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목차
제 1편 총 론
제 1장 모든 학문과 기독론과의 관계
제 2장 기독론의 정의
제 2편 그리스도의 인격
제 1장 그리스도의 명칭
제 2장 그리스도의 본성
제 3장 그리스도의 신분
제 3편 그리스도의 사역
제 1장 그리스도의 직무
제 2장 그리스도의 속죄
제 1장 모든 학문과 기독론과의 관계
제 2장 기독론의 정의
제 2편 그리스도의 인격
제 1장 그리스도의 명칭
제 2장 그리스도의 본성
제 3장 그리스도의 신분
제 3편 그리스도의 사역
제 1장 그리스도의 직무
제 2장 그리스도의 속죄
본문내용
에 좌우된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선택에 하나님이 종속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이 인간의 선택에 의해 달라진다. 그러니 보편 구원은 자유의지의 강조로 하나님의 주권 성을 박탈한다. 그러므로 캘빈이 이를 적극적으로 배척한 것이다.
2) 제한속죄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민 구원에 종족이 가능하다. 그것은 그 효능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효력은 피택자에게 임한다. 그래서 선택된 자들에게만 초청장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작정된 자를 위해 죽으시고 효과를 적용한 자들에게 주권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은혜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택자는 구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하심으로 친히 이일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보편 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원 이루는 주권은 있지만 적용하는 주권은 없게 된다. 그들은 예를 들어 선물을 줄 때 당사자가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복음을 전해도 그들이 거절하는 현상을 보면 그 말이 옳은 것 같고, 또한 우리가 믿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그들이 거절한 것은 믿을 수 있는데 거절한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다. 그러면 왜 믿으라고 하는가? 그래도 그 책임은 그들에게 있고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죽은 영혼을 살려내시자 은혜로 믿게 한다.
제한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구원의 효능이 꼭 속죄 자를 위할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은 아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만민의 구원에 충족하다. 그것은 효능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초청장을 보내시고 다 오라 하신다. 그래도 실제로 잔치에 참여한 피택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 구원의 은혜를 작정한 자들에게 주권적으로 적용하여 은혜가 더욱 은혜 되게 하신다.
3)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견인의 구원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신 자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그 구원의 은혜를 성령께서 적용시키신다. 우리가 받을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한번 구원을 알면 도무지 거절할 수 없다. 하나님이 구원할 자를 끝까지 구원한다. 그래서 복음의 도를 깊이 이해하면 다 칼뱅주의가 된다. 모든 성도는 칼뱅주의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가 역사 하는 것을 알게 되어 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역사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가는 꼴이 된다. 은혜를 찾아가면 이방종교이다. 한번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누구도 거부하거나 상실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 상태에 들어가면 한번 은혜 입으면 그 은혜를 중간에 상실하거나 은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하신다. 로마 교회는 교회에서 떨어지면 구원에서 이탈한다고 하기 때문에 구원에 확신이 없다. 끝까지 교회 안에서 지내다 죽으면 구원이 있지만 중간에 잘못하다 신부하고 싸우면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죽을힘을 대해서 노력한다. 열심히 있어서 좋으나 그것은 자력 구원의 이단적 체계이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신 자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그 구원의 은혜를 성령님께서 적용하여 목표에 이르도록 불가항력적으로 이 일을 이루신다. 누구든지 이 은혜를 거부하거나 놓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견인 구원이다. 오래 참으심으로 그의 미쁘심이 피택자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적 때문에 은혜 입은 자가 한 번 받은 은혜를 중간에 상실하지 않고 또 은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택자로 하여금 구원에서 탈락하지 못하도록 붙드신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일이요 죄악은 자유의지로 짓는다. 은혜 받은 일은임으로 할 수 없다. 이것이 개혁신학이고 그 진리만이 참 은혜의 복음이다.
4) 성경을 통해 구약의 예를 보자
초대 왕: 사울은 신정 정치와 왕정 정치를 분리하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왕권을 위태롭게 했다. 사울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함으로 종교의 대표자인 제사장을 무시하니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미신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사울은 그리스도를 무시함으로 진노를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2대 왕: 다윗은 왕정 치와 신정정치를 일치하여 신정이 위태롭지 않게 밀착시켰고 첫 번째 하는 일이 법궤를 자기가 사는 곳으로 모셔 왔던 것이다. 이것이 신정과 자신의 왕정을 밀착시키고 한 번도 자기를 왕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왕 나의 주'라고 했던 것이다. 다윗 전에는 예루살렘이 알려지지 않았다. 왜 예루살렘이 만고불변의 도성으로 알려졌는가? 하늘에도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다윗이 정치를 잘해서가 예루살렘이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소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이 되어 제일 먼저 신정에 왕정을 밀착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예표론 적으로 시작하고 성경에 입각한 종교에 봉사하므로 특별은혜에로 선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5) 영아구원
스트롱의 학설이 영아구원을 지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영아구원을 지지한다. 우리는 왜 정죄해야 하는가? 그것은 죄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이론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성경은 한 사람의 죄도 예외 없이 죄인으로 정죄한다. 다윗은 어머니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잉태되고 죄인으로 출생하여 죄를 필연적으로 짓는다고 고백했다. 바울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6) 새 인류만이 참 인류이다.
우리는 선택받은 자라고 할 때 몇 사람을 뽑아서 구원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해에 도달코자 하지만 카이퍼는 새 인류를 나무에 비유해서 인류란 나무가 있는데 마른나무를 재해 버린 인류 그 나머지의 인류가 참 인류라고 했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새 인류의 머리요 독 새 인류이시다.
제한 속죄라고 해서 여기저기에서 몇 명을 빼내는 그러한 방법이 아니다. 전(全) 인류를 위한 구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 인류가 한 인류를 이룬다. 여기에서 마른 가지 혹은 썩은 가지 즉 불택 자를 잘라낸다는 것이다. 기독론을 배운 우리는 이단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제한 속죄를 무서워 말고 하나님과 같이 죄를 무서워해야 할 것이다.
2) 제한속죄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민 구원에 종족이 가능하다. 그것은 그 효능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효력은 피택자에게 임한다. 그래서 선택된 자들에게만 초청장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작정된 자를 위해 죽으시고 효과를 적용한 자들에게 주권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은혜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택자는 구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하심으로 친히 이일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보편 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원 이루는 주권은 있지만 적용하는 주권은 없게 된다. 그들은 예를 들어 선물을 줄 때 당사자가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복음을 전해도 그들이 거절하는 현상을 보면 그 말이 옳은 것 같고, 또한 우리가 믿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그들이 거절한 것은 믿을 수 있는데 거절한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다. 그러면 왜 믿으라고 하는가? 그래도 그 책임은 그들에게 있고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죽은 영혼을 살려내시자 은혜로 믿게 한다.
제한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구원의 효능이 꼭 속죄 자를 위할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은 아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만민의 구원에 충족하다. 그것은 효능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초청장을 보내시고 다 오라 하신다. 그래도 실제로 잔치에 참여한 피택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 구원의 은혜를 작정한 자들에게 주권적으로 적용하여 은혜가 더욱 은혜 되게 하신다.
3)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견인의 구원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신 자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그 구원의 은혜를 성령께서 적용시키신다. 우리가 받을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한번 구원을 알면 도무지 거절할 수 없다. 하나님이 구원할 자를 끝까지 구원한다. 그래서 복음의 도를 깊이 이해하면 다 칼뱅주의가 된다. 모든 성도는 칼뱅주의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가 역사 하는 것을 알게 되어 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역사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가는 꼴이 된다. 은혜를 찾아가면 이방종교이다. 한번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누구도 거부하거나 상실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 상태에 들어가면 한번 은혜 입으면 그 은혜를 중간에 상실하거나 은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하신다. 로마 교회는 교회에서 떨어지면 구원에서 이탈한다고 하기 때문에 구원에 확신이 없다. 끝까지 교회 안에서 지내다 죽으면 구원이 있지만 중간에 잘못하다 신부하고 싸우면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죽을힘을 대해서 노력한다. 열심히 있어서 좋으나 그것은 자력 구원의 이단적 체계이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신 자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그 구원의 은혜를 성령님께서 적용하여 목표에 이르도록 불가항력적으로 이 일을 이루신다. 누구든지 이 은혜를 거부하거나 놓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견인 구원이다. 오래 참으심으로 그의 미쁘심이 피택자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적 때문에 은혜 입은 자가 한 번 받은 은혜를 중간에 상실하지 않고 또 은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택자로 하여금 구원에서 탈락하지 못하도록 붙드신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일이요 죄악은 자유의지로 짓는다. 은혜 받은 일은임으로 할 수 없다. 이것이 개혁신학이고 그 진리만이 참 은혜의 복음이다.
4) 성경을 통해 구약의 예를 보자
초대 왕: 사울은 신정 정치와 왕정 정치를 분리하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왕권을 위태롭게 했다. 사울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함으로 종교의 대표자인 제사장을 무시하니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미신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사울은 그리스도를 무시함으로 진노를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2대 왕: 다윗은 왕정 치와 신정정치를 일치하여 신정이 위태롭지 않게 밀착시켰고 첫 번째 하는 일이 법궤를 자기가 사는 곳으로 모셔 왔던 것이다. 이것이 신정과 자신의 왕정을 밀착시키고 한 번도 자기를 왕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왕 나의 주'라고 했던 것이다. 다윗 전에는 예루살렘이 알려지지 않았다. 왜 예루살렘이 만고불변의 도성으로 알려졌는가? 하늘에도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다윗이 정치를 잘해서가 예루살렘이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소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이 되어 제일 먼저 신정에 왕정을 밀착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예표론 적으로 시작하고 성경에 입각한 종교에 봉사하므로 특별은혜에로 선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5) 영아구원
스트롱의 학설이 영아구원을 지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영아구원을 지지한다. 우리는 왜 정죄해야 하는가? 그것은 죄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이론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성경은 한 사람의 죄도 예외 없이 죄인으로 정죄한다. 다윗은 어머니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잉태되고 죄인으로 출생하여 죄를 필연적으로 짓는다고 고백했다. 바울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6) 새 인류만이 참 인류이다.
우리는 선택받은 자라고 할 때 몇 사람을 뽑아서 구원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해에 도달코자 하지만 카이퍼는 새 인류를 나무에 비유해서 인류란 나무가 있는데 마른나무를 재해 버린 인류 그 나머지의 인류가 참 인류라고 했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새 인류의 머리요 독 새 인류이시다.
제한 속죄라고 해서 여기저기에서 몇 명을 빼내는 그러한 방법이 아니다. 전(全) 인류를 위한 구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 인류가 한 인류를 이룬다. 여기에서 마른 가지 혹은 썩은 가지 즉 불택 자를 잘라낸다는 것이다. 기독론을 배운 우리는 이단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제한 속죄를 무서워 말고 하나님과 같이 죄를 무서워해야 할 것이다.
키워드
추천자료
현대 선교 신학
교육 신학 연구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ㆍ성서적 이해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무료성경신학원)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의미와 배경,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 부활과 부활증...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의 의미와 탄생, 그리스도(예수그리스도, 예수) 치유와 개혁신...
[라인홀드 니이버][라인홀드 니버]라인홀드 니이버(라인홀드 니버)의 생애, 라인홀드 니이버(...
어거스틴(Augusting)의 삼위일체론 - 어거스틴과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신학
역사를 통해서 대표되는 그릇된 속죄관 이론들 - 사탄 배상설, 요점재현설, 속죄 만족설, 도...
하나님의 존재 - 신론의 근거를 주장하는 논쟁들, 성경적 논증(하나님에 관한 지식, 특별계시...
한국YMCA 청소년인권운동과 신학적 관계 (기독교)
[만남 안에 계시 된 하나님] 부제 ) 계시의 측면에서 바라본 바르트와 불트만 신학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WCC의 역사, WCC와 복음주의 신학교육의 당면과제, WCC의 이념과 한국교회의 타종교 이해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