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라고 말합니다. 단을 쌓으라는 말은 제사를 받으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16-19절을 통하여 주께서는 제사를 즐겨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상한 심령을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즉 여호와는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없을 때는 제사를 받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회개의 마음이 있을 경우에 그의 표시로 제사를 받으십니다. 시 51편 19절에 보면 ‘그 때에’, 즉 죄인이 회개하고 회복하여 상한 심령으로 주께 돌아오고 주께서 은택으로 시온에게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을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단을 쌓으라는 명령을 하신 것은, 이제 다윗의 상한 심령을 여호와께서 받으셨다는 기쁨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마음을 받으신 여호와께 충성을 다해 제사를 드립니다. 왕의 권세를 빙자하여 아라우나의 제공을 받을 수 있었던 다윗은, 이번에는 죄를 지을 때와 정반대의 모습을 취합니다. 인구조사를 말리려는 요압의 충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왕권을 휘둘렀던 다윗은, 이번에는 왕의 권력에 스스로 순복하고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는 아라우나의 청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여호와의 쓰디쓴 손맛을 본 다윗은 더 이상 자신의 왕권을 누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24절데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행위는 모든 것이 세상 왕인 자신의 소유가 아니고, 하늘의 통치자 여호와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회개의 과정을 거쳐서 명령을 휘두르고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취하던 태도에서 작은 것 하나까지도 여호와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윗의 신앙과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계속하여 나의 권력을 주장할 것입니까?
역대하 20장 20절에서 여호사밧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로부터 선포될 때, 그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여호와의 것으로 철저히 구분하여야 합니다.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것을 여호와께서 주신 공동체에서 나누어 그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늘 제공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을 때는 철저히 돌이키고, 마음으로 뉘우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여호와의 음성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5.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자
철저한 회개를 통한 다윗의 기도를 여호와께서는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14절에 다윗이 고백하였듯이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과 주위를 말씀으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평안 중의 교만함과 믿음의 헤이해짐이 다윗에게 대표하여 나타났듯이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과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크리스챤 거목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긍휼을 의지하고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라고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그것을 바라보는 크리스챤들이 자신들 안에서 교만함과 죄악을 발견하지 않고, 남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들려지는 선지자적 음성을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의 이글거림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자긍하여 교만할 때,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태도를 바꿉시다. 권세를 이용하는 태도에서, 하나님 앞에 권세를 내려 놓고 겸손함으로 서로 섬기고, 탐욕을 죽이기 위해 기도합시다. 그럴 때, 여호와께서 비로서 우리의 긍휼의 손길을 내리시고, 우리의 제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참고 문헌>
Fokkelman, J.P., Narrative art poetry in the books of Samual volume 3.
Hertzberg, H. W., 1&2 Samual (SCM Press, London)
McCarter Jr, P. Kyle., Anchor Bible, 2 Samual, (Doubleday & Company, 1984, NewYork)
C.F. Keil and F. Delitzch., Bibl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Samual
Anderson, A. A., WBC, 2 Samual,
Pfeiffer, The united kingdom, (Baker, Grand Rapids, 1970)
Goldman, S., Soncino books of the Bible, Samual, (Soncino, London)
김지찬,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생명의 말씀사, 서울, 1999)
김지찬, 언어의 직공이 되라, (생명의 말씀사, 서울, 1996)
김지찬, “구약 내러티브의 역사성:사진이 아닌 그림으로의 역사.” 신학지남 255(1998 여름)
김지찬, “설교자는 수사학자가 되어야 한다.” 신학지남 251 (1997 여름)
김지찬, “보이는 설교를 하라.” 그말씀 1998년 6월
원용국, 사무엘 주석, (호석출판사, 1995)
브라이언 채플, “설교에 내러티브를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 그말씀 1998년 6월
토마스 롱, 성서의 문학 유형과 설교, 박영미 역, (대한 기독교 서회, 1995)
토마스 롱, 설교자는 증인이다, 서병채 역,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8)
헬무트 틸리케, 현대교회의 고민과 설교, 심일섭 역,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2)
다윗은 시편 51편 16-19절을 통하여 주께서는 제사를 즐겨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상한 심령을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즉 여호와는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없을 때는 제사를 받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회개의 마음이 있을 경우에 그의 표시로 제사를 받으십니다. 시 51편 19절에 보면 ‘그 때에’, 즉 죄인이 회개하고 회복하여 상한 심령으로 주께 돌아오고 주께서 은택으로 시온에게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을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단을 쌓으라는 명령을 하신 것은, 이제 다윗의 상한 심령을 여호와께서 받으셨다는 기쁨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마음을 받으신 여호와께 충성을 다해 제사를 드립니다. 왕의 권세를 빙자하여 아라우나의 제공을 받을 수 있었던 다윗은, 이번에는 죄를 지을 때와 정반대의 모습을 취합니다. 인구조사를 말리려는 요압의 충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왕권을 휘둘렀던 다윗은, 이번에는 왕의 권력에 스스로 순복하고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는 아라우나의 청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여호와의 쓰디쓴 손맛을 본 다윗은 더 이상 자신의 왕권을 누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24절데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행위는 모든 것이 세상 왕인 자신의 소유가 아니고, 하늘의 통치자 여호와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회개의 과정을 거쳐서 명령을 휘두르고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취하던 태도에서 작은 것 하나까지도 여호와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윗의 신앙과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계속하여 나의 권력을 주장할 것입니까?
역대하 20장 20절에서 여호사밧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로부터 선포될 때, 그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여호와의 것으로 철저히 구분하여야 합니다.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것을 여호와께서 주신 공동체에서 나누어 그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늘 제공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을 때는 철저히 돌이키고, 마음으로 뉘우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여호와의 음성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5.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자
철저한 회개를 통한 다윗의 기도를 여호와께서는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14절에 다윗이 고백하였듯이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과 주위를 말씀으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평안 중의 교만함과 믿음의 헤이해짐이 다윗에게 대표하여 나타났듯이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과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크리스챤 거목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긍휼을 의지하고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라고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그것을 바라보는 크리스챤들이 자신들 안에서 교만함과 죄악을 발견하지 않고, 남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들려지는 선지자적 음성을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의 이글거림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자긍하여 교만할 때,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태도를 바꿉시다. 권세를 이용하는 태도에서, 하나님 앞에 권세를 내려 놓고 겸손함으로 서로 섬기고, 탐욕을 죽이기 위해 기도합시다. 그럴 때, 여호와께서 비로서 우리의 긍휼의 손길을 내리시고, 우리의 제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참고 문헌>
Fokkelman, J.P., Narrative art poetry in the books of Samual volum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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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찬, “보이는 설교를 하라.” 그말씀 1998년 6월
원용국, 사무엘 주석, (호석출판사, 1995)
브라이언 채플, “설교에 내러티브를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 그말씀 1998년 6월
토마스 롱, 성서의 문학 유형과 설교, 박영미 역, (대한 기독교 서회, 1995)
토마스 롱, 설교자는 증인이다, 서병채 역,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8)
헬무트 틸리케, 현대교회의 고민과 설교, 심일섭 역,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