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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 모습은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자들의 막혔던 부분을 뚫어 물꼬를 트고 있는 듯하다. 결국엔 하늘 위와 하늘 아래 홀로 존재하며 스스로 부처에 도달해야 한다지만, 아집에 갇혀 있는 모습을 고수한 채로는 되지 않는다. 해석의 관점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진리에 더 가까워지리란 필연적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 부분만 움켜쥐고 모든 것을 안다는 것 또한 불가능해 보인다. 원효의 화쟁은 이렇듯 치우쳐진 채 견고해진 고집을 녹여 부드러운 소통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 소통이 진정 의미 있는 점은 이것이 이론상의 작업에만 머무른 게 아니라, 그 스스로 계급질서의 최하층으로 다가가 민중과 부처를 소통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큰 수레(大乘)를 타고 저 언덕으로 함께 나아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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