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상사>유가와 도가의 구세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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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안 왕래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쇄국적인 쇄국의 형태이다. 노자는 주민들이 일상생활에 참으로 만족한다면 다른 나라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도가의 사상까지 살펴본 결과 도가는 유가의 형식적인 면에 반기를 들고 자연의 자연스러움과 같이 무위의 정치를 통해 구세관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유가는 도가의 지적처럼 형식적인 면이라는 문제가 있었고 실제로도 그래서 무위 사상은 유가에도 영향을 끼쳤다.
물론 도가의 무위 사상도 훌륭한 사상이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는 혼란한 시기로 중국과 같은 대국을 통일함에 있어서 무위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사실 너무 백성들에게 무책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의 이상사회인 소국과민은 일단 중국이란 대국이란 환경에 일절 상반되는 것이고 아무리 작은 국가라 해도 어떻게 서로에 대해 아무 관심이 갖지 않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소국과민은 직접민주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는데 중국과 같은 큰 나라에 특히 지금도 불가능한 직접민주제를 왜 그는 할 수 있었는지 그에게 묻고 싶을 뿐이다. 아무리 이상사회라도 백성을 구제한다는 구세관이라면 무엇보다도 현실성이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일텐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적 관점에서 유가와 도가의 구세관을 보았을 때는 아무래도 유가가 더 현실적이지 않았나 싶다. 특히 맹자가 가장 적절했던 것 같다.
맹자는 공자의 적절한 유가 사상에 정전제 등 민생 안정책까지 강구했고 더 나아가 신분제 해방의 태동까지 보여준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

유교,   중국사상사,   도교,   구세관,   공자,   노자
  • 가격2,000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0.04.02
  • 저작시기201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9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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