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노자(老子)
1) 교육에 대한 기본 요구 - “道”는 “自然”을 본받는다.(“道法自然”)
2) 교학활동에 대한 이해
3) 노자가 생각하는 교육받은 사람(聖人)
1. 道
2. 無爲自然
1) 교육에 대한 기본 요구 - “道”는 “自然”을 본받는다.(“道法自然”)
2) 교학활동에 대한 이해
3) 노자가 생각하는 교육받은 사람(聖人)
1. 道
2. 無爲自然
본문내용
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혼성하는 어떤 것이 천지보다 먼저 있었다. 그것은 너무 고요해 들을 수 없고 너무 아득해 그 형체도 볼 수 없구나! 그 하나는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독립해 있으므로 바뀌지 않고, 두루두루 작용해도 위태롭지 않다. 그 하나를 천지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억지로 글자로 말한다면 도이고, 억지로 그 이름을 지어 말하자면 대이다. 대는 끝이 안 보이게 사라져가는 것이고, 사라져가는 것은 아득히 멀어져 떠나는 것이며 아득히 멀리 떠남은 다시 어딘가에서 만나 되돌아오는 것이다. 도가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 또한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인간도 그 중의 하나로 산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22. -老子(體道) 제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항상의 변함없는 도가 아니며,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이름은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을 때는 우주의 시작이며 이름이 있을 때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 없는 상태에서 그 묘함을 보고 항상 욕심이 있음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본다. 이 둘은 다 같은 데서 나왔고 이름만 서로 다를 뿐이며, 그 둘은 같아서 모두 현묘하다. 아무리 알려 해도 알 수 없는 그것은 일체의 현묘함이 들고나는 문이다.
23. -老子(贊玄) 제14장-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恍惚.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보려도 해도 보이지 않으니 夷라고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이것을 希라고 한다. 만져보려 해도 만져지지 않으니 微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아무리 규명해 보아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혼연하면서도 하나이다. 그 위는 밝지 아니하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아니하다.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데 그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다시금 없는 것으로 되돌아가니 이를 모습 없는 모습이라 하고 아무 것도 없는 모습이라 하며 이를 황홀이라고 이른다. 맞이하되 그 머리를 볼 수가 없으며, 좇아가되 그 꼬리를 볼 수가 없다. 옛날의 도를 가지고 지금의 천하만물을 다스린다. 능히 옛 시작을 알 수 있으니 이를 도의 법도라고 이른다.
24. - 老子(爲政) 제37장 -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는 항상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도 없다. 만일 군주가 자연의 도를 따라 지켜 주면, 만물은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하게 만물에 맡기지 않고 인간들이 조작하려고 하면 나는 그러한 짓을 못하게 자연의 덕으로 진정시키리라. 자연의 덕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고요하고, 욕심이 없어 고요하면 천하는 저절로 바르게 된다.
25. - 老子(養德) 제51장 -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存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길러 주고, 만물은 모습을 지니며, 형세가 이루어진다. 이러하므로 만물은 도덕을 높이 받들지 않을 수 없다. 도는 존중하고 덕을 귀중하게 여김은 남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 고로 도가 만물을 낳으면, 덕은 키워 주고 자라게 하며 편안하게 하고 보살펴 돌보아 준다. 그러나 도는 만물을 낳아 주되 갖지 않고, 이룩되게 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길러 주되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을 오묘한 덕(현덕)이라고 한다.
26. - 老子(忘知) 제48장 -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배움(爲學)은 매일매일 불어나고, 터득(爲道)은 매일매일 줄어든다. 줄이고 또 줄여 무위에 이르게 되므로, 무위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천하를 얻은 자는 항상 무위로 처리해야 한다. 만약 유위로 대하면 천하를 얻어도 만족할 수가 없다.
혼성하는 어떤 것이 천지보다 먼저 있었다. 그것은 너무 고요해 들을 수 없고 너무 아득해 그 형체도 볼 수 없구나! 그 하나는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독립해 있으므로 바뀌지 않고, 두루두루 작용해도 위태롭지 않다. 그 하나를 천지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억지로 글자로 말한다면 도이고, 억지로 그 이름을 지어 말하자면 대이다. 대는 끝이 안 보이게 사라져가는 것이고, 사라져가는 것은 아득히 멀어져 떠나는 것이며 아득히 멀리 떠남은 다시 어딘가에서 만나 되돌아오는 것이다. 도가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 또한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인간도 그 중의 하나로 산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22. -老子(體道) 제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항상의 변함없는 도가 아니며,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이름은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을 때는 우주의 시작이며 이름이 있을 때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 없는 상태에서 그 묘함을 보고 항상 욕심이 있음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본다. 이 둘은 다 같은 데서 나왔고 이름만 서로 다를 뿐이며, 그 둘은 같아서 모두 현묘하다. 아무리 알려 해도 알 수 없는 그것은 일체의 현묘함이 들고나는 문이다.
23. -老子(贊玄) 제14장-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其上不,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恍惚.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보려도 해도 보이지 않으니 夷라고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이것을 希라고 한다. 만져보려 해도 만져지지 않으니 微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아무리 규명해 보아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혼연하면서도 하나이다. 그 위는 밝지 아니하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아니하다.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데 그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다시금 없는 것으로 되돌아가니 이를 모습 없는 모습이라 하고 아무 것도 없는 모습이라 하며 이를 황홀이라고 이른다. 맞이하되 그 머리를 볼 수가 없으며, 좇아가되 그 꼬리를 볼 수가 없다. 옛날의 도를 가지고 지금의 천하만물을 다스린다. 능히 옛 시작을 알 수 있으니 이를 도의 법도라고 이른다.
24. - 老子(爲政) 제37장 -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는 항상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도 없다. 만일 군주가 자연의 도를 따라 지켜 주면, 만물은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하게 만물에 맡기지 않고 인간들이 조작하려고 하면 나는 그러한 짓을 못하게 자연의 덕으로 진정시키리라. 자연의 덕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고요하고, 욕심이 없어 고요하면 천하는 저절로 바르게 된다.
25. - 老子(養德) 제51장 -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存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길러 주고, 만물은 모습을 지니며, 형세가 이루어진다. 이러하므로 만물은 도덕을 높이 받들지 않을 수 없다. 도는 존중하고 덕을 귀중하게 여김은 남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 고로 도가 만물을 낳으면, 덕은 키워 주고 자라게 하며 편안하게 하고 보살펴 돌보아 준다. 그러나 도는 만물을 낳아 주되 갖지 않고, 이룩되게 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길러 주되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을 오묘한 덕(현덕)이라고 한다.
26. - 老子(忘知) 제48장 -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배움(爲學)은 매일매일 불어나고, 터득(爲道)은 매일매일 줄어든다. 줄이고 또 줄여 무위에 이르게 되므로, 무위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천하를 얻은 자는 항상 무위로 처리해야 한다. 만약 유위로 대하면 천하를 얻어도 만족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