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여왕들 -신라에서만 여왕이 나온 이유
본 자료는 1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해당 자료는 1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우리 역사 속 여왕들 -신라에서만 여왕이 나온 이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여왕에 대한 인식
1. 삼국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Ⅱ. 고구려, 백제에 여왕이 나오지 않은 이유

본문내용

는 일이 달라졌다. 이것은 남녀의 문제와는 별개였다. 물론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결코 낮지 않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제도화되어 이루어졌던 곳이 바로 신라이다. 따라서 신라에서 여성의 지위는 상당히 높았고, 사회적 역할도 그 범위가 다양했다.
- <삼국사기> 권 32, 잡지1, 제사
제2대 남해왕 3년 봄에 처음으로 시조 혁거세의 묘를 세워 네 계절마다 제사지내고, 친누이동생 아로로서 제사를 주관케 했다.
남해왕이 친누이동생 아로에게 시조 제사를 주관하게 했다는 것은 여성이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시조의 제사장이란 것을 감안하면 국가 차원의 중요한 행사에 여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화랑세기>서문을 보면 화랑제도의 기원은 신궁의 제사의례에서 출발했고, 그 의례의 주관자가 처음에는 여성이었다고 나와 있다.
신라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물론 여성 이전의 신분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나 같은 신분에서도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이 활발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결국 고구려와 백제에 여왕이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가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성이 왕이 된다는 것은 나라가 망한다는 것 이전에 자신과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세력을 빼앗긴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육과 문화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지위를 나누고 그 범위를 정해 놓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했을 것이다.
  • 가격1,000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0.01.21
  • 저작시기2009.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674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