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작가 이문열
2. 파괴된 세계인식과 이상세계의 희구
3. 작품분석
4.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2. 파괴된 세계인식과 이상세계의 희구
3. 작품분석
4.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본문내용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관심사를 넘어서 이론대립이나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 시대에 와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옛 기억을 더듬는 추억거리 정도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지만 80년대만 하더라도 무척 민감한 문제였었다.
이문열의 영웅시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문학작품이라는 제약성으로 인하여 명백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한편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작가의 견해를 직접 주인공의 입을 통해 밝히고 있으므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의 원숙미 보다는 의식과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이데올로기 참고 서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은 월북한 동영과 남에 남아있는 정인과 시어머니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로 볼 수 있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로 태어나 아나키스트로, 다시 43년 볼세비키로 전향해 월북한 동영의 북에서의 회의주의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은 동영의 북에서의 실패로 끝을 맺음으로써 이들의 총 집산지라고 할 수 있는 <동영의 노트>에서 주장하고 있는 휴머니즘과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결과가 된다. 작가가 시종 주장하거나 노리고 있는 바는 이데올로기라는 고안 자체가 인간의 나은 삶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있어서는 주객이 전도되고 있음에 대한 야유이다. 이 책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는 이념의 문제를 가장 인간적인 형태로 구체화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원시 사회로부터 고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의 영웅시대의 설정과 현 계급사회에서 다시 계급의 소멸을 꾀하는 역으로의 영웅시대의 설정, 그리고 이 시대를 진정한 영웅이 없는 영웅시대라고 규정한 것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시켜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거의 나의 입장과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떠한 고안이건 처음의 신성한 목적과는 달리 주객전도 상황이 일어나고 있음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와 같은 주객전도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황에 빠져드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신의 설정 자체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신에게 매달리려는 인간과 그것을 악용하여 일어나는 갖가지 부패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을 읽기 전에도 논리라고 하기에는 무척 어설픈 상태로나마 인식하고 있었기는 하지만 시종 타당하고 확신에 찬 논조로 글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작가의 역량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극히 상식적인 것 같으면서도 번뜩이는 기지가 내심 부러움을 사게 했다. 또한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결국에는 가장 소박한 논리가 휴머니즘임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작가에게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변증법에 관한 논리나 유물론에 관한 한 작가는 약간의 오류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렇지만 부분에 대해서 상세히 알거나 확신할만한 논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반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선택한 이념에 대해서 확신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보다는, 나의 경우는 세상 사람 모두가 배움과 논리와 의지의 인간일 수는 없음을 호소하는 정인의 입장에 더 가까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문열의 영웅시대에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상당히 많으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무용성(현 상황과 같은 주객전도 상황에 있어서)과 가장 소박한 논리로서의 휴머니즘, 민족주의의 유일성이 가장 큰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휴머니즘과 민족주의가 반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색분자로서의 변명이 아니라 확신에 찬 논조임에 더욱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동영의 노트>를 설정함으로써 작가의 말을 문학 속에 투입하는 것은 조금 지나치다 싶기는 하지만 오히려 작가의 역량을 발휘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장편답게 개성이 강한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킨 것 역시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게 한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객이 전도된 이데올로기는 꼭 피해야 하며 더 이상 설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주장이 매우 인간적이다. 이데올로기를 구시대의 유물로만 여길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난 몇 십 년간 우리들의 화두가 되었었고, 치열하게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의식의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현 시대에서도 가끔은 그 시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무엇인가 의식을 묶어둘 끈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문열의 영웅시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문학작품이라는 제약성으로 인하여 명백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한편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작가의 견해를 직접 주인공의 입을 통해 밝히고 있으므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의 원숙미 보다는 의식과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이데올로기 참고 서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은 월북한 동영과 남에 남아있는 정인과 시어머니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로 볼 수 있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로 태어나 아나키스트로, 다시 43년 볼세비키로 전향해 월북한 동영의 북에서의 회의주의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은 동영의 북에서의 실패로 끝을 맺음으로써 이들의 총 집산지라고 할 수 있는 <동영의 노트>에서 주장하고 있는 휴머니즘과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결과가 된다. 작가가 시종 주장하거나 노리고 있는 바는 이데올로기라는 고안 자체가 인간의 나은 삶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있어서는 주객이 전도되고 있음에 대한 야유이다. 이 책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는 이념의 문제를 가장 인간적인 형태로 구체화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원시 사회로부터 고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의 영웅시대의 설정과 현 계급사회에서 다시 계급의 소멸을 꾀하는 역으로의 영웅시대의 설정, 그리고 이 시대를 진정한 영웅이 없는 영웅시대라고 규정한 것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시켜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거의 나의 입장과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떠한 고안이건 처음의 신성한 목적과는 달리 주객전도 상황이 일어나고 있음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와 같은 주객전도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황에 빠져드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신의 설정 자체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신에게 매달리려는 인간과 그것을 악용하여 일어나는 갖가지 부패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을 읽기 전에도 논리라고 하기에는 무척 어설픈 상태로나마 인식하고 있었기는 하지만 시종 타당하고 확신에 찬 논조로 글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작가의 역량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극히 상식적인 것 같으면서도 번뜩이는 기지가 내심 부러움을 사게 했다. 또한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결국에는 가장 소박한 논리가 휴머니즘임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작가에게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변증법에 관한 논리나 유물론에 관한 한 작가는 약간의 오류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렇지만 부분에 대해서 상세히 알거나 확신할만한 논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반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선택한 이념에 대해서 확신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보다는, 나의 경우는 세상 사람 모두가 배움과 논리와 의지의 인간일 수는 없음을 호소하는 정인의 입장에 더 가까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문열의 영웅시대에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상당히 많으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무용성(현 상황과 같은 주객전도 상황에 있어서)과 가장 소박한 논리로서의 휴머니즘, 민족주의의 유일성이 가장 큰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휴머니즘과 민족주의가 반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색분자로서의 변명이 아니라 확신에 찬 논조임에 더욱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동영의 노트>를 설정함으로써 작가의 말을 문학 속에 투입하는 것은 조금 지나치다 싶기는 하지만 오히려 작가의 역량을 발휘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장편답게 개성이 강한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킨 것 역시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게 한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객이 전도된 이데올로기는 꼭 피해야 하며 더 이상 설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주장이 매우 인간적이다. 이데올로기를 구시대의 유물로만 여길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난 몇 십 년간 우리들의 화두가 되었었고, 치열하게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의식의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현 시대에서도 가끔은 그 시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무엇인가 의식을 묶어둘 끈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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