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신라시대의 교육
2) 화랑도의 기원과 성립
3) 화랑도의 교육사상·내용·방법
4) 화랑도의 사회적 기능
5) 화랑도의 한계와 의의
Ⅲ.결론
참고문헌
Ⅱ. 본론
1) 신라시대의 교육
2) 화랑도의 기원과 성립
3) 화랑도의 교육사상·내용·방법
4) 화랑도의 사회적 기능
5) 화랑도의 한계와 의의
Ⅲ.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 이런 것은 화랑도 조직이 보여주는 계층간의 연대가 골품제도의 불완전한 모습의 한 요인인 것으로 보여진다.
5) 화랑도의 한계와 의의
화랑도는 귀족부터 평민까지 참여하여 신분 계층간의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이 있었으나 한편으로 6-7세기에 진골이나 6두품가운데 국외망명자가 출연하였다는 것은 그 기능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적 능력이 우대 받는 사회에서 학식을 겸비한 유능한 관인을 선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천거에 의한 것이므로 기존 귀족세력의 정치적 기반은 여전히 공고히 유지 되었다. 이렇게 관인선발제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화랑도는 과도기적인 관인 선발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화랑도는 전통사상과 유·불·선의외래사상의 융합으로 이루어 졌고 그것은 전통사상이 주가 되어 외래사상을 융합시키고 조화한 것으로 새로운 민족전통 정신을 창조한 것이다. 고대인들은 예부터 하늘을 숭상하거나 산신을 숭배하기도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서 그것을 발견 할 수 있다. 화랑의 무리들이 산악을 순행하면서 심신수련을 함으로서 인격을 수양했던 것은 화랑이 천신사상과 결합했던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신라인의천에 관한 의식이 화랑도에 반영되었음을 나타내어 준다.
그리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적인 기능과 일상생활의 규범과 전통에 관한 지식과 협동과 단결 정신을 길러 강인한 체력을 기르고 전시에는 군대로 편성되어 호국의 역군으로 국가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이런 화랑도는 국가적 제도이면서도 사조직으로서 서약이라는 형태로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귀족자제와 평민자제가 함께 수련하여 신부계층간의 갈등을 완화하는데 어느 정도 이바지 하였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지식을 쌓아가는 화랑도는 한 가지만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모든 것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산과 강을 다니며 노래와 음악을 즐기면서 수련하였다는 점에서 요즘 시대가 강조하는 전문인의 양성보다는 풍부한 교양과 훌륭한 인성을 함양시키는 전인교육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런 화랑도는 결국 신라 청소년만의 정신이 아닌 신라인의 정신으로서 삼국통일에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Ⅲ.결론
삼국시대의 화랑도는 청소년 집회를 기원으로 하여 고대국가로 발전하면서 제도로 제정되었는데 신라 고유의 사상과 외래 사상이 접합된 〈세속오계〉아래서 음악과 시를 즐기고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하였다. 그리하여 특별한 관리 선발 기능이 없었던 신라에서 관리 선발의 기능을 하기도 하였고, 삼국간이나 대외적인 전쟁이 심하던 시기에 무인으로써의 자질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러 계층의 청소년들의 자발적 참여로 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화랑도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강력한 밑바탕이 되었으며 당까지 물리침으로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화랑도도 통일 후에는 그 본질이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라시대의 교육은 화랑도교육을 통하여 시대가 원하는 인재를 얻었으나, 현대에 와서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교육으로 인해 많은 문제도 생겨나고 있다. 신라시대의 교육을 현대에 그대로는 적용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느끼고 깨달아서 현대교육에 적절히 응용할 수 있다면 보다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화랑도 교육은 자연과 함께하여 도덕적 인격을 길러내고 정서적으로 자연을 닮아가는 인간을 형성하였다. 현재 지식위주 교육에 익숙해져있는 현대교육과는 대조적으로 화랑도의 다양한 활동은 인간 전체적인 성숙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지금도 전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다양한 활동을 심사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수능지수로 대학이 갈리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노력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편법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화랑도는 신라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가 지원해주는 집단이었으므로, 화랑과 낭도가 되어 인정받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화랑도라는 집단을 통해 소속감을 갖게 되고, 단결력과 협동심을 학습하게 되었다. 현재 교육과 화랑도 교육의 큰 차이점은 사회적 인간양성교육이다. 지금 중등교육은 사회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데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시험 볼 때마다 지식을 넣었다 빼었다 하는 기계적 훈련을 길들일 뿐 진심으로 올바른 인간, 정서적으로 성숙된 인간을 길러내려는 의지가 있는 교사, 학생, 학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교육의 전체가 지식이 전부가 아닌 만큼 교육은 인간의 완성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한 인간의 성격, 인격적인 완성, 도덕성, 사회와의 조화가 한꺼번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랑도 교육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화랑과 낭도들은 지적인 면을 채우는 것보다 함께 활동하면서 도덕적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했다.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심신을 단련시키고, 지도력을 키워 국가의 인재로 자라난 것이다. 이처럼 현대교육은 책상에서만 하는 활동 이외에 다양한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기업, 시민단체와 같은 여러 집단에서 청소년들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 제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활동이 인정이 되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사회성이 길러질 수 있음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머리가 우수한 인재가 아니다. 좋은 머리를 올바른 곳에 쓰지 못하면 그것은 오히려 사회의 악영향을 끼치는 위험인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도 하나의 국가적 사업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업일지도 모른다. 기존 사회 가치와 태도, 올바른 규범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 문화를 일궈간다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한 교육의 성과일 것이다.
참고문헌
사료
《삼국지》
《후한서》
《화랑세기》
김기태. 〈화랑도의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 인천교대논문집 19, 1985.
박민정. 〈신라교육제도의 전개와 발전〉. 인제대 교육대학원, 2006.
선종복. 〈화랑도 교육에 관한 연구〉. 청주: 한국교원대학교, 1992,
손진태. 〈조선민족사〉. 을유문화사, 1949.
이기동.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1990.
5) 화랑도의 한계와 의의
화랑도는 귀족부터 평민까지 참여하여 신분 계층간의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이 있었으나 한편으로 6-7세기에 진골이나 6두품가운데 국외망명자가 출연하였다는 것은 그 기능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적 능력이 우대 받는 사회에서 학식을 겸비한 유능한 관인을 선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천거에 의한 것이므로 기존 귀족세력의 정치적 기반은 여전히 공고히 유지 되었다. 이렇게 관인선발제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화랑도는 과도기적인 관인 선발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화랑도는 전통사상과 유·불·선의외래사상의 융합으로 이루어 졌고 그것은 전통사상이 주가 되어 외래사상을 융합시키고 조화한 것으로 새로운 민족전통 정신을 창조한 것이다. 고대인들은 예부터 하늘을 숭상하거나 산신을 숭배하기도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서 그것을 발견 할 수 있다. 화랑의 무리들이 산악을 순행하면서 심신수련을 함으로서 인격을 수양했던 것은 화랑이 천신사상과 결합했던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신라인의천에 관한 의식이 화랑도에 반영되었음을 나타내어 준다.
그리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적인 기능과 일상생활의 규범과 전통에 관한 지식과 협동과 단결 정신을 길러 강인한 체력을 기르고 전시에는 군대로 편성되어 호국의 역군으로 국가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이런 화랑도는 국가적 제도이면서도 사조직으로서 서약이라는 형태로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귀족자제와 평민자제가 함께 수련하여 신부계층간의 갈등을 완화하는데 어느 정도 이바지 하였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지식을 쌓아가는 화랑도는 한 가지만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모든 것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산과 강을 다니며 노래와 음악을 즐기면서 수련하였다는 점에서 요즘 시대가 강조하는 전문인의 양성보다는 풍부한 교양과 훌륭한 인성을 함양시키는 전인교육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런 화랑도는 결국 신라 청소년만의 정신이 아닌 신라인의 정신으로서 삼국통일에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Ⅲ.결론
삼국시대의 화랑도는 청소년 집회를 기원으로 하여 고대국가로 발전하면서 제도로 제정되었는데 신라 고유의 사상과 외래 사상이 접합된 〈세속오계〉아래서 음악과 시를 즐기고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하였다. 그리하여 특별한 관리 선발 기능이 없었던 신라에서 관리 선발의 기능을 하기도 하였고, 삼국간이나 대외적인 전쟁이 심하던 시기에 무인으로써의 자질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러 계층의 청소년들의 자발적 참여로 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화랑도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강력한 밑바탕이 되었으며 당까지 물리침으로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화랑도도 통일 후에는 그 본질이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라시대의 교육은 화랑도교육을 통하여 시대가 원하는 인재를 얻었으나, 현대에 와서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교육으로 인해 많은 문제도 생겨나고 있다. 신라시대의 교육을 현대에 그대로는 적용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느끼고 깨달아서 현대교육에 적절히 응용할 수 있다면 보다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화랑도 교육은 자연과 함께하여 도덕적 인격을 길러내고 정서적으로 자연을 닮아가는 인간을 형성하였다. 현재 지식위주 교육에 익숙해져있는 현대교육과는 대조적으로 화랑도의 다양한 활동은 인간 전체적인 성숙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지금도 전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다양한 활동을 심사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수능지수로 대학이 갈리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노력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편법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화랑도는 신라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가 지원해주는 집단이었으므로, 화랑과 낭도가 되어 인정받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화랑도라는 집단을 통해 소속감을 갖게 되고, 단결력과 협동심을 학습하게 되었다. 현재 교육과 화랑도 교육의 큰 차이점은 사회적 인간양성교육이다. 지금 중등교육은 사회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데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시험 볼 때마다 지식을 넣었다 빼었다 하는 기계적 훈련을 길들일 뿐 진심으로 올바른 인간, 정서적으로 성숙된 인간을 길러내려는 의지가 있는 교사, 학생, 학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교육의 전체가 지식이 전부가 아닌 만큼 교육은 인간의 완성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한 인간의 성격, 인격적인 완성, 도덕성, 사회와의 조화가 한꺼번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랑도 교육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화랑과 낭도들은 지적인 면을 채우는 것보다 함께 활동하면서 도덕적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했다.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심신을 단련시키고, 지도력을 키워 국가의 인재로 자라난 것이다. 이처럼 현대교육은 책상에서만 하는 활동 이외에 다양한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기업, 시민단체와 같은 여러 집단에서 청소년들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 제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활동이 인정이 되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사회성이 길러질 수 있음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머리가 우수한 인재가 아니다. 좋은 머리를 올바른 곳에 쓰지 못하면 그것은 오히려 사회의 악영향을 끼치는 위험인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도 하나의 국가적 사업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업일지도 모른다. 기존 사회 가치와 태도, 올바른 규범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 문화를 일궈간다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한 교육의 성과일 것이다.
참고문헌
사료
《삼국지》
《후한서》
《화랑세기》
김기태. 〈화랑도의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 인천교대논문집 19, 1985.
박민정. 〈신라교육제도의 전개와 발전〉. 인제대 교육대학원, 2006.
선종복. 〈화랑도 교육에 관한 연구〉. 청주: 한국교원대학교, 1992,
손진태. 〈조선민족사〉. 을유문화사, 1949.
이기동.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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