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도덕으로서의 정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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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천도덕으로서의 정치 서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의식과 저항
3. 도덕의 힘과 정치의 힘
4. 도덕과 정치의 만남
5. 결론 - 하벨과 우리의 만남

본문내용

, 같은 책, 206 쪽.
기 때문이다.
누구든 스스로 시작하지 않으면 결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하벨의 말은 옳다. 만약 하벨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자로 비춰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시선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 마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벨의 이런 문제의식은 아마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그다지 고상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벨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가?
“전체주의 체제를 어두운 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스스로 밝은 세력이라며 으스대고 있는 서구인들과 그들의 체제에게 결코 면죄부를 줄 수” 같은 사람, 같은 책, 218쪽.
없었던 하벨은, 현실의 승자가 역사의 승자가 되는 모습을 부정한다. 공산주의를 물리친 자본주의가 곧바로 선한 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하벨에게 있어서 역사의 승자는, 현실에서 이긴 자들이 아니라, ‘실존 혁명’을 통해 이상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세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곧, 도덕과 정치가 만나 하나로 융합되는 이상적 정치, 그리고 이것을 지향하고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개인들, 이들이 바로 하벨의 눈에는 역사의 승자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벨이 궁극적으로 바랐던 새로운 정치의 지평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서구 지성인들은 사회의 압력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리를 지켜, 오직 영원한 이성의 힘을 믿고 이를 대변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자 하였다. 적어도 그것은 계몽주의 이후의 전통이었다. 이성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절대화될 수 없었으며 그 이성의 힘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제거되어야 했다.
(중략)
하벨은 이성을 넘어서는 초월의 세계를 귀히 여긴다. 어느 조직이나 체제의 특정 논리에 얽매여 제한된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현존 세력과 모든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전체’를 온전하게 바라다볼 수 있는 지성인의 초월 가능성을 그리고 있었다. 이 자유는 현실로부터 퇴각하여 안온한 서재의 안락의자에서 몸을 도사리는 사사로운 삶을 뜻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것은 진리에 대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자유이며 진리에 대해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자유이다.” 박영신, 앞의 책, 245~246쪽.
서구의 이성중심주의는 배타적 성격을 띤다. 이성적인 것은 훌륭한 것이고, 비이성적인 것은 열등하다는 식이다. 서구인은 제3세계 사람들보다 이성적이기에 우월한 종족이고, 제3세계 민족들은 (발전이 더디다는 것을 근거로) 비이성적이기에 열등한 족속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자들을 지배하는 식민주의가 정당화될 수 있었다. 식민지 개척이 정말 이성적인 행동이었나?
이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감성을 들 수 있다. 감성은 가변적이며 국한적이다. 이에 비해 이성은 불변적이며 보편적 성격을 띤다고 서구인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런 이성이 하는 짓이 고작 식민지 개척을 통해 욕심 채우기에 그친다면, 이런 이성쯤은 던져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기에 인간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주자는 계몽주의의 주창은, 비록 절대왕정을 몰락시켰으나, 또 다른 형태의 절대왕정을 세웠다. 그것은 천박한 근대 자본주의였다. 어린이에게 하루 16시간 노동을 시킬 ‘자유’가 자본가에게 있었으며, 국가는 여기에 개입할 정치적 근거가 없었다. 야경국가였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을 ‘자유’가 남성에게 있었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이성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성들에 의해 장악된 정부는 20세기가 들어서고서야 여성 참정권을 인정해주었다. 여성에게 없던 이성이 20세기에 갑자기 생겨나기라도 한 것일까? 이것이 근대 이성이 빚어낸 풍경이었다.
하벨이 이성을 넘어서 초월을 말하는 것이 결코 몽상가의 잡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부분에서 명확해진다. 서구의 이성이란 것은 결국엔 편협한 이권 추구에 지나지 않으며, 그 이성의 대상은 매우 협소한 부분에 국한된 것이다. 문명을 가장한 잔인함이었으며, 평화를 내세운 야만성이었다. 부조리한 과거를 뒤엎으며 스스로 정당하다고 외치지만, 이제는 자신이 부조리한 현실이 된 것이 바로 ‘서구 이성’이었던 것이다. 하멜이 새로운 정치 지평으로서 강조하는 ‘실존혁명’은 바로 이 ‘비이성적 이성’과 ‘이성에 의한 폭력’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5. 결론
-하벨과 우리의 만남
하벨은 도덕을 추구하려하지 않는 한국의 현실 정치에 대한 반성의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홍균, 『실천도덕으로서의 정치』서평, 서평문화 제39집, 2000, 88쪽.
하벨을 반성의 자료로 삼느냐 아니냐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하벨의 말대로 ‘스스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명의 불굴의 지성인, 하벨. 이 사람은 현실 정치에 도덕을 내세워 저항하고, 그것도 도전과 저항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정치 체제에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다가 수 차례 탄압을 받았음에도 그에 굴하지 않고, 본인이 대통령이 되어 자신의 정치 철학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려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하벨의 생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상과 지성이 아니라 현실과 부딪히면서 더욱 생명력 있게 형성되는 사상과 지성인 것이다. 같은 사람, 같은 글, 같은 쪽.
하벨의 이야기를 보면서 시종 공자와 유가정치철학이 떠올랐다. 동양적 전통에 있어서 정치는 이익 실현 수단도 아니며, 패권다툼도 아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이와 다른 양상을 띠긴 했지만. 그럼에도 유가정치철학은 도덕국가를 지향했다. 왕권조차 도덕적 정당성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 유가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정치가 도덕을 지향하는 것, 그리고 도덕은 정치를 이끄는 규범이 될 수 있는 것. 이런 전통은 이미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벨이 말하는 ‘실존 혁명’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국민의 대표를 단지 자신들의 이익 실현 창구로만 보는 인식 위에서 하벨의 사상을 꽃피울 수 있을까? 우리가 옛적에 정치와 도덕을 일원화 했던 전통과 너무나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벨의 인생이 불꽃이 되어, 우리에게 꺼져가는 도덕의 전통을 다시 살릴 불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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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2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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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36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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