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저자소개
Ⅱ. 구성
Ⅲ. 저술의도와 목적
Ⅳ. 요약
제1장 마가복음의 제자도
제2장 누가복음의 제자도
제3장 누가의 청지기도
제4장 재물에 대한 올바른 청지기도
제5장 재물에 대한 그릇된 청지기도
제6장 사도행전의 구제 모티프
Ⅴ. 서평
Ⅵ. 총평
Ⅱ. 구성
Ⅲ. 저술의도와 목적
Ⅳ. 요약
제1장 마가복음의 제자도
제2장 누가복음의 제자도
제3장 누가의 청지기도
제4장 재물에 대한 올바른 청지기도
제5장 재물에 대한 그릇된 청지기도
제6장 사도행전의 구제 모티프
Ⅴ. 서평
Ⅵ. 총평
본문내용
그 주인의 뜻과 명령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관련해서는 한 가지 이의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당시 로마 시대의 호혜주의와 관련하여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이 선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가난한 이웃을 도운 것을 예수님께서 칭찬 하신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그것을 구제로 보았기 때문에) 호혜주의로 그것을 설명하기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것 같다.
호혜주의를 구제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호혜주의를 설명할 때 “친구를 재정적으로 돕는 것은 실상 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하며 수혜자는 후에 시혜자가 도움이 필요할 때 반드시 그가 받은 혜택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빌려주는 것이 구제가 될 수 있는가. 다시 받을 것을 계산하고 하는 선행은 구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절-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도로 받을 것을 계산하고 빌려주는 재물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호혜주의 사상은 누가복음의 불의한 청지기의 사건과 관련하여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독자들로 하여금 호혜주의와 구제를 혼돈하게 하는 내용은 보다 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평가 3 - 10page)
재물에 대한 올바른 청지기도는 4장에서 다루었다. 물론 구제의 대상이나 정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못하였지만 누가복음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설명하였다고 생각한다. 삭개오, 갈릴리 여자들, 선한 사마리아인의 기사에서 보듯이 구제금의 정도에 있어서는 각 개인의 자벌적인 결단과 소관으로 하였고 대상에 대해서는 신, 불신 여부를 막론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는 자신의 성경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과 부자에 대한 저주를 많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가. 부자면 다 저주를 받는 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부자가 구제를 하려면 자신이 가난하게 살만큼 자기 재물을 통해 구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바로 구제하는 자가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가난한 삶을 살 정도로 어려운 이웃을 구제해야 한다는 말 일 것이다. 한마디로 이웃을 위해 구제 하되 내 몸을 구제하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포기할 만큼 정성을 다하는 구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구제의 정도에 대해 조금은 구체적으로 다루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평가 4 - 11 page)
제5장에서는 누가복음에서 다루는 재물의 오용 및 남용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다시 세 가지 범주로 설명되어 있는데 그것은 재물의 집착, 낭비, 축적이다. 낭비와 관련하여 저자는 탕자의 비유와 부자 나사로의 비유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탕자의 비유의 근본 주제가 구제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탕자의 비유를 재물에 대한 낭비로 보는 것은 조금은 억지스러움이 있다. 그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탕자가 회개 하고 돌아 올 때 하늘과 아버지께 범죄 하였다고 고백하였는데 그 회개가 재물을 낭비해서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의 재물을 전부 창기와 세상의 욕심으로 낭비해 버리기는 하였으나 탕자의 회개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자신의 방법과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보려고 했던 것에 대한 돌이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탕자의 비유를 통해 재물의 낭비를 설명하기에는 타당성이 떨어지지 않는가 생각된다.
(평가 5 - 13 page)
저자는 누가복음의 구제와 관련하여 제6장에서 사도행전의 구제 모티브를 소개하고 있다. 다비다(9:36-43), 고넬료(10:1-48), 안디옥 교회(11:27-30), 예수님의 명령(20:35)이 그것이다. 저자는 사도행전에 구제의 실천에 관한 내용을 도입한 것은 구제하라는 일종의 적극적인 권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누가의 구제 신학의 측면에서 볼 때 복음서 전승과 초대 기독교 공동체 사이에 연속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구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연속성이 있을 수 있으나 구제의 대상에 관해서는 상이한 차이가 나타난다. 구제의 대상은 당연히 모든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신, 불신에 관계없이 포괄적인데 반해 사도행전에서는 주로 교회 안의 회원들이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연결 지어 구제관을 설명하려 했다면 이 사실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구제의 대상뿐만 아니라 강조에서도 차이가 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에 비해 구제에 대한 강조가 많이 떨어진다. 저자가 말한 사도행전의 구제를 강조한 본문들은 누가복음만큼 구제를 강조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제관에 관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연속성의 문제는 보다 더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Ⅵ. 총평
이상에서 누가복음의 제자도와 청지기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주제라고 생각된다. 우선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받아 그분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을 부정적으로 다룬 목적이 그 과정을 답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임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우리는 마가복음에서 떠나 누가복음의 제자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청지기도의 삶이며 제자된 우리들은 청지기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특별히 재물과 돈에 관한한 청지기도의 바른 길을 알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 또한 사역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김경진 교수의, 『누가 신학의 제자도와 청지기도』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 재물의 바른 사용을 재시하며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더 나아가 구원에 굳건히 참여하게 하는데 있어 너무나도 유익한 연구와 자료라고 생각되어 진다.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관련해서는 한 가지 이의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당시 로마 시대의 호혜주의와 관련하여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이 선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가난한 이웃을 도운 것을 예수님께서 칭찬 하신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그것을 구제로 보았기 때문에) 호혜주의로 그것을 설명하기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것 같다.
호혜주의를 구제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호혜주의를 설명할 때 “친구를 재정적으로 돕는 것은 실상 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하며 수혜자는 후에 시혜자가 도움이 필요할 때 반드시 그가 받은 혜택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빌려주는 것이 구제가 될 수 있는가. 다시 받을 것을 계산하고 하는 선행은 구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절-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도로 받을 것을 계산하고 빌려주는 재물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호혜주의 사상은 누가복음의 불의한 청지기의 사건과 관련하여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독자들로 하여금 호혜주의와 구제를 혼돈하게 하는 내용은 보다 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평가 3 - 10page)
재물에 대한 올바른 청지기도는 4장에서 다루었다. 물론 구제의 대상이나 정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못하였지만 누가복음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설명하였다고 생각한다. 삭개오, 갈릴리 여자들, 선한 사마리아인의 기사에서 보듯이 구제금의 정도에 있어서는 각 개인의 자벌적인 결단과 소관으로 하였고 대상에 대해서는 신, 불신 여부를 막론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는 자신의 성경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과 부자에 대한 저주를 많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가. 부자면 다 저주를 받는 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부자가 구제를 하려면 자신이 가난하게 살만큼 자기 재물을 통해 구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바로 구제하는 자가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가난한 삶을 살 정도로 어려운 이웃을 구제해야 한다는 말 일 것이다. 한마디로 이웃을 위해 구제 하되 내 몸을 구제하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포기할 만큼 정성을 다하는 구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구제의 정도에 대해 조금은 구체적으로 다루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평가 4 - 11 page)
제5장에서는 누가복음에서 다루는 재물의 오용 및 남용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다시 세 가지 범주로 설명되어 있는데 그것은 재물의 집착, 낭비, 축적이다. 낭비와 관련하여 저자는 탕자의 비유와 부자 나사로의 비유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탕자의 비유의 근본 주제가 구제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탕자의 비유를 재물에 대한 낭비로 보는 것은 조금은 억지스러움이 있다. 그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탕자가 회개 하고 돌아 올 때 하늘과 아버지께 범죄 하였다고 고백하였는데 그 회개가 재물을 낭비해서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의 재물을 전부 창기와 세상의 욕심으로 낭비해 버리기는 하였으나 탕자의 회개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자신의 방법과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보려고 했던 것에 대한 돌이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탕자의 비유를 통해 재물의 낭비를 설명하기에는 타당성이 떨어지지 않는가 생각된다.
(평가 5 - 13 page)
저자는 누가복음의 구제와 관련하여 제6장에서 사도행전의 구제 모티브를 소개하고 있다. 다비다(9:36-43), 고넬료(10:1-48), 안디옥 교회(11:27-30), 예수님의 명령(20:35)이 그것이다. 저자는 사도행전에 구제의 실천에 관한 내용을 도입한 것은 구제하라는 일종의 적극적인 권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누가의 구제 신학의 측면에서 볼 때 복음서 전승과 초대 기독교 공동체 사이에 연속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구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연속성이 있을 수 있으나 구제의 대상에 관해서는 상이한 차이가 나타난다. 구제의 대상은 당연히 모든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신, 불신에 관계없이 포괄적인데 반해 사도행전에서는 주로 교회 안의 회원들이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연결 지어 구제관을 설명하려 했다면 이 사실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구제의 대상뿐만 아니라 강조에서도 차이가 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에 비해 구제에 대한 강조가 많이 떨어진다. 저자가 말한 사도행전의 구제를 강조한 본문들은 누가복음만큼 구제를 강조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제관에 관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연속성의 문제는 보다 더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Ⅵ. 총평
이상에서 누가복음의 제자도와 청지기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주제라고 생각된다. 우선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받아 그분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을 부정적으로 다룬 목적이 그 과정을 답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임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우리는 마가복음에서 떠나 누가복음의 제자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청지기도의 삶이며 제자된 우리들은 청지기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특별히 재물과 돈에 관한한 청지기도의 바른 길을 알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 또한 사역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김경진 교수의, 『누가 신학의 제자도와 청지기도』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 재물의 바른 사용을 재시하며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더 나아가 구원에 굳건히 참여하게 하는데 있어 너무나도 유익한 연구와 자료라고 생각되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