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찾으시는 것은 ‘결점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단 1퍼센트도 도둑질 하지 않을 정도로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4부 세상 기쁨을 버리고 영원한 영적 평안을 얻으라
10장 구원의 기회를 결코 미루지 않는다
나는 ‘무엇이 될 뻔하다 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메시지를 위한 성경본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의 변증을 기록한 사도행전 26장 22-29절이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복음전도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바울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였을 것이다. 아그립바는 “네가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뻔했다”(행26:28)라고 말했다. 그는 일생 최대의 비극적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복음을 들었지만 거부하는 사람, ‘언젠가는 믿으리라’고 다짐하지만 돌아서서 지옥으로 가버리는 사람들, 이들의 궁극적인 선택은 복음의 거부이다. 가롯 유대도 인간이었다. 우리는 그가 한 인간으로서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 악하고 저질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만일 그가 평소에 악하고 저질적으로 행동했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금방 의심했을 것이다. 그가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는 그것을 후회하며 가책을 느낄 정도로 심장이 살아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성 유다(St. Judas)가 될 뻔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을, 특히 젊은이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결신자 실적을 올리려는 열망에 압도된 나머지 결신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전도집회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사람은 일어서세요”라는 말을 듣고 일어서지만, 사실 자기들이 왜 일어났는지를 모른다. 하나님께서 내적 사역을 통하여 당신을 거듭나게 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혹시 당신은 내게 “내가 참신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성경이 믿으라는 대로 믿고, 성경이 행하라는 대로 행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그러면 확신이 생길 것이다. 성령님이 당신 안에서 일하신다면, 그분은 그분의 일을 당신에게 확신시키실 것이다. 이 확신을 가질 때 당신은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11장 고독하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이 성경말씀은 16절 하반절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도다.” 이 부분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가진 만나에 싫증을 내고 좀 더 맛있고 짜릿한 것을 원하는 심리! 선하고 좋은 것에 싫증을 내는 심리! 이것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요, 한편으로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앙적 침체상태에 빠져 있다. 내가 보기에, 그 침체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께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자들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별종, 극단주의자, 광신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중에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왠지 흥을 깨는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4부 세상 기쁨을 버리고 영원한 영적 평안을 얻으라
10장 구원의 기회를 결코 미루지 않는다
나는 ‘무엇이 될 뻔하다 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메시지를 위한 성경본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의 변증을 기록한 사도행전 26장 22-29절이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복음전도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바울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였을 것이다. 아그립바는 “네가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뻔했다”(행26:28)라고 말했다. 그는 일생 최대의 비극적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복음을 들었지만 거부하는 사람, ‘언젠가는 믿으리라’고 다짐하지만 돌아서서 지옥으로 가버리는 사람들, 이들의 궁극적인 선택은 복음의 거부이다. 가롯 유대도 인간이었다. 우리는 그가 한 인간으로서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 악하고 저질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만일 그가 평소에 악하고 저질적으로 행동했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금방 의심했을 것이다. 그가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는 그것을 후회하며 가책을 느낄 정도로 심장이 살아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성 유다(St. Judas)가 될 뻔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을, 특히 젊은이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결신자 실적을 올리려는 열망에 압도된 나머지 결신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전도집회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사람은 일어서세요”라는 말을 듣고 일어서지만, 사실 자기들이 왜 일어났는지를 모른다. 하나님께서 내적 사역을 통하여 당신을 거듭나게 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혹시 당신은 내게 “내가 참신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성경이 믿으라는 대로 믿고, 성경이 행하라는 대로 행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그러면 확신이 생길 것이다. 성령님이 당신 안에서 일하신다면, 그분은 그분의 일을 당신에게 확신시키실 것이다. 이 확신을 가질 때 당신은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11장 고독하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이 성경말씀은 16절 하반절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도다.” 이 부분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가진 만나에 싫증을 내고 좀 더 맛있고 짜릿한 것을 원하는 심리! 선하고 좋은 것에 싫증을 내는 심리! 이것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요, 한편으로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앙적 침체상태에 빠져 있다. 내가 보기에, 그 침체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께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자들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별종, 극단주의자, 광신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중에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왠지 흥을 깨는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