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선덕여왕 궁금증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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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선덕여왕]선덕여왕 궁금증 해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왕위에 오른 배경
2. 왕의 자질
3. 선덕여왕의 통치와 불교

Ⅲ. 결 론

본문내용

에 만들어진 첨성대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 시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첨성대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특이할 만하다. 이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썼을 때 일연이 보았던 신라의 자료를 보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는 건물이라고 불렸다. 이 명칭 때문에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도 첨성대가 천문 관측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선덕여왕 2년(63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고, 조선 말기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는 선덕여왕 16년(647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나와 있다.
첨성대는 높이 9.108미터, 밑지름이 4.93미터, 윗지름이 2.85미터이며 밑에서 4.16미터 되는 곳에 정남쪽으로 한 변의 길이가 1미터인 정사각형의 창문을 낸 병 모양의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선덕여왕(신라 제27대 왕)을 상징하는 27단으로 쌓았고, 이 27단과 정상부의 정자석까지 합하면 모두 28단이 되는데, 이 28수는 기본 별자리를 의미한다. 여기에 맨 밑의 기단까지 합하면 29개가 되는데 이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에 해당된다. 또 중앙의 창문까지가 12단이고 다시 창문에서 윗부분까지도 역시 12단인데, 이것은 일 년 열두 달과 24절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첨성대를 쌓은 돌은 거의 365개 정도인데 이것은 일 년의 길이를 염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단석은 동서남북 4 방위에 맞추고 있으며 맨 위의 정자석은 그 중앙을 갈라 8 방위에 맞추고 있다. 창문이 정남향으로 나 있는 이유는 태양이 비칠 때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선덕여왕은 관측 건물을 만들어 자연재해를 미리 예측하려고 했던 것이다. 선덕여왕이 예지력을 갖추고 있고, 약간의 신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Ⅲ. 결 론
한반도의 고대사회에 여왕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고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이다. 특히, 신라에서만 여왕이 나왔다는 것은 더욱 흥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신라시대의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와 가장 연관이 깊고, 파벌 싸움에 있어 여성의 지위가 신분의 지위 이하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철저한 계급제 사회에서 여성이란 신분도 명분이 있고, 세력이 있으면 여왕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 여왕이었던 진성여왕 때에는 전에부터 계속되어 왔던 신분제를 앞세운 약탈과 착취로 인해 신라의 막바지 길에 도달하기는 했어도 이것이 모두 여왕의 잘못만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선덕여왕은 인과 덕을 가지고 예지력을 갖추고, 조상을 섬기면서도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다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측근들을 모으는 것과 불교를 장려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선덕여왕의 사례를 본받아 인과 덕으로 사람들을 보살피는 여성들이 정치와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 늘어나야 한다. 단순히 남녀의 차별을 넘어 남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여성 지도자들이 계속 나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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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1.21
  • 저작시기2009.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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