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고승들의 업적
-석도안
-여산혜원
2. 양무제의 봉불(불교 업적에 대하여)
-석도안
-여산혜원
2. 양무제의 봉불(불교 업적에 대하여)
본문내용
류를 금하고 과일로서 대체시키며, 대의(큰 의사)로 하여금 생류를 약으로 쓰는 것을 금하였다. 그리고 이 해에 천하의 도관을 폐하고 도사를 환속시켰다. 그리하여 양국내이 도사는 대다수가 지방 제국으로 도피하여 겨유 여명을 보존한 상태이었다.
천감 18년 4월 8일에 다시 초당시에 혜약에 의하여 보살계를 받고, 다시 황태자 이하 백궁을. 공경. 일반 사서에 이르기까지 이때에 계를 받은 자 4만 8천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제는 동태사를 위시하여 많은 대사를 건립하고, 이 사원에 행업하여 자주 대법회를 행하였다. 대통 원년(527) 9월에 동태사에서 사신하여 사원의 주소. 승의의 세탁 등 삼보의 노예가 되었는데, 군신이 일 억만전을 내고 황제를 도서 귀국하였다. 이러한 사신은 전후 네 차례나 있었다.
또한 제는 당시의 학자에 명하여 편찬술작시킨 서적이 매우 많아. 승민의 [속중경요] 80권, 승랑의 연권, [경률이상] 55권, [법집(法集)] 140권, [여성승법]5권 등이 있다. 유명한 [열반]의 학자 노미사의 보량이 [열반의소]를 저작한 것도 무제의 칙에 의한 것으로서 제가 몸소 그 서를 제작하였다. 반야경의 개강에는 관이 698인, 승정 혜령 이하의 학승 1천인, 긴타 도속을 불문하고 파사. 우진등의 사신도 열석하여 도속무차대회와 함께 14일간 계속하였는데, 여기에 열석하던 자 전후 316. 612명이라고 한다.
이화같이 하여 제는 황제보살. 구세보살, 혹은 보살천자라고까지 존칭을 받았으며, 일상생활을 거의 출가생활과 같이 하여 엄중한 계율주의를 지키며 포의를 입고 주육을 끊고 일일 일식하였다.
천감 18년 4월 8일에 다시 초당시에 혜약에 의하여 보살계를 받고, 다시 황태자 이하 백궁을. 공경. 일반 사서에 이르기까지 이때에 계를 받은 자 4만 8천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제는 동태사를 위시하여 많은 대사를 건립하고, 이 사원에 행업하여 자주 대법회를 행하였다. 대통 원년(527) 9월에 동태사에서 사신하여 사원의 주소. 승의의 세탁 등 삼보의 노예가 되었는데, 군신이 일 억만전을 내고 황제를 도서 귀국하였다. 이러한 사신은 전후 네 차례나 있었다.
또한 제는 당시의 학자에 명하여 편찬술작시킨 서적이 매우 많아. 승민의 [속중경요] 80권, 승랑의 연권, [경률이상] 55권, [법집(法集)] 140권, [여성승법]5권 등이 있다. 유명한 [열반]의 학자 노미사의 보량이 [열반의소]를 저작한 것도 무제의 칙에 의한 것으로서 제가 몸소 그 서를 제작하였다. 반야경의 개강에는 관이 698인, 승정 혜령 이하의 학승 1천인, 긴타 도속을 불문하고 파사. 우진등의 사신도 열석하여 도속무차대회와 함께 14일간 계속하였는데, 여기에 열석하던 자 전후 316. 612명이라고 한다.
이화같이 하여 제는 황제보살. 구세보살, 혹은 보살천자라고까지 존칭을 받았으며, 일상생활을 거의 출가생활과 같이 하여 엄중한 계율주의를 지키며 포의를 입고 주육을 끊고 일일 일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