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가, 묵자] 묵가의 사상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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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묵가, 묵자] 묵가의 사상과 이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묵자의 삶과 철학

2. 시대적 배경 고찰

3. 묵자의 사회사상과 역사관

4. 유물주의적 경험론

5. 천지, 명귀의 종교사상

6. 묵가 후기의 유물주의적 인식론

7. 후기 묵가의 논리사상

8. 공리주의적 사회정치 윤리사상

9. 맺음말

10. 참고자료

본문내용

‘假’ ‘效’ ‘譬’ ‘牟’ ‘援’ ‘推’ 등이다 혹은 특정한 사물이나 선택된 사물을 가리키는 명제이다. ‘가’는 곧 가설로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가설하는 것이다. ‘효’는 모방함이며, ‘法’은 공식 또는 표준이다.‘비’는 비유인데, 즉 구체적인 사건이나 물체를 빌어서 어떤 사정이나 도리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이런 방법은 변론에서 항시 쓰이는 것이다.‘모’는 같다는 의미이니, 똑같은 것으로 논점을 설명한다. ‘원’은 전례 혹은 상대방의 말을 끌어다가 비교하여 추리하는 전제이다.
‘추’는 이미 알고 있는 사물로부터 알지 못하는 사물을 추출한다는 것으로서, 귀납적 추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묵경>>은 ‘矛盾律’과 ‘排中律’의 문제도 다루었다. 이것은 두 가지 논제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면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잘못된 논제라는 말이다. 즉 두 가지의 명제가 서로 모순의 관계라면 둘 모두가 잘못된 명제 일수는 없다는 말이다. <<묵경>>은 논리학적인 면에서 후에 순자가 지적한 것처럼 개별적인 착오를 범하기는 하였으나, 중국 고대의 논리학의 발전에 대한 공헌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8. 공리주의적 사회정치 윤리사상
후기 묵가는 옛날과 오늘날의 사회상황은 서로 다르므로 정치 제도나 윤리관도 서로 달라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그들은 시대가 바뀌면 시대의 ‘의’도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옛날과 지금은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요의 ‘義’는 그 ‘의’의 ‘이름’뿐이요, 그 ‘의’의 ‘실제(實)’가 아니라는 말이다. 후기 묵가의 ‘의’는 바로 ‘利’였다. 그들은 ‘이’를 일체의 準則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사회 경제 정치적인 관점에서 묵자의 ‘兼相愛 交相利’의 학설을 계승 발전시켜 ‘利’를 사회 생활의 준칙으로 삼았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利’이며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갖게 하는 것은 ‘해로움(害)’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여 후기 묵가는 도덕적 행위가 사람들로 하여금 ‘해로움’을 피하고 ‘利’를 추구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후기 묵가는 사람들에게 눈앞의 작은 이익을 포기함으로써 장래의 큰 피해를 면하고 눈 앞의 작은 이익을 인내함으로써 장래의 큰 이익을 추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지혜로운 선택을 ‘權’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하여 후기 묵가는 각종의 사회정치도덕의 범주를 해석하였다. ‘의’는 단지 주관적인 동기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 효과의 측면에서 사람에게 이익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후기 묵가의 사회 정치 윤리적인 관점에서 공리주의적인 관점은 바로 부상하고 있던 수공업자들과 상인계급의 이익을 대표한다. 후기 묵가는 ‘仁內義外’의 관점을 반대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인’은 사랑, ‘의’는 이익을 가리키며, 이것은 모두 인간의 주관적이 동기이므로 내적인 것이고, 사랑받는 대상과 이익된 것은 모두 행위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므로 외적인 것이었다.
후기 묵가는 묵자의 주관적 동기와 객관적 효과는 하나이다. 라는 관점을 계승하였는데 그 중에서 ‘功’을 더욱 강조하였다. 후기 묵가가 보기에는 주관적 동기(志)와 객관적 효과(功)가 반드시 결합되는 것은 아니었다. 후기 묵가는 ‘이’가 어느 개인의 ‘이’가 아니라, 서로가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것은 후기 묵가가 묵자의 ‘兼愛說’을 계승하여, ‘利’를 ‘公利’로 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공리에 개인의 이익이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런 학설은 상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유경제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
후기 묵가는 ‘공리’를 선악과 시비를 구분하는 표준으로 삼았다 그들의 ‘公利’는 수공업자와 상인들의 ‘利’였으며 그것은 당시에 발전하고 있던 봉건 경제의 성장에 유리한 상공업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 상공업자의 이익은 당시의 신흥지주 계급의 이익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후기 묵가는 묵자의 ‘尙同思想’을 발전 계승하였다. 묵자보다는 君權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새로 형성된 봉건제도를 공고히 하는 일, 그리고 봉건적 전제 정치에 유리한 것이었으며, 또한 진보적인 것이었다. 후기 묵가는 전국시대 말기에 몰락한 노예주 귀족의 이익을 대변하였던 유심주의나 궤변론자의 투쟁 속에서 발전한 유물주의이다. 이 투쟁은 선진시대의 유심주의와 유물주의의 투쟁이 인식론과 논리학의 범주에 깊이 침수했음을 보여준다.
유물주의 노선을 대표하는 후기 묵가는 인식론과 논리학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묵가 사상중에서 종교 유심주의적인 天志明鬼사상과 단절하였다. 후기 묵가의 학설은 순자의 유물주의 인식론과 논리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9. 맺음말
孔子와 墨子는 예수보다는 神格化 되지 못 하였지만은 각기 자기 學派내에서는 매우 神聖시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의 기본입장을 探究하여 把握하기 전에는 그들과 관련있는 傳說 또는 著作을 모두 輕率히 믿을 수 없다. 아주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의 태도가 거의 완전히 相反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反對派가 전하는 古事와 批評 가운데에서 그들의 相互關係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反對派가 전하는 資料는 조금도 의심할 바 없이, 즉 假裝하여 美化된 말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설사 無故와 지나친 惡談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데에는 단연코 正確할 것이다. 墨子는 뒤에 나와서 孔子를 反對하였다. 앞에서도 墨子의 孔子에 대한 批判을 많이 列擧하여 보았다. 墨子는 孔子가 사라진 뒤에 反對되는 命題를 提出하면서 出現하였다. 孔子와 墨子는 기본 입장에서 差異가 있다. 따라서 사상적으로 거의 완전히 반대되는 위치에 있다. 공자는 전통적으로 鬼神을 否認 하였으나 墨子는 적극적으로 전통적인 귀신을 肯定했다. 이 神은 의지와 행위가 있으며 자연계와 인간계 一體를 主觀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天志’는 곧 인격적인 하늘의 의지이며 또한 ‘천하의 명법’이며 그의 컴퍼스와 曲尺이다. 이것이 바로 墨子 思想의 核心이다.
10. 참고자료
곽말약, 중국고대 사상사, 까치
김학주, 묵자, 민음사
임계유, 중국철학사, 청년사
주백곤, 중국고대 윤리학, 이론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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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01
  • 저작시기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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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8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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