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주자의 생애
2. 주자의 이기론(理氣論)
3. 심성론(心性論)
4. 주자의 철학사상 일고찰
(1) 신유학 사상
(2) 理의 개념
(3) 리(理)와 기(氣)의 관계설정
(4) 태극(太極)의 개념 정리
(5) 인(仁)의 가르침 승화
(6) 거경궁리
5. 주자철학에 대한 비판
6. 참고자료
2. 주자의 이기론(理氣論)
3. 심성론(心性論)
4. 주자의 철학사상 일고찰
(1) 신유학 사상
(2) 理의 개념
(3) 리(理)와 기(氣)의 관계설정
(4) 태극(太極)의 개념 정리
(5) 인(仁)의 가르침 승화
(6) 거경궁리
5. 주자철학에 대한 비판
6. 참고자료
본문내용
사상가들로 심성의 수양보다 국가정책, 궁방, 재정, 민생의 안정등 사회.정치적 문제를 주된관심으로 하고 있었다. 이른바 남송대 사공파는 주자와 동시대인으로 주자의 정체.경제관은 이들과의 대립과 영향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볼수 있다. 주자의 도덕과 경세의 겨비 주장은 한편으로는 사공파의 공리적 경향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아들의 경세적 성격을 일면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다고 본다.
남송대 사공파는 표면적으로는 주자철학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훗일 학계의 추세가 강서에서의 육학의 형향력을 제외하면 사공파로 점령되면서 주자의 사공파비판은 첨예화되고 사공파측에서도 주자학에 대해 점차 정면으로 비판을 가하게 되었다. 사공파중의 진량은 주자의 정치.역사관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가하며 주자의 이기이원론에 대립되는 '도기일원적(道器一元的) 논리를 주장하는 한편 주자의 도덕주의적 역사관과 팽팽이 맞섰다. 그에게서 '도'는 주자학에서와 같은 도덕적 원리나 이상이 아니라 각 시대 위정자들에의한 국력의충실, 민생안정 등의 정치적 성과를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사공(事功)이었다.
한편, 영가학파는 예학을 존중한다는 면에서 주자학과 공통적이었고 <<주례>>를 중심으로 삼은면에서도 주자학과 많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사공파는 철학적 기초에서 도기일치의 일원론적 경향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영가학파는 섭적에 이르러 주자철학과 사상적 결렬을 드러내는데 그는 <<태극도설>>을 불분명하고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일축하면서 주돈이와 정이의 역학이해를 도.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혹평하였다. 그는 국가의 정책, 제도에 도움을 주기의한 경세적 입장에서 경서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여 '이재(理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는 정당한 국가행위이며 단순산 조세의 증가를 목적으로하는 '취렴(聚斂)'과는 다른것임을 천명하였다. 이와같은 사상활동은 주자에게 경세의의의와 관련하여 큰 영향을 주었으며 훗일 '전체대용'의 사상의수립과 사창법의 실시등 주자의 일련의 사상적.실천적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의하면 주자는 도.불의 무적(無的).절대적 입장의 가치를 암암리에 인정하여 이의 개조에 의햐 당시의 공리사상의 '비속성'을 공격하는 한편 도.불을 공격하려 했다. 이의성과가 사창법을 비롯한 경계법(經界法), 황정(荒政) 의실시등 일련의 정치.사회활동 및 예학의 연구이다. 한편, <<의례경전통해 儀禮經典通解>>를 저술하여 방대한 예학 체계를 구상하였다.
이렇듯 주자철학은 사공파와의 대립과 교섭을 통해 경세적 관심과 예학 중심의 경향을 수립하였으나 사공파가 <<주례>>를 중시하고 인군(人君)의 공업과 국가의 역학을 중시한데 반해 주자학은 <<의례>>를 중시하고 국가보다 향촌 공동체 인륜에 입각한 자율성으로 기우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 주자철학의 경세관이 궁극적으로 사공파와는 그 사상적 기반과 현실적 목표가 달랐음을 알수 있다.
한편, 주자학 이후 '내'를 중시하고 '내'의 입장에서 '외'를 비판한 학술.사상활동을 출발점으로 육구연(陸九淵)의 심학의 사상체계가 수립되어 양명학의 효시가 되었다. 특히 송학의 발달에서 육구연의 의의는 주자철학의 이론체계가 지닌 모순점을 예리하게 간파하여 현실적으로 주자철학이 야기시킬 수 있는 논리적 모순을 예견하였다는 것이다. 주자학은 인륜의 기초를 심성의고유한 도덕성에 둔다는 이유로 '내'를 중시하는 결과 객관 타당성의 추구속에서 예학의 발달과 사회적 규범의 확립이 필연적으로 따랐으며 결과새로이 확립된 예와 규범이 '이'를 대신하여 유일하고도 절대적으로 남게된 것이다. 육구연은 이 점을 우려하면서 '심즉리'를 주장하여 주자학에 정면에 도전하였다. 정호는 생의 철학과 심의 중시, 혼일적 경향을 통해 육구연에게 영향을 주엇는데 육학은 아직 예학화되지 않은 주자학 성립기의 성격과 관련된 일면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주자학에서 '인심'을 '인욕(人欲)'이라 하고 '도심(道心)'을 '천리(天理)'라 한 것을 잘못이라 하면서 '심'과 '이'는 당연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동일설에 도달하고 있다. '성'은 '심'의 비본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육구연은 주자학의 격물치지적 연구성향을 주장한 반면 육구연은 이러한 방법을 배격하고 '심'에 내재하는 '양지'의자각과 체인을 주장하였다. '양지'란 인간의 '심애‘ 고유한 일종의 도덕적 충동, 선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육구연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도덕적 충동이 일단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우연적이고 비본래적인 '심'의 부정적 층면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것이며 '심'은 예의 아무런 도움없이 스스로 도덕성으로 가득 차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는 외'의 아무런 도움이나 구속없이 스스로 도덕적 기초로서 작용하며 오히려 이러한 '내'의 외연적 확대에 의해 '외'의도덕성이 가능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이는 주자학과 정반대의 방향을 띄고 있다.
육학에서 출발한 심학은 도불을 배격하고 사회의 윤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주자학과 공통점은 있으마 주자학이 실천에서 '외'의 공부를 중시하면서 예학의 완성과 새로운 규범의 확립을 지향하는 경우 이기이원론과 '성즉리'설은 활발하고 자유로운'심'을 자칫 규범과 관습에 의해 다시 구속하고 그 객관 타당성을 정당화시키는 보수주의의 도구로 전락될 위헙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의 극복을 의해 먼저 규범과 형식의 객관 타당성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성'의 유일절대성을 붕괴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즉 '이'를 규범과 형식의 '외'로부터 뺏어와본래의 위치인 무형(無形), 무적(無迹)의 의미와 원리의 영역인 '심'의 '내'에 안치시키는 것이 '심즉리'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심즉리'는 '성즉리'의 객관지향적 성격에 대해 주관지향적이라 볼 수 있으며 이때의 의의는 '이'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상대성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6. 참고자료
중국 문화사 총설, 첸무 지음 차주환 옮김, 문교부
주자강의, 진영첩, 푸른강의
동양윤리사상의 이해, 조현규, 새문사
동양 정치 사상과 연구촌본, 순일랑 지음, 동녁신서
주자의 철학, 오오하마 아끼라 임헌규, 인간사랑
남송대 사공파는 표면적으로는 주자철학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훗일 학계의 추세가 강서에서의 육학의 형향력을 제외하면 사공파로 점령되면서 주자의 사공파비판은 첨예화되고 사공파측에서도 주자학에 대해 점차 정면으로 비판을 가하게 되었다. 사공파중의 진량은 주자의 정치.역사관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가하며 주자의 이기이원론에 대립되는 '도기일원적(道器一元的) 논리를 주장하는 한편 주자의 도덕주의적 역사관과 팽팽이 맞섰다. 그에게서 '도'는 주자학에서와 같은 도덕적 원리나 이상이 아니라 각 시대 위정자들에의한 국력의충실, 민생안정 등의 정치적 성과를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사공(事功)이었다.
한편, 영가학파는 예학을 존중한다는 면에서 주자학과 공통적이었고 <<주례>>를 중심으로 삼은면에서도 주자학과 많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사공파는 철학적 기초에서 도기일치의 일원론적 경향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영가학파는 섭적에 이르러 주자철학과 사상적 결렬을 드러내는데 그는 <<태극도설>>을 불분명하고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일축하면서 주돈이와 정이의 역학이해를 도.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혹평하였다. 그는 국가의 정책, 제도에 도움을 주기의한 경세적 입장에서 경서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여 '이재(理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는 정당한 국가행위이며 단순산 조세의 증가를 목적으로하는 '취렴(聚斂)'과는 다른것임을 천명하였다. 이와같은 사상활동은 주자에게 경세의의의와 관련하여 큰 영향을 주었으며 훗일 '전체대용'의 사상의수립과 사창법의 실시등 주자의 일련의 사상적.실천적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의하면 주자는 도.불의 무적(無的).절대적 입장의 가치를 암암리에 인정하여 이의 개조에 의햐 당시의 공리사상의 '비속성'을 공격하는 한편 도.불을 공격하려 했다. 이의성과가 사창법을 비롯한 경계법(經界法), 황정(荒政) 의실시등 일련의 정치.사회활동 및 예학의 연구이다. 한편, <<의례경전통해 儀禮經典通解>>를 저술하여 방대한 예학 체계를 구상하였다.
이렇듯 주자철학은 사공파와의 대립과 교섭을 통해 경세적 관심과 예학 중심의 경향을 수립하였으나 사공파가 <<주례>>를 중시하고 인군(人君)의 공업과 국가의 역학을 중시한데 반해 주자학은 <<의례>>를 중시하고 국가보다 향촌 공동체 인륜에 입각한 자율성으로 기우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 주자철학의 경세관이 궁극적으로 사공파와는 그 사상적 기반과 현실적 목표가 달랐음을 알수 있다.
한편, 주자학 이후 '내'를 중시하고 '내'의 입장에서 '외'를 비판한 학술.사상활동을 출발점으로 육구연(陸九淵)의 심학의 사상체계가 수립되어 양명학의 효시가 되었다. 특히 송학의 발달에서 육구연의 의의는 주자철학의 이론체계가 지닌 모순점을 예리하게 간파하여 현실적으로 주자철학이 야기시킬 수 있는 논리적 모순을 예견하였다는 것이다. 주자학은 인륜의 기초를 심성의고유한 도덕성에 둔다는 이유로 '내'를 중시하는 결과 객관 타당성의 추구속에서 예학의 발달과 사회적 규범의 확립이 필연적으로 따랐으며 결과새로이 확립된 예와 규범이 '이'를 대신하여 유일하고도 절대적으로 남게된 것이다. 육구연은 이 점을 우려하면서 '심즉리'를 주장하여 주자학에 정면에 도전하였다. 정호는 생의 철학과 심의 중시, 혼일적 경향을 통해 육구연에게 영향을 주엇는데 육학은 아직 예학화되지 않은 주자학 성립기의 성격과 관련된 일면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주자학에서 '인심'을 '인욕(人欲)'이라 하고 '도심(道心)'을 '천리(天理)'라 한 것을 잘못이라 하면서 '심'과 '이'는 당연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동일설에 도달하고 있다. '성'은 '심'의 비본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육구연은 주자학의 격물치지적 연구성향을 주장한 반면 육구연은 이러한 방법을 배격하고 '심'에 내재하는 '양지'의자각과 체인을 주장하였다. '양지'란 인간의 '심애‘ 고유한 일종의 도덕적 충동, 선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육구연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도덕적 충동이 일단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우연적이고 비본래적인 '심'의 부정적 층면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것이며 '심'은 예의 아무런 도움없이 스스로 도덕성으로 가득 차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는 외'의 아무런 도움이나 구속없이 스스로 도덕적 기초로서 작용하며 오히려 이러한 '내'의 외연적 확대에 의해 '외'의도덕성이 가능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이는 주자학과 정반대의 방향을 띄고 있다.
육학에서 출발한 심학은 도불을 배격하고 사회의 윤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주자학과 공통점은 있으마 주자학이 실천에서 '외'의 공부를 중시하면서 예학의 완성과 새로운 규범의 확립을 지향하는 경우 이기이원론과 '성즉리'설은 활발하고 자유로운'심'을 자칫 규범과 관습에 의해 다시 구속하고 그 객관 타당성을 정당화시키는 보수주의의 도구로 전락될 위헙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의 극복을 의해 먼저 규범과 형식의 객관 타당성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성'의 유일절대성을 붕괴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즉 '이'를 규범과 형식의 '외'로부터 뺏어와본래의 위치인 무형(無形), 무적(無迹)의 의미와 원리의 영역인 '심'의 '내'에 안치시키는 것이 '심즉리'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심즉리'는 '성즉리'의 객관지향적 성격에 대해 주관지향적이라 볼 수 있으며 이때의 의의는 '이'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상대성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6. 참고자료
중국 문화사 총설, 첸무 지음 차주환 옮김, 문교부
주자강의, 진영첩, 푸른강의
동양윤리사상의 이해, 조현규, 새문사
동양 정치 사상과 연구촌본, 순일랑 지음, 동녁신서
주자의 철학, 오오하마 아끼라 임헌규, 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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