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없음
본문내용
용할 수 있게 된다.
Ⅲ
기독교 교육의 방안은 내용과 방법의 차이를 없애는 적합한 신학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훌륭한 방법과 내용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살아 계신 하나님과 학습자가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그리스도인이 양육되는 교회라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와 부모의 인도를 통해 기독교적인 바탕과 관점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 방안이 복음서에 나타난 교사, 또는 랍비로서의 예수의 모습에 있다고 믿는다. 주님은 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기본 진리를 몸소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가르치셨다. 구약에 나타난 기본 진리를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주님의 신학은 그분이 계시는 곳 어느 상황에나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특정한 문제에 대해 가르치셨다. 주님은 자신의 신학을 생활에 연결시키셨다. 청중에게 신앙이 성장하도록 말씀하시고 사람들이 아버지께 대한 더 깊은 믿음을 갖도록 인도하셨다.
비유들은 항상 청중의 생활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시킬 수 있었다. 결코 자신의 신학을 변화시키지 않으셨으나 항상 상황에 맞춰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도 어린아이와 어른들의 실제 문제들을 다루고, 신학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에 관한 진리가 되어야 한다. 성인으로서 우리는 성숙한 신앙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학습자의 능력과 경험 안에서 그들이 항상 성장 한계에서 더 인생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신앙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가르치는 주교재는 성경이고 주요 관심의 대상은 학습자이며 우리가 가르치는 최고 목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이기보다는 역사적인 신앙이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중심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늘 예수를 성육신의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주님이 성육신화 되신 것을 뜻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표현을 이해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사나 교재를 쓰는 사람은 이 사실을 이해하고 가르쳐서 아동이 이 신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교육자들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를 아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기 예수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성숙한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어린아이들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교육 방법과 내용을 모두 판단한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행동과 사고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모든 연령층의 학습 과정을 넓고도 지혜롭게 실험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이론들을 유용하게 활용해 왔다. 그러나 신학은 그 이론들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우리는 아동 심리학의 반대 입장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신학과 아동 모두를 희생의 대가로 치러야 했다. 새로운 과제는 기독교 교육의 목표가 기독교 진리이며, 진리는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고, 교회의 교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진리를 사용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신학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토의 문제
1. 방법과 내용에 관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있는가? 있다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
2. 밀러는 기독교 교육에서 학습자를 철저히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3. 신학이 기독교 교육의 초점이 아니라는 밀러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왜? 그렇다면 신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4. 이 장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는가?
Ⅲ
기독교 교육의 방안은 내용과 방법의 차이를 없애는 적합한 신학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훌륭한 방법과 내용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살아 계신 하나님과 학습자가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그리스도인이 양육되는 교회라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와 부모의 인도를 통해 기독교적인 바탕과 관점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 방안이 복음서에 나타난 교사, 또는 랍비로서의 예수의 모습에 있다고 믿는다. 주님은 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기본 진리를 몸소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가르치셨다. 구약에 나타난 기본 진리를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주님의 신학은 그분이 계시는 곳 어느 상황에나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특정한 문제에 대해 가르치셨다. 주님은 자신의 신학을 생활에 연결시키셨다. 청중에게 신앙이 성장하도록 말씀하시고 사람들이 아버지께 대한 더 깊은 믿음을 갖도록 인도하셨다.
비유들은 항상 청중의 생활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시킬 수 있었다. 결코 자신의 신학을 변화시키지 않으셨으나 항상 상황에 맞춰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도 어린아이와 어른들의 실제 문제들을 다루고, 신학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에 관한 진리가 되어야 한다. 성인으로서 우리는 성숙한 신앙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학습자의 능력과 경험 안에서 그들이 항상 성장 한계에서 더 인생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신앙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가르치는 주교재는 성경이고 주요 관심의 대상은 학습자이며 우리가 가르치는 최고 목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이기보다는 역사적인 신앙이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중심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늘 예수를 성육신의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주님이 성육신화 되신 것을 뜻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표현을 이해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사나 교재를 쓰는 사람은 이 사실을 이해하고 가르쳐서 아동이 이 신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교육자들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를 아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기 예수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성숙한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어린아이들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교육 방법과 내용을 모두 판단한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행동과 사고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모든 연령층의 학습 과정을 넓고도 지혜롭게 실험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이론들을 유용하게 활용해 왔다. 그러나 신학은 그 이론들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우리는 아동 심리학의 반대 입장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신학과 아동 모두를 희생의 대가로 치러야 했다. 새로운 과제는 기독교 교육의 목표가 기독교 진리이며, 진리는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고, 교회의 교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진리를 사용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신학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토의 문제
1. 방법과 내용에 관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있는가? 있다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
2. 밀러는 기독교 교육에서 학습자를 철저히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3. 신학이 기독교 교육의 초점이 아니라는 밀러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왜? 그렇다면 신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4. 이 장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