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분적으로 수 등에 의존하는 편집 비평적인 결정을 통해서 많은 석의 적인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통계학적인 주장과 관련된 많은 방법론적인 오류들이 있다. 하지만 신약 학자들은 대부분 그런 오류를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많은 편집적인 결정들은 어떤 단어들이 단지 45번 등장했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그러나 판정이 실수일 수 있는 가능성은 50%나 70% 80%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 더욱이 단어의 빈도에 때한 통계는 대개 무의미 한 가설에 의존하여 계산된다. 이러한 통계적인 모델은 통 속에서 무작위로 단어들을 꺼낼 때처럼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날 것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들은 단어를 그런 식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작가들이 이러 저러한 상황에서 어떤 단어들을 선택한 데는 분명한 문맥적인 혹은 주제와 관련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6. 구조주의의 발흥
새로운 오류는 비교적 최근의 등장한 이 학문이 성경 연구에 적용됨으로써 생겨나고 있다.
7. 상징적인 것과 문자 적인 것을 구분하는 문제들
문자적인 것을 상징적인 것으로 오해하거나 그 반대로 오해하는 해석은 흔히 발견될 수 있다. 몇몇 사교 집단의 신학은 그러한 오독에 근거하고 있다.
한꺼번에 야기되는 단편적인 오류들
이러한 논의는 분명히 오류들을 단편적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실제 주석 작업에서 몇몇 구절들은 그 자체로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오류들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것음 마치 율법이 죄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손쉬운 해답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가서 중심적인 진리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아주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공평하게 연구하고 두려운 마음과기도하는 마음으로 의미를 결정함으로써 점점 석의 기술이 좋아지게 되고 결국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일꾼이 될 것이다.
서평
사실 성경 해석에 있어 오류에 집중하여 성경을 보게 되면 상당히 신앙에 있어서 부정적인 결과를 많이 산출해 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작정 은혜로만 성경을 보게 될 때에도 그 무지함에서 오는 엄청난 잘못된 결과들은 전자의 것 이상으로 위험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실재 이 책의 저자가 책이 담고 있는 수준에 대해서 평가 할 때에도 신학자들이 보기엔 좀 가볍고 얕은 분량이지만 평신도나 신학생 정도가 보기엔 조금 방대한 양을 소개한다고 했다. 그만큼 내용에 있어서 중요성에 있어서나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이다.
현재 목회 현장에서 설교가 되어질 때 설교자들은 성경의 본문을 해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 사실이며 또한 성도들은 그들 목회자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관이 형성되고 성경적 관이 형성되기 된다. 사실 한국의 기독교에 문제점이라 보기엔 지면을 할애하여 충분히 설명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지만 신학의 부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 교회의 신학은 그가 자란 교회의 영성이며 그가 배운 목회자의 신앙관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올바른 신학적 체계가 없이 무작정 그가 배우고 자란 교회나 목회자의 성향을 배우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더 큰 문제는 목회를 위해 신학을 배운 사람들마저도 학교에서 배운 신학은 학교에서 끝나 버리고 결국 목회 현장에서는 그가 이전부터 익숙해 있던 습관을 따라서 목회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수없이 많은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서 눈을 열게 되었다.
그 가운데 실재 우리의 설교와 가르침 가운데 수없이 많이 언급되었던 성경 해석의 부분들이 사실상 오류였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긴 세월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 오류가 시정되어지지 않은 상태로 강단을 통해 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단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문법 적용에 있어서의 오류는 물론이며 주관적인 신학적 견해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성경이 본래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전혀 이상한 쪽으로 이끌고 나가는 현상이 실재하게 된 것이다. 또한 역사적 정황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세계관의 혼동 등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치명적 오류인 동시에 대단히 해악 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이나 강단에서 이렇게 오류로 가득 찬 해석이 난무하게 된 데에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목회자와 같은 이들의 반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실재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연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오류로 물들어 버린 기성 교인들의 정서와 그들의 신앙관을 바로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될 아주 위태로운 현실임을 감안할 때 지금 현재 신학을 배우는 우리에게는 매우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18세기의 유명한 청교도였던 조다난 에드워드는 지성을 대단히 강조했다. 그리고 모든 성도에게 신학의 필요를 언급하고 신학의 중요성에 대하여서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한 신학은 불붙는 신학이었다. 바로 성령에 의해 통제되고 다스려지는 신학을 말한 것이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신학은 있지만 너무나 차가운 지성만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지서없는 뜨거움만 고집하는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의 결말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가서 중심적인 진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아주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공평하게 연구하고 두려운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의미를 결정함으로써 점점 석의 기술이 좋아지게 되고 결국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일꾼이 될 것이다.“ 라는 말로 결말을 맺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잘 못된 것을 빨리 깨닫고 즉각적으로 시정하여야 한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을 주셨다면 근본적 문제를 향해서 수술의 칼을 빼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마음을 붙들어 주시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힘써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6. 구조주의의 발흥
새로운 오류는 비교적 최근의 등장한 이 학문이 성경 연구에 적용됨으로써 생겨나고 있다.
7. 상징적인 것과 문자 적인 것을 구분하는 문제들
문자적인 것을 상징적인 것으로 오해하거나 그 반대로 오해하는 해석은 흔히 발견될 수 있다. 몇몇 사교 집단의 신학은 그러한 오독에 근거하고 있다.
한꺼번에 야기되는 단편적인 오류들
이러한 논의는 분명히 오류들을 단편적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실제 주석 작업에서 몇몇 구절들은 그 자체로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오류들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것음 마치 율법이 죄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손쉬운 해답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가서 중심적인 진리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아주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공평하게 연구하고 두려운 마음과기도하는 마음으로 의미를 결정함으로써 점점 석의 기술이 좋아지게 되고 결국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일꾼이 될 것이다.
서평
사실 성경 해석에 있어 오류에 집중하여 성경을 보게 되면 상당히 신앙에 있어서 부정적인 결과를 많이 산출해 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작정 은혜로만 성경을 보게 될 때에도 그 무지함에서 오는 엄청난 잘못된 결과들은 전자의 것 이상으로 위험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실재 이 책의 저자가 책이 담고 있는 수준에 대해서 평가 할 때에도 신학자들이 보기엔 좀 가볍고 얕은 분량이지만 평신도나 신학생 정도가 보기엔 조금 방대한 양을 소개한다고 했다. 그만큼 내용에 있어서 중요성에 있어서나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이다.
현재 목회 현장에서 설교가 되어질 때 설교자들은 성경의 본문을 해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 사실이며 또한 성도들은 그들 목회자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관이 형성되고 성경적 관이 형성되기 된다. 사실 한국의 기독교에 문제점이라 보기엔 지면을 할애하여 충분히 설명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지만 신학의 부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 교회의 신학은 그가 자란 교회의 영성이며 그가 배운 목회자의 신앙관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올바른 신학적 체계가 없이 무작정 그가 배우고 자란 교회나 목회자의 성향을 배우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더 큰 문제는 목회를 위해 신학을 배운 사람들마저도 학교에서 배운 신학은 학교에서 끝나 버리고 결국 목회 현장에서는 그가 이전부터 익숙해 있던 습관을 따라서 목회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수없이 많은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서 눈을 열게 되었다.
그 가운데 실재 우리의 설교와 가르침 가운데 수없이 많이 언급되었던 성경 해석의 부분들이 사실상 오류였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긴 세월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 오류가 시정되어지지 않은 상태로 강단을 통해 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단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문법 적용에 있어서의 오류는 물론이며 주관적인 신학적 견해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성경이 본래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전혀 이상한 쪽으로 이끌고 나가는 현상이 실재하게 된 것이다. 또한 역사적 정황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세계관의 혼동 등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치명적 오류인 동시에 대단히 해악 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이나 강단에서 이렇게 오류로 가득 찬 해석이 난무하게 된 데에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목회자와 같은 이들의 반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실재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연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오류로 물들어 버린 기성 교인들의 정서와 그들의 신앙관을 바로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될 아주 위태로운 현실임을 감안할 때 지금 현재 신학을 배우는 우리에게는 매우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18세기의 유명한 청교도였던 조다난 에드워드는 지성을 대단히 강조했다. 그리고 모든 성도에게 신학의 필요를 언급하고 신학의 중요성에 대하여서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한 신학은 불붙는 신학이었다. 바로 성령에 의해 통제되고 다스려지는 신학을 말한 것이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신학은 있지만 너무나 차가운 지성만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지서없는 뜨거움만 고집하는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의 결말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에 다가가서 중심적인 진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아주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공평하게 연구하고 두려운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의미를 결정함으로써 점점 석의 기술이 좋아지게 되고 결국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일꾼이 될 것이다.“ 라는 말로 결말을 맺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잘 못된 것을 빨리 깨닫고 즉각적으로 시정하여야 한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을 주셨다면 근본적 문제를 향해서 수술의 칼을 빼어 들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마음을 붙들어 주시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힘써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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