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발해의 건국
3. 당과의 전쟁과 발전
4. 발해의 쇠퇴와 멸망
5. 나오며
2. 발해의 건국
3. 당과의 전쟁과 발전
4. 발해의 쇠퇴와 멸망
5. 나오며
본문내용
거란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삼국 중 하나인 태봉도 915년과 918년 3월 거란에 사신을 파견해 교결했으며, 918년 6월 왕위에 오른 왕건도 이런 외교정책을 지속했다.
거란 채조 야율아보기는 925년 윤 12월 21일, 발해 공략에 나서 29일 발해의 서쪽 국경 요충지인 부여부를 포위했다. 이는 9일만에 무려 천여 리를 진군한 것이었으니 발해의 방어선은 거의 붕괴된 셈이었다. 부여부가 이듬해인 926년 정월, 불과 3일 만에 함락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발해에서는 노상에게 3만 군사를 주어 이를 맞서게 했는데, 이는 발해의 주력군이었다. 거란군은 발해군을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동진해 같은 달 9일 발해 수도인 상경용천부를 포위했다. 발해국왕 대인선은 12일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했으며 14일 정식 항복 절차를 밟았다. 이로써 발해는 건국 229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대인선은 그 해 7월 회군하는 거란군에게 왕후와 함께 끌려가 거란이 정해준 산경임황부의 서쪽에 살았다. 거란에서 대인선은 거란이 내린 '오로고'f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요사』국어해에 따르면 오로고는 대인선에게 항복받을 때 탔던 말의 이름이었다.
4. 나오며
발해는 만주의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으나 발전을 위해서는 핵심영토인 요양지역을 장악하고 나아가 욧 지역을 차지해야 했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 대신에 만주 동북부의 광대한 영토에 만족했다. 즉 벌해가 현실에 안주하는 동안 세력을 길러 요양 지역을 차지하고 동진한 거란에게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에서 진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거란 채조 야율아보기는 925년 윤 12월 21일, 발해 공략에 나서 29일 발해의 서쪽 국경 요충지인 부여부를 포위했다. 이는 9일만에 무려 천여 리를 진군한 것이었으니 발해의 방어선은 거의 붕괴된 셈이었다. 부여부가 이듬해인 926년 정월, 불과 3일 만에 함락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발해에서는 노상에게 3만 군사를 주어 이를 맞서게 했는데, 이는 발해의 주력군이었다. 거란군은 발해군을 격파하고 파죽지세로 동진해 같은 달 9일 발해 수도인 상경용천부를 포위했다. 발해국왕 대인선은 12일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했으며 14일 정식 항복 절차를 밟았다. 이로써 발해는 건국 229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대인선은 그 해 7월 회군하는 거란군에게 왕후와 함께 끌려가 거란이 정해준 산경임황부의 서쪽에 살았다. 거란에서 대인선은 거란이 내린 '오로고'f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요사』국어해에 따르면 오로고는 대인선에게 항복받을 때 탔던 말의 이름이었다.
4. 나오며
발해는 만주의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으나 발전을 위해서는 핵심영토인 요양지역을 장악하고 나아가 욧 지역을 차지해야 했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 대신에 만주 동북부의 광대한 영토에 만족했다. 즉 벌해가 현실에 안주하는 동안 세력을 길러 요양 지역을 차지하고 동진한 거란에게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에서 진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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