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종대 호족들의 정권쟁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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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세력 다툼의 배경-혜종代의 정치상황

2.왕규 vs 혜종세력

3.왕규 vs 왕요, 왕소, 왕식렴(서경세력)

본문내용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혜종의 임종 직전에 서경 세력인 왕식렴이 개경으로 들어와 왕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포위하면서 개경파인 왕규는 이를 저지하려 했지만 개경파를 지지하던 혜종이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청주 김씨 등의 중립적인 세력들이 서경파로 돌아서면서 개경파는 점점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립 세력을 흡수한 서경파는 개경파의 대표인 박술희를 반역죄로 몰아 귀양을 보내어 죽인다. 박술희의 죽음 이후 왕규를 중심으로 한 개경파는 총력전에 돌입하지만 이미 힘을 잃은 개경파는 서경파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혜종의 임종 직후 무력으로 개경파를 제압, 왕규를 귀양 보내어 죽이기에 이른다. 이렇게 왕규와 왕요 세력의 대립은 결국 왕요를 중심으로 한 서경 세력의 승리로 끝난다.
왕규와 왕요 세력의 대립은 왕권을 두고 싸웠다고 볼 수도 있으나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왕식렴이라는 서경세력을 끌어들인 왕규, 왕소는 혜종이 지지하던 개경파를 제거하지 않고는 왕위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개경파의 일원으로 혜종을 뒷받침해주던 박술희와 왕규가 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뜻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개경파 자체가 그들의 적이었던 것이다. 그 일원이었던 왕규는 어떠한 형식이었던 왕요를 비롯한 서경 세력과 가장 직접적으로 부딪힌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왕요 세력에 의해 제거되기는 했지만 왕규를 비롯한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이었다는 것으로 볼 때 혜종 대의 가장 분명한 대립 구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혜종,   호족,   왕권강화,   서경,   왕식렴,   왕규,   태조,   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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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7.06.01
  • 저작시기200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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