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나타난 음악교육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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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시대별 분석
·238 - 음악의 용도 (제사)
·551 - 우륵과 가야금
·552 - 신라의 음악교육
·576 - 음악의 용도2/ 음악의 필요성
·650 - 음악의 용도3 (불교)
·664 - 당악의 유입
·741 - 음악교육기관명의 변화
·790 - 향가의 가치
·866 - 음악의 용도4 (정치성)
·881 - 악기 (금)
·888 - 대구화상과 삼대목
·935 - 왕산악과 백결선생

본문내용

7곡이었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성곡으로 유전하여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안 되고 다 흩어져서 모두 기재할 수 없다. (김부식, 하 177)
* 해석 1. 직전제자 한명(또는 몇 명, 소수)과 같이 생활하고 수발을 받으며, 교육을 하는 방식은 우리가 지난 교육학 수업 때 배운 도제의 방법과 유사하지 않은가 싶다. 음성서 같은 공교육기관에서는 도제방식을 이용하지 않지만, 운상원같은 비공식 사교육기관(?)에서는 도제방식이 교과의 종류를 불문하고 널리 행해졌던 것 같다.
2. 선생이 가르치면서도 그 중 미묘한 것은 숨기고 전수치 않았다.
1) 지리산 운상원은 연회나 각종 왕실에서 행해졌던 행사에 뒷받침 되었던 음악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것을 가정해본다면 전수를 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성이나 음악이 본래 지닌 내재적 가치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 전수받는 사람이 아직 음악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는 선생이 판단이 아닐까.
3. 지금 3년이 지났으니~ 세곡을 전수받았다.
1) 슬행을 하면서까지 이 곡을 전수받으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정도로 그 음악의 예술성이 뛰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2) 윤흥의 입장에서는 전수받아오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악을 전수 받아야 했을 수도 있다.
신라 백결선생은 어떤 내력의 사람인지를 모른다. 낭산 아래에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하여 옷이 헤어져 백 군데나 잡아매어 마치 매추라기 달아 맨 것과 같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동리의 백결선생이라 이름하였다. 일찍이 영계기 (중국고대에 거문고 타며 즐기던 이인)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언제나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며 모든 희로비한과 불평사를 거문고를 풀었다. 세모가 되어 이웃에서는 방아를 찧는데, 그 아내가 방아찧는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남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방아를 찧는데 우리만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를 보낼까” 하였다. 선생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기를 “무릇 사와 생은 명이 있고, 부와 귀는 하늘에 달리었으니, 그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따를 수 없거늘 그 대는 어째서 상심하는가. 내가 그대를 위하여 방앗소리를 내어 위로하겠소.” 하고, 이에 거문고를 타며 방앗소리를 내니, 세상에서 정하여 이름하기를 대악(樂)이라 하였다. (김부식, 하 466)
1. 백결선생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며~ 풀었다. // 내가 그대를 위하여~ 위로하겠소.
청빈한 삶을 사는 인물들로 음악이 마음을 수양하는 도구로 삶에 위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 시대별 분석
·238 - 음악의 용도 (제사)
·551 - 우륵과 가야금
·552 - 신라의 음악교육
·576 - 음악의 용도2/ 음악의 필요성
·650 - 음악의 용도3 (불교)
·664 - 당악의 유입
·741 - 음악교육기관명의 변화
·790 - 향가의 가치
·866 - 음악의 용도4 (정치성)
·881 - 악기 (금)
·888 - 대구화상과 삼대목
·935 - 왕산악과 백결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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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9.26
  • 저작시기2008.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8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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