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대조영의 출신과 건국집단
-대조영의 출신
-발해의 건국집단
2.발해의 문화적 성격
3.신라와의 관계
4.남북국 시대론의 제시
-대조영의 출신
-발해의 건국집단
2.발해의 문화적 성격
3.신라와의 관계
4.남북국 시대론의 제시
본문내용
대조영이 세운 국가임이 자명하다. 그의 출신은 각종 문헌을 통해 혼란만 안겨주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출신에 연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혜공주의 무덤은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잇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정혜공주의 무덤은 고구려의 것과 똑같은 형식의 말각천정의 형식을 하고 있다. 장례라는 것은 쉽게 바꿀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자신들의 문화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건국집단을 살펴보더라도 발해가 국가적으로 어떤 색채를 지녔는지 잘 증명해준다. 말갈족과 함께 속한 국가이지만 지배세력은 고구려 유민이였다. 말갈인이 수적으로 많다고 해도 국가의 성격은 고구려의 것을 따르고 있다. 또한 발해가 패망한 뒤 발해의 부흥운동을 했던 이들이 고구려로 다수 망명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발해와 고구려는 같은 문화권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신라는 발해의 성장을 견제하며 대립했지만 그것은 영구적이지 않았다. 양국간의 관계는 다른 어는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역학관계내지 내부사정에 따라 친선과 대립을 교차적으로 행하였다. 발해는 일본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로 편속 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 이다. 발해를 통일신라의 한 귀퉁이로 넣을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와 같은 대등한 위치로 자리해야한다. 신라의 통일은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그 한계성을 고구려가 보완했다는 점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 발해를 편입시키는 일은 당위성론으로만은 불가능하다.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만이 한국사를 바로잡는 방법일 뿐이다.
정혜공주의 무덤은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잇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정혜공주의 무덤은 고구려의 것과 똑같은 형식의 말각천정의 형식을 하고 있다. 장례라는 것은 쉽게 바꿀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자신들의 문화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건국집단을 살펴보더라도 발해가 국가적으로 어떤 색채를 지녔는지 잘 증명해준다. 말갈족과 함께 속한 국가이지만 지배세력은 고구려 유민이였다. 말갈인이 수적으로 많다고 해도 국가의 성격은 고구려의 것을 따르고 있다. 또한 발해가 패망한 뒤 발해의 부흥운동을 했던 이들이 고구려로 다수 망명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발해와 고구려는 같은 문화권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신라는 발해의 성장을 견제하며 대립했지만 그것은 영구적이지 않았다. 양국간의 관계는 다른 어는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역학관계내지 내부사정에 따라 친선과 대립을 교차적으로 행하였다. 발해는 일본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로 편속 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 이다. 발해를 통일신라의 한 귀퉁이로 넣을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와 같은 대등한 위치로 자리해야한다. 신라의 통일은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그 한계성을 고구려가 보완했다는 점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 발해를 편입시키는 일은 당위성론으로만은 불가능하다.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만이 한국사를 바로잡는 방법일 뿐이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