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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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러시아 혁명해석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 구(舊) 소련 정부의 해석
1)볼세비키 정부의 러시아혁명사 서술
2)소련의 러시아혁명사 연구의 변천
3)혁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

Ⅲ. 자유주의적 해석
1) 자유주의적 해석의 발생 배경
2) 자유주의자들의 해석
3) 몇몇 연구들

Ⅳ. 수정주의적 해석
1) 수정주의적 해석의 발생 배경
2) 수정주의자들의 해석

Ⅴ. 사회주의 몰락 이후 러시아 혁명 해석의 흐름
1)러시아 역사가들의 10월 혁명에 대한 최근 시각
2) 10월 혁명에 대한 전통적 해석의 부활
3) 제 3의 패러다임을 찾아서

Ⅵ.맺음말

본문내용

었다면 10월 혁명과 같은 파국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혁명의 당위론적 관점을 거부하였다.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사회사가의 입장이 누그러들고 서방의 보수주의적 관점이 부활하였는데 파이프스에 의해 대표되는 러시아 혁명에 대한 서방의 보수주의적 관점은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잘못된 전제, 즉 “인간은 영혼, 혹은 내재적 이념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물질적 결합체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조형이 가능한 수동적 존재”란 그릇된 가정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으며. 당의 “민주주의”는 오직 노동계급 출신의 당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고 나머지 사회계급까지 확장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3) 제 3의 패러다임을 찾아서
파이프스와 말리아 등이 제기한 러시아 혁명에 대한 전체주의적 관점은 많은 수정주의 역사가들을 분명 편치 않게 만들었다. 비록 이러한 전체주의적 혁명 해석이 자신들이 이룩해 낸 러시아 혁명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 냉전시대의 시각의 재현이었지만 “구조적 요인”을 통한 혁명 분석은 “승자의 입장”에서 사회사가들의 시각을 논박하는 보수적 역사가들 때문에 적지 않게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사가 내부에서도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던 계급, 신분, 사회적 구조 등의 개념을 역동적으로 보지 못하고 단순히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여 혁명과정을 분석하였다는 문제 제기가 지속되고 있었는 바, 이제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그들의 사회적 상황과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한다는 식의 정통 마르크시스트적 시각의 차용을 피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계급 갈등, 사회적 분화라는 개념을 뛰어 넘어 지금까지 소홀하게 취급되었던 담론, 즉 언어, 성, 문화 등의 개념을 이용하여 1917년 혁명을 재조명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반성 속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1) 언어적 관점 (피지스와 콜로니츠키)
혁명과정 중에 어떤 특정한 상징적 언어를 사용한 집단이나 개인조차도 그 언어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상징 언어를 집단 밖의 군력체가 바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조작하고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그들 연구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2) 인물을 통한 접근 (피지스)
러시아 혁명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범주 뒤에 숨어있는 인물 개개인의 형태를 보다 심도있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들, 즉 볼셰비키 노동자 카나취코프 농민 활동가 시메노프등의 회고록이나 편지 등을 이용하여 혁명이라는 대격변의 과정에 참가하였던 인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준다.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러시아의 민중들은 혁명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가자이며 바로 그들의 행동들이 당의 정치 과정에 결부되면서 최종적 결과를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3) 민중들에게로 귀한
농민들은 혁명을 “그들의 과거 주인을 처벌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지 “만인의 법적 평등에 기초한 정치체” 건설의 기회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피지스에 따르면 민중의 제일 관심사는 헌법이 아니라 재산의 분배였던 것이다.
러시아가 가지는 문화적 후진성 때문에 민중들은 그것이 가져올 비극적 결말을 알지 못하고 혁명을 지원했으므로 민중들 또한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민주주의적 문화의 허약함”이 볼셰비즘이 러시아에 뿌리를 내리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그 허약함은 새로운 전제정부의 등장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4) 여성들의 혁명에 대한 기여
볼세비키 혁명의 성공으로 분명 여성 운동가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했던 여성의 지위 향상이 교육, 혼인과 이혼에 관한 법령 정비, 임금 등의 구체적 분야를 살펴볼 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가부장제적인 가치 질서에 의해 제한을 받았으므로 실질적 지위 향상은 미흡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남성들만이 부각되는 러시아 혁명상을 탈피하려는 여성들의 실질적 지위 향상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문제, 보다 세부적인 전략적 측면에서의 여성 운동가들의 차이를 해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Ⅵ.맺음말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라는 E.H. 카의 말처럼 역사에 대한 해석은 시대상황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지만, 러시아 혁명만큼 정치체제에 따라, 이념체계에 따라 평가가 변화무쌍했던 역사적 사건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는 우리에게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새롭고 신선한 시각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종래에는 러시아 혁명을 폄하하는 냉전시대의 반공주의 역사가들의 시각과 이에 대립되는 수정주의사가들의 아래로부터의 역사연구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소련이 붕괴됨에 따라 수정주의사가들의 우세가 도전 받게 되고, 다시 보수주의 사가들이 부활한다. 이와 같이 정치적 대립이나 사회계급 간의 갈등을 통해 혁명을 설명하던 구조적 분석은 역사학의 새 트렌드로 인해 미시적인 분야로 나아간다. 즉 언어 담론적 접근 방법이라든가, 성의 차이에 따른 혁명에의 대응양식 등 과거의 역사연구 방법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각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이전의 사회사가들이나 전통주의 역사학자들이 이루어놓은 혁명에 대한 전체적인 조명에, 최근의 러시아 혁명에 대한 해석 흐름인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조명이 더해져 러시아 혁명에 대한 연구는 점점 더 풍부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새롭게 나타난 문화사적인 접근을 통해 넓혀진 연구 영역들이 기존의 전체적 조망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사가들의 연구와 다시 상호작용하여, ‘정치와 사회’의 영역 그리고 ‘문화’의 영역에서의 연구가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참 고 문 헌
김민제, <<러시아 혁명의 환상과 현실>>, 역민사, 1998
이인호, <러시아 혁명과 역사 해석의 문제>, <<서양사론>> 33호, 1989
박원용, <사회주의 몰락 이후 러시아 혁명 해석의 흐름>, <<역사와 경계>> 42호, 2002,
배영수 엮음, <<서양사 강의>>, 한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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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09.01.02
  • 저작시기2008.7
  • 파일형식한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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