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용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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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용 관념의 형성배경

Ⅲ. 용의 기원과 종류

Ⅳ. 용의 운행우시관 (蕓行雨施觀)

Ⅴ. 지도자로서의 의미

Ⅵ.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활용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탄생신화이다. 고대 제왕인 염제는 용신에 의해 감수(感受)되어 출생하였고, 요임금은 용의 자손이라는 신화의 내용이 그것이다.
중국에서 용을 이용하여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데 처음으로 이용한 사람은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다. 유방은 자신의 출생과 관련하여 그의 어머니가 용과 결합하여 자신을 낳았다고 조작하여 나라를 통치하는데 이용하였다. 용과 결부된 탄생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천자(天子)의 입지를 굳히고 권위를 세운 것이다. 왕충(王充, 동한 27-90?)은 이에 대해 “용은 상서로운 동물이기에 그것이 몸 위에 있다는 것은 천명을 받았다는 증거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 당시에 용과 왕권을 연결시켜 정치적으로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용을 연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나라 선제(宣帝)는 황룡(黃龍), 동한(東漢)의 공손술(公孫述)은 용흥(龍興)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여 어려운 정치적인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용을 연호로 사용한 경우는 한 대 이후 정권에서도 보이는데, 공통점은 사회가 혼란스러운 경우에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많이 쓰인 연호는 황룡(黃龍)·용흥(龍興)·청룡(靑龍)·용비(龍飛)·용승(龍升)·용삭(龍朔)·신룡(神龍)등이다.
용 문양을 황실의 전용물로 명문화 한 것은 원대 때이다. 세조(世祖)는 일반 상점에서 용 문양의 판매를 금지시키었고, 이를 어길 때에는 물건을 몰수하고 죄인을 엄중히 다스린다는 조서를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에 효과를 보지 못하자 5조룡만을 황실의 전용으로 삼아 민간에서 사용할 경우 왕위찬탈의 모반죄로 처형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황실에서도 3조룡·4조룡의 기물을 사용하였고, 민간에서도 5조룡이 단지 적게 사용되었을 뿐이다.
명나라 때도 5조룡은 황가에서 전용하였고, 공로가 많은 신하에게 망포(袍)를 하사하기도 하였다. 청나라 때는 망포 사용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여 많은 신하들이 착용하였다. 또한 도자기에 5조룡을 새겨 넣는 것이 민간에서 유행하였다. 그러나 민간에서 6조룡을 만드는 것은 큰 죄로 다스렸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5조룡의 용포를 입은 왕은 세종대왕이었으나 그것은 중국의 동의를 구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세종 이후에는 왕은 5조룡, 왕세자는 4조룡, 왕세손은 3조룡포를 입도록 왕실의 복식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옥좌 위 닷집의 용의 발톱은 7개로 그려져 있어 그 의미가 궁금하다.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내부 벽화의 용은 5조룡이다.
용 문양은 황실과 민간사이에는 차이를 보인다. 궁정의 용은 장엄하고 위엄이 있으며, 화려하고 섬세하다. 또한 문양이 복잡하고 초인적 신비감을 만들어 위압감을 준다. 이에 반해, 민간의 용은 참신하고 강건하며, 간결하고 유치하다. 그 모양이 소박하여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서영대, 앞의 글, pp.50-52.
Ⅵ. 결론
지금까지 용 관념의 형성배경, 용의 기원과 종류에 대해서 살펴보았으며, 운행우시와 지도자로서의 용 관념에 대해 다루었다.
중국에서 민간신앙으로 보여주는 용은 운우(雲雨)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데, 용·물(水)의 관념으로 사람들은 구름이 일고 비가 오는 것을 용의 조화에 의한 것으로 보고 한발(旱魃)이 계속되면 용에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용이 물을 얻음으로써 조화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민족의 지도자는 용의 호신을 받아야만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사고가 중국인에게 있어왔다. 그러므로 용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가진 특이점, 즉 외모의 장엄함과 화려함, 동시에 물을 다스린다는 치수의 능력 때문에 용은 위인과 같이 위대하고 훌륭하며 신비로운 존재에 비유되었다. 이런 이유로 용은 왕권이나 왕위의 상징이 되었고 임금과 관계되는 것에는 거의 빠짐없이 용이라는 접두어를 붙였다.
용은 상징적인 동물이지만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비록 용이 황실과 왕권의 상징이지만 민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써 이중적인 면을 보인다. 때로는 두려움과 경외의 동물이기도 하지만 비를 가져다주는 우사(雨師)이자 수신으로써 농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용을 형상에 따라 혹은 용의 기능에 따라, 용의 색에 따라 다양한 호칭으로 구분하여 지칭하면서 그 용의 조화능력에 신이함을 느끼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안녕과 번영을 기하려 했다.
앞서 언급한 동양과 서양의 용 관념의 차이는 생태적 조건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고대 근동 지역의 유목 문화와 중국의 농경문화가 지니는 생태적 조건의 차이가 동서양 용 관념의 차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고대 근동(the Near East)인들의 생활의 주요한 장 가운데 하나였던 사막의 생태도 성서 및 서구·그리스도교의 용 관념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본 글은 중국의 용 관념의 윤곽을 살펴보는데 그쳤지만, 앞으로 중국,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의 용 관념 특성에 대해 더욱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동양의 용 관념을 치밀히 검토함으로써, 동양과 서양이 지니는 용 관념 특성을 비교 연구 해본다면 동양의 용 관념이 지니는 특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윤열수. 「용, 불멸의 신화」. 서울: 대원사, 1999.
이경덕.「우리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파주: 사계절, 2006.
서영대. 「용, 그 신화와 문화-한국편」. 서울: 민속원, 2002.
서영대, 송화섭. 「용, 그 신화와 문화-세계편」. 서울: 민속원, 2002.
김영진. “현대 시각문화에서의 신화적 상징차용과 그 의미에 관한 연구 : 용 포스터 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홍익대 대학원, 2003.
이용기. “용설화연구 : 분포와 해석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공주대 대학원, 2002.
이장혁. “19세기 불화의 용표현에 대한 고찰.” 석사학위논문. 경주대 대학원, 2002.
손일호. “초기 용문에 관한 소고.” 「선린대학논문집」, 제23집(2001).
왕충의. “중국용문화소고.” 「아시아지역연구」, 제2호(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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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10
  • 저작시기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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