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밖에 없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성도들의 모임이고,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가정 교회 안에서 교인들의 삶은 평등과 형제 사랑에 근거했다. 가정이 예배의 처소요 신앙생활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신앙과 삶은 쉽게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초대교회에서 가정은 선교기지, 지역회중의 센터, 선교사들의 거처였다. 특히 외적 위협으로부터 자기 종교를 보존하는 마지막 보루가 가정인 것이다.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은 평등이다. 평등과 관련하여 바울은 교회의 하나됨의 관심사를 가졌다. 누구나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성별이나 신분 차이없이 동등하게 교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성령과 세례는 교회 안에서 모든 차별을 무너뜨리고 혁명적인 평등을 만들어 내었다. 실로 가정교회는 진정으로 화해가 이뤄진 화해의 공동체였다.
가정 교회는 2세기 중반까지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을 지배했다. 그러나 그 이후 교인의 수적 증가와 함께 3세기 중엽부터는 교회당이 별도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성직자와 평신도의 자리가 구분이 되었다. ‘교회’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건물에도 적용이 되었다. 성직자 중심이 된 의식(ritual)으로 전환이 되며, 평신도는 수동적, 관람객으로 전락했으며, 예배와 삶이 분리가 되었다. 주의 만찬이 애찬에서 분리되며, 공동체 안에서 은사의 나눔은 없어지고 개인주의로 나아가게 되었다. 결국 성령께서 행하셨던 일을 기독교 지도자들이 회의를 통해서 금지시키며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주님이 오시기 전 교회는 다시 한 번 개혁의 몸살을 앓아야 할 것 같이 보인다.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성도들의 모임이고,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가정 교회 안에서 교인들의 삶은 평등과 형제 사랑에 근거했다. 가정이 예배의 처소요 신앙생활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신앙과 삶은 쉽게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초대교회에서 가정은 선교기지, 지역회중의 센터, 선교사들의 거처였다. 특히 외적 위협으로부터 자기 종교를 보존하는 마지막 보루가 가정인 것이다.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은 평등이다. 평등과 관련하여 바울은 교회의 하나됨의 관심사를 가졌다. 누구나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성별이나 신분 차이없이 동등하게 교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성령과 세례는 교회 안에서 모든 차별을 무너뜨리고 혁명적인 평등을 만들어 내었다. 실로 가정교회는 진정으로 화해가 이뤄진 화해의 공동체였다.
가정 교회는 2세기 중반까지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을 지배했다. 그러나 그 이후 교인의 수적 증가와 함께 3세기 중엽부터는 교회당이 별도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성직자와 평신도의 자리가 구분이 되었다. ‘교회’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건물에도 적용이 되었다. 성직자 중심이 된 의식(ritual)으로 전환이 되며, 평신도는 수동적, 관람객으로 전락했으며, 예배와 삶이 분리가 되었다. 주의 만찬이 애찬에서 분리되며, 공동체 안에서 은사의 나눔은 없어지고 개인주의로 나아가게 되었다. 결국 성령께서 행하셨던 일을 기독교 지도자들이 회의를 통해서 금지시키며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주님이 오시기 전 교회는 다시 한 번 개혁의 몸살을 앓아야 할 것 같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