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삼위일체와 성결
성부 하나님과 성결
성자 예수그리스도와 성결
성령과 성결
삼위일체 성결을 읽고나서
삼위일체와 성결
성부 하나님과 성결
성자 예수그리스도와 성결
성령과 성결
삼위일체 성결을 읽고나서
본문내용
! 라고 말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순간 질문 앞에서 막막함을 느꼈다. 대충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는 말은 언제나 우리를 기억하고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웨슬리가 한 말이 생각나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우리의 언어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언어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논리적인 진술을 위해서 어눌하나마 말하고 있는 것이지 이것이 삼위일체다 이것은 아니다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이다. 다행히 질문을 했던 사람이 올해 신학대학을 입학한 사람이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 교회에서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했지만 삼위일체는 내 개인적으로도 참 어려운 문제였다. 신학을 하면서 삼위일체에 대한 어떤 뚜렷한 신학적 입장을 접해보기보다는 그냥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하나다! 라는 어떻게 보면 막연한 말만을 반복적으로 접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는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들을 확립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 성결에 대한 개념까지 갖출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내가 믿는 하나님이 예수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고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거룩이시고 사랑이시라는 웨슬리의 고백은 어느덧 내 고백이기도 하였다. 창조에 주관자 성부 하나님,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성자 하나님, 그 모든 것들을 우리 인간 마음으로 가지고 오셔서 알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 이 세 인격의 하나님은 동격이면서 각각의 역할을 가지고 계신다는 깨달음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단순히 하나님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성령님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은 웨슬리의 신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성화와 관련된 웨슬리의 견해에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최근에 나는 죄에 대한 문제로 큰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학기에 있었던 신앙수련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죄에서의 해방감을 맛보고 나서 이제는 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예전에 가지고 있던 죄성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난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하고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난 분명히 죄에서 해방되었고 다시는 똑같은 죄 속에 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여전히 죄는 내 안에 있었고 어느 순간 난 그 죄 안에 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웨슬리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서를 읽으며 사도바울에게서 발견했던 죄에 대한 인간의 나약함을 웨슬리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중생 했다고 생각되는 인간도 육체 안에 있는 한은 항상 죄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화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결코 내 안에 정죄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죄 하면 할수록 내가 정결해 지기보다는 오히려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은 이런 것이 모두 사단이 원하는 바가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제는 나도 여러 믿음의 선배들을 연구함으로 나만의 고유한 신학을 확립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나 성서를 바탕으로 전통을 인정하고 이성을 사용하며 경험적인 신학을 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웨슬리는 나의 또 다른 스승이 되었다.
가끔 교회에서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했지만 삼위일체는 내 개인적으로도 참 어려운 문제였다. 신학을 하면서 삼위일체에 대한 어떤 뚜렷한 신학적 입장을 접해보기보다는 그냥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하나다! 라는 어떻게 보면 막연한 말만을 반복적으로 접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는 삼위일체에 대한 개념들을 확립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 성결에 대한 개념까지 갖출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내가 믿는 하나님이 예수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고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거룩이시고 사랑이시라는 웨슬리의 고백은 어느덧 내 고백이기도 하였다. 창조에 주관자 성부 하나님,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성자 하나님, 그 모든 것들을 우리 인간 마음으로 가지고 오셔서 알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 이 세 인격의 하나님은 동격이면서 각각의 역할을 가지고 계신다는 깨달음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단순히 하나님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성령님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은 웨슬리의 신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성화와 관련된 웨슬리의 견해에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최근에 나는 죄에 대한 문제로 큰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학기에 있었던 신앙수련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죄에서의 해방감을 맛보고 나서 이제는 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예전에 가지고 있던 죄성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난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하고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난 분명히 죄에서 해방되었고 다시는 똑같은 죄 속에 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여전히 죄는 내 안에 있었고 어느 순간 난 그 죄 안에 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웨슬리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서를 읽으며 사도바울에게서 발견했던 죄에 대한 인간의 나약함을 웨슬리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중생 했다고 생각되는 인간도 육체 안에 있는 한은 항상 죄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화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결코 내 안에 정죄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죄 하면 할수록 내가 정결해 지기보다는 오히려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은 이런 것이 모두 사단이 원하는 바가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제는 나도 여러 믿음의 선배들을 연구함으로 나만의 고유한 신학을 확립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나 성서를 바탕으로 전통을 인정하고 이성을 사용하며 경험적인 신학을 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웨슬리는 나의 또 다른 스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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