더욱 암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더욱 포괄적인 범위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거슬러 을사조약 이전, 부산항등 3개항이 개항되었을 때부터 많은 친일행각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을 송병준을 들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최초로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나라를 매각한 그야말로 賣國賣族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다. 우리나라 경제상권을 자기 맘대로 팔아버리다니, 정말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정치·군사면은 나라의 핵심을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라의 핵심을 이루는 만큼 여기에 관계된 친일 인사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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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4.17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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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0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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