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1) 홍세태의(洪世泰)의 시와 위항실정(委巷實情)
1) 삶과 의식
2) 시에 나타난 위항실정(委巷實情)
가. 당시풍의 수용
나. 자의식과 감상성
다. 조선 산수와 사실성
라. 위항실정과 교유
◇◆ 맺는말
1) 삶과 의식
2) 시에 나타난 위항실정(委巷實情)
가. 당시풍의 수용
나. 자의식과 감상성
다. 조선 산수와 사실성
라. 위항실정과 교유
◇◆ 맺는말
본문내용
洪) 등과 빈번히 교유하였음을 그들과 관련하여 지은 시 작품 수로 확인할 수 있다.
金富賢과 함께 林俊元의 무덤 아래서 지음(和禮卿西翁墓下作)
거친 봉분에 풀은 자리를 잡았는데 이것이 임준원의 무덤이라네.
말을 세워도 누가 손님을 맞으리. 잔 잡아 홀로 그대에게 권하네.
평생에 남은 것은 작은 비석이요 모든 것이 한갓 뜬구름일세.
두견새 산 나무에서 우니 가슴 아파 차마 들을 수가 없구나.
荒原草已宿 是謂子昭墳 駐馬誰迎客 持杯獨勸君 平生餘短碣
萬事一浮雲 杜宇啼山木 傷心不忍聞 (柳下集, 券2, 346쪽)
그가 46살(1698, 무인년)에 낙사(洛社)의 중심인물이었던 임준원(林俊元)이 죽은 지 일년이 지난 후 김부현과 함께 그의 무덤을 찾아 지은 시다. 임준원은 홍세태가 생계가 어려우면 양식을 대어줄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선배였기에 그의 무덤을 찾은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수련은 이제 막 잔디가 자리잡은 임준원의 무덤을 제시한 것이고, 함련은 죽던 그해까지도 함께 자며 시를 지었던 임준원이 지금은 반가이 맞지도 않은 채 무덤 속에 누웠으니 다만 잔을 권할 뿐이라는 지극한 슬픔의 절제다. 경련에서 그처럼 의협심 있고 시를 즐기던 그도 작은 비석 하나로 남았다고 하여 무덤도 초라한 위항인의 처지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래서 더욱 세상사가 허무하다는 깊은 좌절감을 드러내었다. 미련에는 두견새에다 보잘것없이 죽은 위항인의 한과 친했던 사람을 잃은 자신의 슬픔을 투사하여 마치 나라 잃고 슬피 우는 두우(杜宇)의 혼이 울부짖는 것 같아서 차마 들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임준원을 잃은 슬픔과 위항인의 신분적 한계에서 오는 한스러움이 슬픔을 고조시킨 것이다. 이렇게 그는 같은 처지의 위한인의 실정을 시로 표현하였다.
金莘老와 安重觀 朴士賓 金時敏 鄭後僑 鄭來僑가 술을 들고 오고 李秉 淵이 따라와 兪好仁의 운으로 함께 시를 지음
(金莘老與安國賓,朴士賓,金士修,鄭惠卿,鄭潤卿携酒來過 李一源追至 用 溪韻共賦)
계곡 물과 사람의 뜻은 만고에 흘러 머물지 않고
여러분 오신 게 반가운데 누가 이 정자를 알았을까.
살구꽃은 봄비에 피어나고 산 빛은 사방이 푸른데
항상 적막하게 누워 있다가 오늘에야 문밖에 나왔네.
溪流與人意 萬古活無停 獨喜來諸子 誰知有此亭 杏花一雨白
山色四隣靑 寂寞常高臥 吾今出戶庭 (柳下集, 券6, 418쪽)
그가 65살(1717, 정유년) 봄에 사족과 중인이 한 무리가 되어 시우인 홍세태를 찾아온 것이다. 김신로(金莘老), 안중관(安重觀), 박사빈(朴士賓), 김시민(金時敏), 이병연(李秉淵) 등은 사대부들이고, 정후교(鄭後僑), 정래교(鄭來僑) 그리고 자신은 중인이다. 이렇게 신분을 뛰어넘은 망형지교(忘形之交)로 시화를 즐겼던 것이다. 한 수 건너 실린 작품도 이들이 다시 모여 시화를 연 작품이다.
수련에는 계곡 물과 사람의 뜻이 영원히 흘러가는 것이라 하여 사람의 의지나 정이라는 것도 흐르는 물처럼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함련에서 이런 이치를 뒤집고 시우를 찾아 신분의 간격도 버리고 보잘것없는 유하정(柳下亭)을 방문한 이들에 대한 반가움을 토로했다. 경련은 봄비 온 뒤의 살구꽃과 푸른 산 빛을 그 반가움의 눈으로 그려낸 것이고, 미련은 망형지교(忘形之交)를 맺은 시우들과 어울려 모처럼 봄놀이를 하게 된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시로써 신분의 장벽을 넘어 사대부 시인과 여항 시인이 함께 어울리는 폭넓은 교유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항 시인의 시적 능력을 과시하고 그들고 천기(天機)를 시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사대부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그래서 그가 시명(詩名)을 얻어 여항인으로 하여금 독서에 분발하게 한 공이 있다는 평을 얻었던 것이다.
◇◆ 맺는말
홍세태는 숙종, 경종 때 주로 활동했던 위항시인(委巷詩人)이다. 신분이 미천했던 탓으로 하급 관리를 전전했으나 시로써 이름을 얻어 사대부들도 그를 알아주었고 어려움에서 구해 주기도 하였다. 그는 최기남(崔奇男) 이후 활성화되기 시작한 위항 시단에서 중심적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위항시인의 시를 모아 <해동유주(海東遺珠)>를 묶어내기도 했다.
그의 삶과 의식에서 짚어낼 수 있는 특징들이 그의 시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천기론(天機論)을 주장하여 중인층의 인격적 평등성과 인간의 진솔한 감정이나 천성 또는 본원적 순수성을 내세웠으며, 조선시의 개성을 옹호하고 위항문학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고, 위항시인의 시에서 드러나는 울분이나 비애도 자연스런 감정의 유출로 보았다.
둘째, 그는 어려서부터 당시에 치중하였고 특히 비장하고 감개한 시풍을 지녔던 고적(高適)과 잠삼(岑參)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김창협 형제의 송시지향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만년까지 당시, 특히 두시에 대한 수용자세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겠다.
셋째, 비천한 사회적 신분으로 인한 자의식과 비분강개의 감상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중시하여 생활속의 즐거움이나 괴로움, 슬픔을 가식없이 표현해 내는 것이 천기(天機)를 표출하는 진시(眞詩)라고 보았다.
넷째, 그는 낙송루시사(洛誦樓詩社)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른바 진시운동에 참여했던 만큼 조선시의 개성과 조선산수의 사실성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있는 그대로’ 보다 ‘느낀 그대로’에 치중하여 당시의 감흥이나 낭만성을 잇고자 한 점에서 송시풍을 중시한 농암이나 삼연과 구별되는 만큼, 그의 사실성은 조선의 산수와 풍물에서 느낀 감흥을 중시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그는 위항인으로서 겪은 고통과 울분과 슬픔을 오로지 시로 승화시켰고, 이러한 심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같은 처지의 많은 위항인들과 시로써 어울려 위항시단인 낙사에서 중심적 활동을 하였으며, 나아가 그의 재능을 아끼고 그의 어려운 처지를 돌보아 준 사대부들과도 시로써 폭넓게 교유하였다.
끝으로 그는 한국 한시에서 위항시인의 시를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음으로써 전대에 싹트기 시작한 위항시를 집대성하고 다음에 이어질 위항시인의 활동을 선도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로써 위항인의 삶과 의식이 한국한시의 표면에 떠오르게 되었다.
金富賢과 함께 林俊元의 무덤 아래서 지음(和禮卿西翁墓下作)
거친 봉분에 풀은 자리를 잡았는데 이것이 임준원의 무덤이라네.
말을 세워도 누가 손님을 맞으리. 잔 잡아 홀로 그대에게 권하네.
평생에 남은 것은 작은 비석이요 모든 것이 한갓 뜬구름일세.
두견새 산 나무에서 우니 가슴 아파 차마 들을 수가 없구나.
荒原草已宿 是謂子昭墳 駐馬誰迎客 持杯獨勸君 平生餘短碣
萬事一浮雲 杜宇啼山木 傷心不忍聞 (柳下集, 券2, 346쪽)
그가 46살(1698, 무인년)에 낙사(洛社)의 중심인물이었던 임준원(林俊元)이 죽은 지 일년이 지난 후 김부현과 함께 그의 무덤을 찾아 지은 시다. 임준원은 홍세태가 생계가 어려우면 양식을 대어줄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선배였기에 그의 무덤을 찾은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수련은 이제 막 잔디가 자리잡은 임준원의 무덤을 제시한 것이고, 함련은 죽던 그해까지도 함께 자며 시를 지었던 임준원이 지금은 반가이 맞지도 않은 채 무덤 속에 누웠으니 다만 잔을 권할 뿐이라는 지극한 슬픔의 절제다. 경련에서 그처럼 의협심 있고 시를 즐기던 그도 작은 비석 하나로 남았다고 하여 무덤도 초라한 위항인의 처지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래서 더욱 세상사가 허무하다는 깊은 좌절감을 드러내었다. 미련에는 두견새에다 보잘것없이 죽은 위항인의 한과 친했던 사람을 잃은 자신의 슬픔을 투사하여 마치 나라 잃고 슬피 우는 두우(杜宇)의 혼이 울부짖는 것 같아서 차마 들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임준원을 잃은 슬픔과 위항인의 신분적 한계에서 오는 한스러움이 슬픔을 고조시킨 것이다. 이렇게 그는 같은 처지의 위한인의 실정을 시로 표현하였다.
金莘老와 安重觀 朴士賓 金時敏 鄭後僑 鄭來僑가 술을 들고 오고 李秉 淵이 따라와 兪好仁의 운으로 함께 시를 지음
(金莘老與安國賓,朴士賓,金士修,鄭惠卿,鄭潤卿携酒來過 李一源追至 用 溪韻共賦)
계곡 물과 사람의 뜻은 만고에 흘러 머물지 않고
여러분 오신 게 반가운데 누가 이 정자를 알았을까.
살구꽃은 봄비에 피어나고 산 빛은 사방이 푸른데
항상 적막하게 누워 있다가 오늘에야 문밖에 나왔네.
溪流與人意 萬古活無停 獨喜來諸子 誰知有此亭 杏花一雨白
山色四隣靑 寂寞常高臥 吾今出戶庭 (柳下集, 券6, 418쪽)
그가 65살(1717, 정유년) 봄에 사족과 중인이 한 무리가 되어 시우인 홍세태를 찾아온 것이다. 김신로(金莘老), 안중관(安重觀), 박사빈(朴士賓), 김시민(金時敏), 이병연(李秉淵) 등은 사대부들이고, 정후교(鄭後僑), 정래교(鄭來僑) 그리고 자신은 중인이다. 이렇게 신분을 뛰어넘은 망형지교(忘形之交)로 시화를 즐겼던 것이다. 한 수 건너 실린 작품도 이들이 다시 모여 시화를 연 작품이다.
수련에는 계곡 물과 사람의 뜻이 영원히 흘러가는 것이라 하여 사람의 의지나 정이라는 것도 흐르는 물처럼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함련에서 이런 이치를 뒤집고 시우를 찾아 신분의 간격도 버리고 보잘것없는 유하정(柳下亭)을 방문한 이들에 대한 반가움을 토로했다. 경련은 봄비 온 뒤의 살구꽃과 푸른 산 빛을 그 반가움의 눈으로 그려낸 것이고, 미련은 망형지교(忘形之交)를 맺은 시우들과 어울려 모처럼 봄놀이를 하게 된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시로써 신분의 장벽을 넘어 사대부 시인과 여항 시인이 함께 어울리는 폭넓은 교유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항 시인의 시적 능력을 과시하고 그들고 천기(天機)를 시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사대부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그래서 그가 시명(詩名)을 얻어 여항인으로 하여금 독서에 분발하게 한 공이 있다는 평을 얻었던 것이다.
◇◆ 맺는말
홍세태는 숙종, 경종 때 주로 활동했던 위항시인(委巷詩人)이다. 신분이 미천했던 탓으로 하급 관리를 전전했으나 시로써 이름을 얻어 사대부들도 그를 알아주었고 어려움에서 구해 주기도 하였다. 그는 최기남(崔奇男) 이후 활성화되기 시작한 위항 시단에서 중심적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위항시인의 시를 모아 <해동유주(海東遺珠)>를 묶어내기도 했다.
그의 삶과 의식에서 짚어낼 수 있는 특징들이 그의 시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천기론(天機論)을 주장하여 중인층의 인격적 평등성과 인간의 진솔한 감정이나 천성 또는 본원적 순수성을 내세웠으며, 조선시의 개성을 옹호하고 위항문학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고, 위항시인의 시에서 드러나는 울분이나 비애도 자연스런 감정의 유출로 보았다.
둘째, 그는 어려서부터 당시에 치중하였고 특히 비장하고 감개한 시풍을 지녔던 고적(高適)과 잠삼(岑參)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았으며, 김창협 형제의 송시지향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만년까지 당시, 특히 두시에 대한 수용자세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겠다.
셋째, 비천한 사회적 신분으로 인한 자의식과 비분강개의 감상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중시하여 생활속의 즐거움이나 괴로움, 슬픔을 가식없이 표현해 내는 것이 천기(天機)를 표출하는 진시(眞詩)라고 보았다.
넷째, 그는 낙송루시사(洛誦樓詩社)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른바 진시운동에 참여했던 만큼 조선시의 개성과 조선산수의 사실성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있는 그대로’ 보다 ‘느낀 그대로’에 치중하여 당시의 감흥이나 낭만성을 잇고자 한 점에서 송시풍을 중시한 농암이나 삼연과 구별되는 만큼, 그의 사실성은 조선의 산수와 풍물에서 느낀 감흥을 중시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그는 위항인으로서 겪은 고통과 울분과 슬픔을 오로지 시로 승화시켰고, 이러한 심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같은 처지의 많은 위항인들과 시로써 어울려 위항시단인 낙사에서 중심적 활동을 하였으며, 나아가 그의 재능을 아끼고 그의 어려운 처지를 돌보아 준 사대부들과도 시로써 폭넓게 교유하였다.
끝으로 그는 한국 한시에서 위항시인의 시를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음으로써 전대에 싹트기 시작한 위항시를 집대성하고 다음에 이어질 위항시인의 활동을 선도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로써 위항인의 삶과 의식이 한국한시의 표면에 떠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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