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구조주의의 개념정의
2. 구조주의의 발생배경 및 원인
3. 구조주의의 기본 특성
4. 구조주의의 두 가지 흐름
(1) 프랑스 구조주의
1) 구조주의와 기호학
2) 구조주의 서사학
(2) 체코 구조주의
5. 구조주의를 이끈 인물들
(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2) 소쉬르
6. 후기 구조주의(포스트 구조주의)
7. 후기 구조주의의 철학적 질문
8. 구조주의의 의의 및 한계
9. 참고자료
2. 구조주의의 발생배경 및 원인
3. 구조주의의 기본 특성
4. 구조주의의 두 가지 흐름
(1) 프랑스 구조주의
1) 구조주의와 기호학
2) 구조주의 서사학
(2) 체코 구조주의
5. 구조주의를 이끈 인물들
(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2) 소쉬르
6. 후기 구조주의(포스트 구조주의)
7. 후기 구조주의의 철학적 질문
8. 구조주의의 의의 및 한계
9. 참고자료
본문내용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를 통해 행해지는” 것이다. 데카르트라면, 내가 하는 말이 맞건 틀리건, 말을 하는 나란 주체는 존재한다고 하겠지만, 라캉은 언어의 구조가 ‘나’라는 말하는 주체의 전제라고 말한다. 좀더 나아가 그는 프로이트(S. Freud)의 무의식 개념을 언어학과 결합하여,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에 우선한다. 즉 우리의 의식은 의식되지 않는 무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은, 언어적인 질서에 따라 무의식이 진행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라캉은 데카르트의 문장을 뒤집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여기서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아마도 언어구조일 것이고, ‘생각하지 않는 곳’이란 무의식일 것이다.
다른 한편 홉스(T. Hobbes)는 데카르트 철학을 사회과학으로 밀고 나가 근대적인 사회이론을 창시했다. 즉 그는 사회 내지 국가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나뉘어져야(분석) 한다고 보았고, 더 나뉠 수 없는 확실한 요소에서 출발하여 이론적으로 구성되어야(종합) 한다고 생각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인간’이라는 주체였다.
인간이라는 주체는 각자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갖는다. 즉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즉시 서로의 의지가 충돌하여 전쟁과도 같은 커다란 혼란이 생겨버린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위해 남과 싸우게 되니, 이제 “인간은 서로에 대해 늑대가 된다”. 이런 상태를 그는 ‘자연상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질서를 전제하는 “사회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유명한 ‘홉스의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이제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이론인 (근대적) 사회과학이 탄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사회이론의 출발점에는 ‘주체’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종종 포스트구조주의적 사유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맑스(K. Marx)라면 이 질문에 대해 다시 질문할 것이다. 그처럼 서로 동등한 의지와 권리를 가지고 서로 싸우는 ‘인간’ 내지 ‘주체’가 대체 어떻게 가능했는가? 왜냐하면 귀족과 평민, 농노의 신분이 확연했던 그 이전 시대만 해도 사람들이 서로 동등한 권리나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맑스가 보기에 서로 동등한 귄리를 갖는 이런 ‘시민’은 무엇보다도 우선 시장에서 형성된 것이다. 즉 서로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계약에 의해 일이 성사되며, 경쟁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늑대가 되는 곳이 바로 시장이고, 이는 유럽의 중요한 도시들에서 14세기이래 점차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그런 ‘인간’은 농민들을 토지에서 몰아내면서 신분으로부터도 해방시켰던, 이른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고 불리는 가혹한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홉스가 ‘출발점’으로 당연시했던 ‘주체’나 ‘인간’이란 개념은 사실은 역사적 과정의 결과물이요 생산물이다. 확실한 출발점이라고 간주되던 주체 개념은 이제 해체된다.
포스트구조주의의 가장 유명한 사상가 중 하나인 푸코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이 주체 개념을 해체한다. 홉스가 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보았던 그 ‘인간’ 내지 ‘주체’, 혹은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이성적 주체는, 광인이나 부랑자, 게으름뱅이, 가난뱅이, 범죄자 등을 ‘종합병원’이란 이름의 수용소에 가두고, 그들을 사회로부터 배제함으로써 만들어진 ‘정상인’의 모습이요, 나중에는 규율과 감시, 처벌 등을 통해 신체적으로 훈육된 ‘인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맑스나 푸코에게 공통된 것은, 근대의 사회이론이 출발점으로 삼았던 ‘주체’가 반대로 ‘근대’(modern)라는 역사적 과정의 결과요 생산물이라는 것이다. 마치 데카르트의 ‘주체’가 문법이나 언어구조의 결과였던 것처럼. 따라서 그것은 근대라는 역사적 과정을 넘어서면서 동시에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것이기도 하다.
8. 구조주의의 의의 및 한계
구조주의는 주관적 해석이 많은 문학연구에 최대한도로 객관화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문학작품과 현실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반대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구조주의는 문학작품이라는 언어구조물과 지시대상을 분리시킴으로써 문학이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한 셈이다. 구조주의는 칸트의 무목적의 목적성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이 것에도 문제점이 생겼다. 특히 시보다는 서사문학에서 한층 크게 나타났다. 서사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든 것이 언어적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유추적 관계를 언어학적 법칙의 차원에서 엄밀하게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더욱이 이야기 층위를 분석하면서 문장의 차원에 적용되는 문법적 규칙을 원용하려 할 때 구조주의 방법은 일종의 자기모순에 빠진다. 구조주의에 의하면 독자의 의식 내부에서 시로 지각되는 부분은 주관적 영역이며 시적특성은 언어 자체의 구조적 특성을 통해 객관적 구조로서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파테르는 두 사람의 분석에는 시적 효과에 기여하지 않는 체계에 대한 설명이 있는 반면, 시적 효과를 발휘하는 요소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구문적 유사성에 대한 패턴은 실제로 어떤 시적 효과를 나타내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라파테르는 시를 정태적인 언어적 배열로서 분석할 것이 아니라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일종의 담론으로서 분석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논의의 요지는 독자에게 시로서 소통되는 부분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각의 주체로서의 독자는 사회성과 역사성을 지니므로 이에 따르는 복잡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랑그 측면에서의 연구는 공시적 고찰인 동시에 보편적 법칙에 대한 연구이다. 바흐친은 언어의 어떤 법칙성으로 환원되는 구심력과 함께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을 지님도 강조했다. 그것이 단순히 우연성과 개인성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이데올로기의 맥락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9. 참고자료
김은철 외, 문학의 이해, 새문사
문덕수 외, 구조주의 비평, 글나무
이상우 외, 문학비평의 이론과 실제, 집문당
다른 한편 홉스(T. Hobbes)는 데카르트 철학을 사회과학으로 밀고 나가 근대적인 사회이론을 창시했다. 즉 그는 사회 내지 국가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나뉘어져야(분석) 한다고 보았고, 더 나뉠 수 없는 확실한 요소에서 출발하여 이론적으로 구성되어야(종합) 한다고 생각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인간’이라는 주체였다.
인간이라는 주체는 각자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갖는다. 즉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즉시 서로의 의지가 충돌하여 전쟁과도 같은 커다란 혼란이 생겨버린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위해 남과 싸우게 되니, 이제 “인간은 서로에 대해 늑대가 된다”. 이런 상태를 그는 ‘자연상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질서를 전제하는 “사회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유명한 ‘홉스의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이제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이론인 (근대적) 사회과학이 탄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사회이론의 출발점에는 ‘주체’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종종 포스트구조주의적 사유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맑스(K. Marx)라면 이 질문에 대해 다시 질문할 것이다. 그처럼 서로 동등한 의지와 권리를 가지고 서로 싸우는 ‘인간’ 내지 ‘주체’가 대체 어떻게 가능했는가? 왜냐하면 귀족과 평민, 농노의 신분이 확연했던 그 이전 시대만 해도 사람들이 서로 동등한 권리나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맑스가 보기에 서로 동등한 귄리를 갖는 이런 ‘시민’은 무엇보다도 우선 시장에서 형성된 것이다. 즉 서로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계약에 의해 일이 성사되며, 경쟁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늑대가 되는 곳이 바로 시장이고, 이는 유럽의 중요한 도시들에서 14세기이래 점차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그런 ‘인간’은 농민들을 토지에서 몰아내면서 신분으로부터도 해방시켰던, 이른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고 불리는 가혹한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홉스가 ‘출발점’으로 당연시했던 ‘주체’나 ‘인간’이란 개념은 사실은 역사적 과정의 결과물이요 생산물이다. 확실한 출발점이라고 간주되던 주체 개념은 이제 해체된다.
포스트구조주의의 가장 유명한 사상가 중 하나인 푸코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이 주체 개념을 해체한다. 홉스가 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보았던 그 ‘인간’ 내지 ‘주체’, 혹은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이성적 주체는, 광인이나 부랑자, 게으름뱅이, 가난뱅이, 범죄자 등을 ‘종합병원’이란 이름의 수용소에 가두고, 그들을 사회로부터 배제함으로써 만들어진 ‘정상인’의 모습이요, 나중에는 규율과 감시, 처벌 등을 통해 신체적으로 훈육된 ‘인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맑스나 푸코에게 공통된 것은, 근대의 사회이론이 출발점으로 삼았던 ‘주체’가 반대로 ‘근대’(modern)라는 역사적 과정의 결과요 생산물이라는 것이다. 마치 데카르트의 ‘주체’가 문법이나 언어구조의 결과였던 것처럼. 따라서 그것은 근대라는 역사적 과정을 넘어서면서 동시에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것이기도 하다.
8. 구조주의의 의의 및 한계
구조주의는 주관적 해석이 많은 문학연구에 최대한도로 객관화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문학작품과 현실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반대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구조주의는 문학작품이라는 언어구조물과 지시대상을 분리시킴으로써 문학이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한 셈이다. 구조주의는 칸트의 무목적의 목적성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이 것에도 문제점이 생겼다. 특히 시보다는 서사문학에서 한층 크게 나타났다. 서사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든 것이 언어적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유추적 관계를 언어학적 법칙의 차원에서 엄밀하게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더욱이 이야기 층위를 분석하면서 문장의 차원에 적용되는 문법적 규칙을 원용하려 할 때 구조주의 방법은 일종의 자기모순에 빠진다. 구조주의에 의하면 독자의 의식 내부에서 시로 지각되는 부분은 주관적 영역이며 시적특성은 언어 자체의 구조적 특성을 통해 객관적 구조로서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파테르는 두 사람의 분석에는 시적 효과에 기여하지 않는 체계에 대한 설명이 있는 반면, 시적 효과를 발휘하는 요소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구문적 유사성에 대한 패턴은 실제로 어떤 시적 효과를 나타내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라파테르는 시를 정태적인 언어적 배열로서 분석할 것이 아니라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일종의 담론으로서 분석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논의의 요지는 독자에게 시로서 소통되는 부분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각의 주체로서의 독자는 사회성과 역사성을 지니므로 이에 따르는 복잡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랑그 측면에서의 연구는 공시적 고찰인 동시에 보편적 법칙에 대한 연구이다. 바흐친은 언어의 어떤 법칙성으로 환원되는 구심력과 함께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을 지님도 강조했다. 그것이 단순히 우연성과 개인성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이데올로기의 맥락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9. 참고자료
김은철 외, 문학의 이해, 새문사
문덕수 외, 구조주의 비평, 글나무
이상우 외, 문학비평의 이론과 실제,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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