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선운사 답사 계획서 1
Ⅱ.선운사의 유래 2
Ⅲ.선운사의 연혁 3
Ⅳ.선운사 가람 4
Ⅴ.선운사를 오르며.. 10
Ⅵ.선운사 답사기 21
Ⅱ.선운사의 유래 2
Ⅲ.선운사의 연혁 3
Ⅳ.선운사 가람 4
Ⅴ.선운사를 오르며.. 10
Ⅵ.선운사 답사기 21
본문내용
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영산전의역우 2층의 장륙전을 단층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 사용된 기둥 부재 등은 중층건물을 구성하기에는 부재가 튼실하지 않은 편이어서 중층에서 단층으로 개조시 부재의교체가 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석가삼존불상]
목조석가삼존불상
1821년 작. 대웅보전 서편의 영산전에 봉안된 목조삼존상으로서, 석가모니불 좌상을 주존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 입상이 양쪽에서 협시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3m, 협시보살의 높이는 2.4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며, 주존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목각연화대좌(木刻蓮花臺座)에 모셔져있다. 전라북도유형문화제 제28호. 목조 금박.
개인적인 견해지만 종교를 그리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중앙에 시주 하는 통을 보고 더 짜증이 치밀었다. 입장료를 받지 말던가 모하는건지 모르겠다. 종교가 더 물질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지만 불상을 보는 순간 만큼은 편안했 다. 그냥 편안하게 볼수있었다. 천정 연등에 걸린 바램들을 보며 나왔다.
[동백나무 숲]
특히 대웅전 뒤에는 수령 약 500년, 높이가 평균 6m는 되는 동백나무들의 군락이 천연기념물 제 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물과 단풍이 잘 안어울리는 것 같다. 동백꽃이라도 화사하게 피워줘야 칙칙함을 덜할텐데 여기도 갈색톤 저기도 갈색 톤이니 차라리 개울가의 단풍이 더 예뻤다.
Ⅵ. 선운사 답사기
전역에서 칼복학까지 학교 적응에도 힘든 시기에 머리를 상쾌하게 해줄 과제가 생겨 겸사겸사 선배들과 후배와 함께 계획도 짜고 예산도 내 보고 가기 전부터 설레였다. 과제와 여행을 같이 할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과제와도 어느정도 맞는곳을 택해야 했기 때문에 약간 먼 거리지만 선운사가 제격이었다.
렌트를 해서 가기로 한 우리는 11월3일 저녁에 학교에 모여 출발하였다. 초행길이니 불안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들뜬 기분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는 짙은 안개로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운전자나 탑승자나 마음을 놓을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개구간이 끝나 마음읗 놓으면 다시 시작 되곤 해 더 불안 했다. 그때 교수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해마다 다치는 학생들이 있다는...’ 안개 구간이 끝나자 잠이 들어 도착해서야 깼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몇신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선운사 근처에서 숙박을 하려 했지만 사진전과 축제 기간이 겹친 시기라 방을 찾을 수 없어 옆동네로 3~40분 달려 겨우 눈을 붙일곳을 찾았다. 이건 정보수집 미약에서 준비성까지 없게 만들었다. 사실 방은 당연히 있을줄 알았다. 자려고 누워서 시계를 보니 약 3시쯤이었다. 그냥 자면 안될거 같은 기분과 못내 아쉬움이 밀려 들면서 술을 먹게 돼었다. 조금만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잠을 청할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10시쯤 선운사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주차장같이 느껴졌다. 절에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이정도의 행렬은 보지 못했다. 몇 번 못가봐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속의 절은 한가하고 고요한 곳이기에 정말 대단한 규모의 절을 생각하며 입장하였다. 개울도 보고 산도 보고 공기도 마시며 사진도 찍고 할줄 알았는데 바로 앞뒤에 사람이 붙어있기에 늦게 갈수도 없었고 산세를 볼 겨를이 없었다. 일행을 놓치지나 않을까 하며 발도 밟히며 일주문 앞에 도착했다. 거긴 공간적인 여유가 좀 있었다. 입장료가 있다는건 알았지만 2500원. 네명이니까 만원이었다. 이 많은 인원이 다 들어간다면 굉장한 금액이었다. 일주문을 지나니 경치를 볼 여유가 생겼다 개울과 단풍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웠다. 이렇게 산을 오른지도 한참이 됐다. 쌀쌀한 전날과 달리 맑고 따뜻했다. 어느새 천왕문에 닿았고 빨리 대웅전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웅전 보다 만세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만세루 보다 그안에서 다도를 즐기는 모습에 신기했다. 스님들과 일반인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다도에 대해선 모르지만 무엇인가 차례와 격식을 갖추고 하는듯했다. 만세루는 사방의 문을 다 개방하여 산을 경치 삼아 한잔 차를 마신다면 정말 편안하고 색다를거 같지만 그건 사람이 적을때나 적용될거 같았다. 너무 시끄러웠다. 만새루는 대웅보전 쪽은 향하고 있었는데 거긴 바츄카포를 연상시키는 카메라들과 셔터소리만 가득했다. 그래서 인지 스님들은 연출된 표정과 행동을 하는 듯 보였고 심지어 선배들과 연기자 라는 농담을 하며 대웅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두, 소로, 첨자 등 수업 시간에 들은 것들을 보니 눈여겨 보게 되었고,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을 실감케 하였다. 한국건축사를 알기 전에 접했다면, 풍경과 탑 혹은 일행들과 셔터를 눌렀을텐데 이곳저곳 파헤쳐 볼 안목이 생겨 내심 뿌듯했다. 대웅보전의 바깥쪽을 살피고 안을 살피는데 의외로 넓게 보인다는걸 느꼈다. 즉, 밖에서 보는것보다 넓어 보였다. 영산전으로 발길을 옮겼고 이곳은 서까래를 볼수 없었다. 연등에 소원과 바램들이 적혀서 걸려 있었다.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신자들의 염원을 볼수 있있고, 목조석가삼존불상을 보게 돼었다. 무표정이면서도 무표정이 아니었다. 스님들의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으면 갖게되는 표정일까? 사람을 편안히 만들어 줬다. 그리고 명부전과 팔상전, 산신각, 관음전을 둘러 보고 한쪽에 앉아서 불교 건축에 대한 얘기도 하며 쉬다 온길을 따라 복분자쥬스를 마시며 다시 서울로 올라 갔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것들이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불교건축의 정교함과 자연과 어울릴줄 아는 자연스러움으로 오랫토록 가직하게될 좋은 여행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과제를 통해 얻은 정보로 더 많은 식견을 갖게된 좋은 기회였고, 그냥 학점의 의한 과제가 아니라 보고 느끼고 한국건축에 한발 더 다가설 기회였다.
참고자료
참고서적 : 선운사
저 자 : 고영섭 외
출 판 사 : 대원사
참고홈페이지 : [1] http://blog.naver.com/jgs2000/110006370967
블로그명 : jgs2000님의 블로그
[2] www.visitkorea.or.kr 한국관광공사
[3] www.seonunsa.org 선운사
[목조석가삼존불상]
목조석가삼존불상
1821년 작. 대웅보전 서편의 영산전에 봉안된 목조삼존상으로서, 석가모니불 좌상을 주존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 입상이 양쪽에서 협시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3m, 협시보살의 높이는 2.4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며, 주존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목각연화대좌(木刻蓮花臺座)에 모셔져있다. 전라북도유형문화제 제28호. 목조 금박.
개인적인 견해지만 종교를 그리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중앙에 시주 하는 통을 보고 더 짜증이 치밀었다. 입장료를 받지 말던가 모하는건지 모르겠다. 종교가 더 물질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지만 불상을 보는 순간 만큼은 편안했 다. 그냥 편안하게 볼수있었다. 천정 연등에 걸린 바램들을 보며 나왔다.
[동백나무 숲]
특히 대웅전 뒤에는 수령 약 500년, 높이가 평균 6m는 되는 동백나무들의 군락이 천연기념물 제 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물과 단풍이 잘 안어울리는 것 같다. 동백꽃이라도 화사하게 피워줘야 칙칙함을 덜할텐데 여기도 갈색톤 저기도 갈색 톤이니 차라리 개울가의 단풍이 더 예뻤다.
Ⅵ. 선운사 답사기
전역에서 칼복학까지 학교 적응에도 힘든 시기에 머리를 상쾌하게 해줄 과제가 생겨 겸사겸사 선배들과 후배와 함께 계획도 짜고 예산도 내 보고 가기 전부터 설레였다. 과제와 여행을 같이 할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과제와도 어느정도 맞는곳을 택해야 했기 때문에 약간 먼 거리지만 선운사가 제격이었다.
렌트를 해서 가기로 한 우리는 11월3일 저녁에 학교에 모여 출발하였다. 초행길이니 불안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들뜬 기분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는 짙은 안개로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운전자나 탑승자나 마음을 놓을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개구간이 끝나 마음읗 놓으면 다시 시작 되곤 해 더 불안 했다. 그때 교수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해마다 다치는 학생들이 있다는...’ 안개 구간이 끝나자 잠이 들어 도착해서야 깼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몇신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선운사 근처에서 숙박을 하려 했지만 사진전과 축제 기간이 겹친 시기라 방을 찾을 수 없어 옆동네로 3~40분 달려 겨우 눈을 붙일곳을 찾았다. 이건 정보수집 미약에서 준비성까지 없게 만들었다. 사실 방은 당연히 있을줄 알았다. 자려고 누워서 시계를 보니 약 3시쯤이었다. 그냥 자면 안될거 같은 기분과 못내 아쉬움이 밀려 들면서 술을 먹게 돼었다. 조금만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잠을 청할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10시쯤 선운사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주차장같이 느껴졌다. 절에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이정도의 행렬은 보지 못했다. 몇 번 못가봐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속의 절은 한가하고 고요한 곳이기에 정말 대단한 규모의 절을 생각하며 입장하였다. 개울도 보고 산도 보고 공기도 마시며 사진도 찍고 할줄 알았는데 바로 앞뒤에 사람이 붙어있기에 늦게 갈수도 없었고 산세를 볼 겨를이 없었다. 일행을 놓치지나 않을까 하며 발도 밟히며 일주문 앞에 도착했다. 거긴 공간적인 여유가 좀 있었다. 입장료가 있다는건 알았지만 2500원. 네명이니까 만원이었다. 이 많은 인원이 다 들어간다면 굉장한 금액이었다. 일주문을 지나니 경치를 볼 여유가 생겼다 개울과 단풍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웠다. 이렇게 산을 오른지도 한참이 됐다. 쌀쌀한 전날과 달리 맑고 따뜻했다. 어느새 천왕문에 닿았고 빨리 대웅전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웅전 보다 만세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만세루 보다 그안에서 다도를 즐기는 모습에 신기했다. 스님들과 일반인들이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다도에 대해선 모르지만 무엇인가 차례와 격식을 갖추고 하는듯했다. 만세루는 사방의 문을 다 개방하여 산을 경치 삼아 한잔 차를 마신다면 정말 편안하고 색다를거 같지만 그건 사람이 적을때나 적용될거 같았다. 너무 시끄러웠다. 만새루는 대웅보전 쪽은 향하고 있었는데 거긴 바츄카포를 연상시키는 카메라들과 셔터소리만 가득했다. 그래서 인지 스님들은 연출된 표정과 행동을 하는 듯 보였고 심지어 선배들과 연기자 라는 농담을 하며 대웅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두, 소로, 첨자 등 수업 시간에 들은 것들을 보니 눈여겨 보게 되었고,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을 실감케 하였다. 한국건축사를 알기 전에 접했다면, 풍경과 탑 혹은 일행들과 셔터를 눌렀을텐데 이곳저곳 파헤쳐 볼 안목이 생겨 내심 뿌듯했다. 대웅보전의 바깥쪽을 살피고 안을 살피는데 의외로 넓게 보인다는걸 느꼈다. 즉, 밖에서 보는것보다 넓어 보였다. 영산전으로 발길을 옮겼고 이곳은 서까래를 볼수 없었다. 연등에 소원과 바램들이 적혀서 걸려 있었다.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신자들의 염원을 볼수 있있고, 목조석가삼존불상을 보게 돼었다. 무표정이면서도 무표정이 아니었다. 스님들의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으면 갖게되는 표정일까? 사람을 편안히 만들어 줬다. 그리고 명부전과 팔상전, 산신각, 관음전을 둘러 보고 한쪽에 앉아서 불교 건축에 대한 얘기도 하며 쉬다 온길을 따라 복분자쥬스를 마시며 다시 서울로 올라 갔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것들이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불교건축의 정교함과 자연과 어울릴줄 아는 자연스러움으로 오랫토록 가직하게될 좋은 여행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과제를 통해 얻은 정보로 더 많은 식견을 갖게된 좋은 기회였고, 그냥 학점의 의한 과제가 아니라 보고 느끼고 한국건축에 한발 더 다가설 기회였다.
참고자료
참고서적 : 선운사
저 자 : 고영섭 외
출 판 사 : 대원사
참고홈페이지 : [1] http://blog.naver.com/jgs2000/110006370967
블로그명 : jgs2000님의 블로그
[2] www.visitkorea.or.kr 한국관광공사
[3] www.seonunsa.org 선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