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공교육과 본래의 취지
2. 공교육이 위기가 된 이유
3. 공교육 위기에 대한 대안
교원평가 논쟁이 나를 슬프게 하는 이유
토론 해 볼 문제
2. 공교육이 위기가 된 이유
3. 공교육 위기에 대한 대안
교원평가 논쟁이 나를 슬프게 하는 이유
토론 해 볼 문제
본문내용
교사인지.”
‘교원평가’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갑자기 마이크를 들이대면서 교원평가에 대한 나의 솔직한 견해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할 것 같다.
“그거 하나마나에요. 결국은 국가 예산낭비죠 뭐.”
듣는 이에 따라서는 무책임한 망언 내지는 불온한 선동으로도 들릴 수 있겠지만 20년 가까이 우리 교육현장의 실체적 진실을 목도해온 나로서는 가장 정직한 대답을 한 셈이다. 형식적인 수업평가는 연구수업이나 동료장학이란 이름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다. 물론 그런 전시용 수업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은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연구수업이나 동료장학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입시교육 때문이다.
보여주기 식의 일회성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종전의 수업 형태로 돌아가고 만다. 그것이 게으르거나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교사가 저지르는 직무유기가 아니라 대다수 교사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이제 그것은 관행도 아니다. 수능점수를 높여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어버린 학교에서는 더 이상 거론할 여지가 없는 하나의 진리(?)로 굳어진 지 오래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원평가가 마치 도탄에 빠진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대다수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이를 반대하는 전교조가 나라의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 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실체적 진실이야 어떻든 전교조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 위원장으로서도 고심이 되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교원평가를 놓고 정부와 교섭 중이던 이수일 전교조 위원장이 전격 사퇴를 선언하게 된 것은 전교조 내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가 주도한 교원평가의 거품이 가져온 결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전교조라면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그 이름만으로도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집단들이 가세하여 교원평가 논쟁은 생산성이 없는 감정대립의 장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교원평가 논쟁이 나를 슬프게 하는 첫째 이유이다.
1년간 교장, 교감, 동료교사 간의 한두 차례의 평가와 학생, 학부형의 설문조사로 어떻게 교원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정부의 이러한 발상도 문제지만 과연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 아직까지 합의된 바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좋은 수업에 대한 잣대가 아직 없다.
한국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기 일쑤인데 그 가운데 입시교육에 대한 비판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돌아서면 그뿐이다. 이를 고치려는 실천적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학교 현장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마저 입시학원과 다를 바 없는 거대한 점수 경쟁의 수레바퀴 속에서는 문제풀이 교사로 전락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니 교사들이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당연하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훌륭한 교사들이 있기도 하다. 그들이 학교 현장에서 오히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교원평가가 실시되면 이런 입시교육의 병폐가 사라질까?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실효성 없는 ‘하나마나한’ 교원평가가 이미 뿌리가 깊어질 대로 깊어진 학교 현장의 입시교육을 회생시키거나 반전시킬 힘이 있을 리도 없겠지만 교원평가가 하나의 악재로 작용하여 오히려 입시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돌아설 승산도 크다.
이러한 예측은 교원평가가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대책의 일환으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한 타당성을 지닌다 하겠다. 사교육비란 쉽게 말하면 ‘학원수강비’를 의미한다. 그리고 학원은 교육이 아닌 점수를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교육을 담당해야하는 학교와 점수가 중요한 학원을 같은 부류로 혼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학교도 이미 교육보다는 점수가 중요한 입시교육의 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이를 쇄신하고자 하는 노력마저 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가 너무 어둡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언제까지 입시위주 교육을 한탄하며 방어적인 자세로만 일관할 것인가? 입시교육이 심화되는 과정 속에 우리 교사들이 한몫 한 것도 사실인데 모처럼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이때에 교원평가를 하나의 단초로 삼아 좋은 수업의 모형을 모색해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망국의 입시교육의 묵은 틀을 깨뜨릴 수도 있는 묘안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교사들은 교무회의에서 교장이나 교감, 혹은 부장교사들이 전달하는 내용을 받아 적었다가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전달해주면 그 뿐이다. 거기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려는 교사는 이른바 ‘벌떡 교사’로 지목받기 십상이다. 학생들의 사정은 더 기막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들어 있는 자치활동시간은 자율학습시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학부모회도 사정도 마찬가지다. 엄연한 교육 3주체 중 하나인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하는 일이 고작 교사들 뒷바라지다. 가끔 학교는 자기 자식 챙기기에만 급급한 열렬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경연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교육에 대한 참뜻을 가진 학부모들의 설자리가 마땅치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육을 위해 평가가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평가를 위해 교육을 하는 주객이 전도된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정부주도의 졸속적인 교원평가는 이런 입시교육의 병패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부추길 공산이 크다.
[출처] 교원평가 논쟁이 나를 슬프게 하는 이유_ 안준철
토론 해 볼 문제
1. 공교육의 위기가 온 이유는?
2. 고교평준화(등급제), 교원평가제, 3불정책, 내신, 특목고 등 공교육 문제에 대한 여러 이슈에 대하여 알아보고 이야기 해 보자.
3.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교원평가’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갑자기 마이크를 들이대면서 교원평가에 대한 나의 솔직한 견해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할 것 같다.
“그거 하나마나에요. 결국은 국가 예산낭비죠 뭐.”
듣는 이에 따라서는 무책임한 망언 내지는 불온한 선동으로도 들릴 수 있겠지만 20년 가까이 우리 교육현장의 실체적 진실을 목도해온 나로서는 가장 정직한 대답을 한 셈이다. 형식적인 수업평가는 연구수업이나 동료장학이란 이름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다. 물론 그런 전시용 수업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은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연구수업이나 동료장학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입시교육 때문이다.
보여주기 식의 일회성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종전의 수업 형태로 돌아가고 만다. 그것이 게으르거나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교사가 저지르는 직무유기가 아니라 대다수 교사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이제 그것은 관행도 아니다. 수능점수를 높여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어버린 학교에서는 더 이상 거론할 여지가 없는 하나의 진리(?)로 굳어진 지 오래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원평가가 마치 도탄에 빠진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대다수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이를 반대하는 전교조가 나라의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 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실체적 진실이야 어떻든 전교조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 위원장으로서도 고심이 되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교원평가를 놓고 정부와 교섭 중이던 이수일 전교조 위원장이 전격 사퇴를 선언하게 된 것은 전교조 내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가 주도한 교원평가의 거품이 가져온 결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전교조라면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그 이름만으로도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집단들이 가세하여 교원평가 논쟁은 생산성이 없는 감정대립의 장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교원평가 논쟁이 나를 슬프게 하는 첫째 이유이다.
1년간 교장, 교감, 동료교사 간의 한두 차례의 평가와 학생, 학부형의 설문조사로 어떻게 교원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정부의 이러한 발상도 문제지만 과연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 아직까지 합의된 바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좋은 수업에 대한 잣대가 아직 없다.
한국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기 일쑤인데 그 가운데 입시교육에 대한 비판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돌아서면 그뿐이다. 이를 고치려는 실천적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학교 현장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마저 입시학원과 다를 바 없는 거대한 점수 경쟁의 수레바퀴 속에서는 문제풀이 교사로 전락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니 교사들이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당연하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훌륭한 교사들이 있기도 하다. 그들이 학교 현장에서 오히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교원평가가 실시되면 이런 입시교육의 병폐가 사라질까?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실효성 없는 ‘하나마나한’ 교원평가가 이미 뿌리가 깊어질 대로 깊어진 학교 현장의 입시교육을 회생시키거나 반전시킬 힘이 있을 리도 없겠지만 교원평가가 하나의 악재로 작용하여 오히려 입시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돌아설 승산도 크다.
이러한 예측은 교원평가가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대책의 일환으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한 타당성을 지닌다 하겠다. 사교육비란 쉽게 말하면 ‘학원수강비’를 의미한다. 그리고 학원은 교육이 아닌 점수를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교육을 담당해야하는 학교와 점수가 중요한 학원을 같은 부류로 혼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학교도 이미 교육보다는 점수가 중요한 입시교육의 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이를 쇄신하고자 하는 노력마저 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가 너무 어둡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언제까지 입시위주 교육을 한탄하며 방어적인 자세로만 일관할 것인가? 입시교육이 심화되는 과정 속에 우리 교사들이 한몫 한 것도 사실인데 모처럼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이때에 교원평가를 하나의 단초로 삼아 좋은 수업의 모형을 모색해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망국의 입시교육의 묵은 틀을 깨뜨릴 수도 있는 묘안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교사들은 교무회의에서 교장이나 교감, 혹은 부장교사들이 전달하는 내용을 받아 적었다가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전달해주면 그 뿐이다. 거기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려는 교사는 이른바 ‘벌떡 교사’로 지목받기 십상이다. 학생들의 사정은 더 기막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들어 있는 자치활동시간은 자율학습시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학부모회도 사정도 마찬가지다. 엄연한 교육 3주체 중 하나인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하는 일이 고작 교사들 뒷바라지다. 가끔 학교는 자기 자식 챙기기에만 급급한 열렬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경연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교육에 대한 참뜻을 가진 학부모들의 설자리가 마땅치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육을 위해 평가가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평가를 위해 교육을 하는 주객이 전도된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정부주도의 졸속적인 교원평가는 이런 입시교육의 병패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부추길 공산이 크다.
[출처] 교원평가 논쟁이 나를 슬프게 하는 이유_ 안준철
토론 해 볼 문제
1. 공교육의 위기가 온 이유는?
2. 고교평준화(등급제), 교원평가제, 3불정책, 내신, 특목고 등 공교육 문제에 대한 여러 이슈에 대하여 알아보고 이야기 해 보자.
3.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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