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문제 제기
2. 문무와의 장례
3. 大王神과 大王神仰
4. 맺음말
2. 문무와의 장례
3. 大王神과 大王神仰
4. 맺음말
본문내용
石上”에서 장사 지냈다. 그러니까 庫門 外庭은 東海口에 있다. 庫門 外庭이 지금의 어디인지 유감스럽게도 알 수 없지만 ‘동해로 통하는 물’을 택한 이유는 茶毘後의 散骨을 생각해서이며 이러한 사실은 문무왕릉비문에서도 확인된다.
신라는 동해신을 모시는 가장 저명한 장소가 感恩寺로서 문무왕의 발상으로 당대에 짓기 사작 하였다. 이와 같이 문무왕과 감은사, 나아가서는 동해와의 관계로 인하여 그는 언제부터인가 東海神으로 모셔졌고 海神은 龍으로 형상화되어 문무왕이 용이 되었다고 하였다. 때로는 용이 된 문무왕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는데 곧 大王石이다. 이 용은 一國의 帝王에 걸맞게 護國龍으로 변해 갔으며 다시 그 호국의 主敵은 倭賊으로 발전했다.
후대의 문무왕의 장례 설화 또한 死後용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부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바다에 하는 문무왕을 마음에 두고 있다. 그것은 ‘海中陵’, ‘ 藏骨處’인 대왕암으로서 문무왕은 언제나 거기에 바위처럼 군림하여 나라와 백성을 보살피고 계신다고 한다.
위와 같은 설화의 논리가 통할 수 있는 것은 그 증거물인 대왕암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왕암도 동해안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대왕암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 주변에 감은사가 있음으로 해서 모든 의미가 역사상의 문무대왕과 연결 지어졌고 그 적나라한 모습을 고려시대의 史書를 통해 볼 수 있다. 근년 대왕암의 실체가 차츰 드러나게 되자 그것은 적어도 관념상 신라인들에게 문무와의 일종의 義陵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그 이름이 붙여지게 된 연유를 안다면 더 이상 문무왕과의 관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끝.
신라는 동해신을 모시는 가장 저명한 장소가 感恩寺로서 문무왕의 발상으로 당대에 짓기 사작 하였다. 이와 같이 문무왕과 감은사, 나아가서는 동해와의 관계로 인하여 그는 언제부터인가 東海神으로 모셔졌고 海神은 龍으로 형상화되어 문무왕이 용이 되었다고 하였다. 때로는 용이 된 문무왕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는데 곧 大王石이다. 이 용은 一國의 帝王에 걸맞게 護國龍으로 변해 갔으며 다시 그 호국의 主敵은 倭賊으로 발전했다.
후대의 문무왕의 장례 설화 또한 死後용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부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바다에 하는 문무왕을 마음에 두고 있다. 그것은 ‘海中陵’, ‘ 藏骨處’인 대왕암으로서 문무왕은 언제나 거기에 바위처럼 군림하여 나라와 백성을 보살피고 계신다고 한다.
위와 같은 설화의 논리가 통할 수 있는 것은 그 증거물인 대왕암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왕암도 동해안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대왕암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 주변에 감은사가 있음으로 해서 모든 의미가 역사상의 문무대왕과 연결 지어졌고 그 적나라한 모습을 고려시대의 史書를 통해 볼 수 있다. 근년 대왕암의 실체가 차츰 드러나게 되자 그것은 적어도 관념상 신라인들에게 문무와의 일종의 義陵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그 이름이 붙여지게 된 연유를 안다면 더 이상 문무왕과의 관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